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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Sep 25. 2023

이과 모자와 문과 아빠

대학생 아들과 대화

/ 션과의 통화 시리즈 /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션과 나는 이과, 션파는 문과를 택했다. 우리 가족 모두 융합적인 성향이 강하긴 한데 나와 션은 수학을 좋아하니 이과 쪽 전공에서 고르는 건 당연했다. 가족 톡 방에서 가끔 토론 아닌 토론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알아두면 쓸모없는 이야기를 주로 션과 내가 주고받고 했고 션파는 조용...

한참 둘이 떠들다가 션파는  마지막 딱 한 마디를 했는데 웃겼다. ㅎㅎ


우리가 학창 시절에는 수학은 문제풀이 중심으로 했고 지금도 그리 바뀐 게 없다. 그런데 션은 중고등학교 때 수학이 아름답다면서 하이에나처럼 수학 자체를 탐구했었다.  책을 사준 적도 없고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어서 도대체 어떻게 알아내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인터넷에서 자료 찾고 논문 읽고 기사 읽고 유튜브도 보고 좋은 책 추천받으면 찾아 읽기도 했다고 한다. 이럴 때는 언어에서 자유로운 게 강점 같다. 영어로 찾다가 필요한 자료 있으면 중국 사이트에도 뒤져본다고 했으니까.

아들과 대화를 이어가려면 수학 교양서적을 계속 더 읽어야 하나...



다음은 가족 톡 방의 대화다.


션 : (그래프 사진 하나 보내 주면서) 왼쪽은 알츠하이머 환자들 뇌수액 단백질 성분이 나이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한 거고, 오른쪽은 건강한 일반인 성분인데 뭔가 이상해. 둘 사이 차이가 너무 커.

션파 : 어흐, 저게 뭐야. 그림같애.


깡지 : 멋있다. 그런데 그래프가 무섭네

션 : (그래프 사진 조정 후) 이제 안 무섭지?


깡지 : 그래프가 가르마같이 생겼네,

너 이 문제 풀어봐. "뒤영벌 문제. 동서로 50킬로미터 철길이 있는 데 서쪽에서 기관차가 30킬로미터로 동쪽을 향해 출발한다. 동쪽에서는 기관차가 시속 20킬로미터로 서쪽을 향해 출발한다. 둘 다 정오에 출발했을 때 뒤영벌 한 머리가 동쪽으로 향하는 기관차 앞에서 날아올라 시속 70킬로미터로 동쪽으로 날아간다. 서쪽으로 향하는 기관차에 다다르자, 몸을 돌려 다시 서쪽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동쪽으로 향하는 기관차에 닿자마자 다시 방향을 돌리는 식으로 양쪽 기관차 사이를 계속 오가면서 난다. 그 사이 양쪽 기관차는 서로 마주 보고 달리므로 거리는 점점 짧아진다. 뒤엉벌은 양쪽 기관차가 충돌하기 전까지 얼마나 긴 거리를 날까?"


션 : 아 이 문제 유명하지. 70킬로미터.

깡지 : 앵? 풀이는?

션 : 1. 등비수열의 합이용 2. 두 기차가 충돌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벌이 날아간 시간

깡지 : 아, 1시간 걸렸고 시속 70이니까 70킬로미터 난 거구나

션 : ㅇㅇ


깡지 : 폰 노이만은 어떻게 푼 줄 알아?

션 : ㅇㅇ 폰 노이만에게 물어봤더니 바로 70이라길래, '선생님도 역시 요령을 찾으셨군요' 했더니 폰 노이만이 '그냥 머릿속으로 암산했는데?'라고 했다지

깡지 : 폰 노이만은 어릴 때부터 여덟 자릿수 두 개를 암산으로 곱할 정도였다는데?


션 : 저 당시가 정말 과학, 수학의 전성기. 제2의 르네상스야.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20세기 중후반부터 떨어져. 망델브로도 어마어마한 사람이야.

깡지 : 망델브로가 누구냐

션 : 프랙털 연구한 사람, 망델브로 집합으로 유명하지.

깡지 : 아, 누군지 알겠다. 시에르핀스키 만든 사람?

션 : 시에르핀스키는 신기한 게 둘레는 무한하지만 넓이는 유한해.

깡지 : 너는 어떻게 어디서 들었냐? 학교 다닐 때 공부 안 했구나.


션 : 그리고 망델브로 집합은 bifurcation이라는 것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데, 바이퍼케이션이 편미분 방정식이랑 또 밀접한 관련이 있음. 자연에 있는 아주 많은 것들. 대류현상, 눈 깜박임, 심장박동 등이 편미분 방정식으로 나타나서 신기하게도 망델브로 집합이 자연현상에 엄청 많이 등장함.

키야~ 이거 내 대학 입학 에세이 중 하나에 언급했지. 너무 아름다워서.

또 난 개인적으로 망델브로 해안선 같은 거 공부하면서 프랙털이 정수가 아닌 차원을 갖고 있다는 것도 너무 신기했음.


깡지 : "룸 메이드가 고사리나 구름이나 인도의 갈라진 틈에 시선이 갈 때면,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소리쳐요. '어, 프랙털이야' 프랙털이라는 말만 들어도 지겨워요! 교수님은 좋은 대화를 망치는 분입니다.' 나는 역사 전공자들의 마음을 기하학으로 오염시킨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 나무를 보면서 오로지 예쁘다는 생각만 하던 날이 너무 그리워. 지금은 무엇을 변형시키면 저 나무모양이 될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라." - 후략 - (수학의 위로에서 발췌한 사진 전송)"


너도 그런 놈이군.


션 : ㅋㄱㅋㄱㅋㄱㄱ

어쨌든 신기하지. 어제 OO가 처음 선형대수 공부하는데 벡터 덧셈하는데, '이거 어따 쓰는건데!!!' 라길래 데이터 분석하는 거나 뉴럴 네트워크 조금 보여주니까 엄청 신기해하더군.


깡지 : 엄마가 처음 IT 할 때 '이거 어디 쓰는데!'를 혼자 부르짖었지. 지금은 IT가 일상이 되었어. IT 모르는 사람이 뒤처지는 세상이 됐어. <수학의 위로>라는 책 읽고 있는데 난해한데 재미있네.


조용히 있던 션파가 딱 한마디 한다.


션파 : 이상한 애들일쎄.



ps. 핸폰 사진 정리하다가 발견

션 고3 때 노트북에 이런 메모가 잔뜩 있었다.

지금 션 노트북에는 뭐가 적혔을까









션 노트북 오른쪽 하단의 "하찮아 보이는 일도 '성심껏' 하면 '가치 있는 일'로 바뀐다. 고상해 보이는 일도 대충 하면 '하찮은 일'로 바뀐다." 문구는 내가 쓴 글 보여준 적이 있는데, 좋다고 하더니 적어 둔 것 같다.


[IT에세이] 프로젝트 관리-회의록 /하찮아 보이는 일도 '성심껏'하면 '가치있는 일'로 바뀐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270337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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