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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킴 May 30. 2023

영국에서 느꼈던 소외감

영국생활 에세이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에서 타지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외국에 사는 사람은 구명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족과 직장 동료와 친구, 어릴 적부터 알아서 어렵지 않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지닌 나라, 즉 조국이 모든 인간에게 제공하는 구명줄이 없다.

정말 그랬다. 아무 연고 없이 영국에서 나홀로 낯선 외국인들 틈에 끼려고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영국 백인들과 어울릴 때 가장 어색했다. 1:1일 때는 괜찮았지만 다수와 있을 때는 내가 외계인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영어로 오래 생활하다보니 언어장벽은 어느 정도 부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화 주제에는 그들의 문화가 녹아있기 마련이다. 대화하는 중 60년대 가수 이야기를 하면 누구를 얘기하는지 몰라 물음표가 떠오른다.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면 대화의 흐름을 놓치기 일쑤다. 대화할 때 내가 소외되고 있다는 걸 무시하는 건지, 잊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무말 없으면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그들끼리 주구장창 대화를 나눈다. 가끔 내게 말을 걸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라는 비언어적 행동을 하는 데 익숙해졌다. 나 때문에 대화의 흐름이 깨지는 것이 민망했기 때문이다. 한두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대화의 흐름이 끊긴다면 오히려 벽처럼 가만히 있는 게 나았다. 자연스레 한국에 있을 때보다 내성적으로 변했다.


2013년

영국에 온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무렵이다. 당시 옥스포드에서 영어학원을 다니며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70대 플로렌스 아주머니와 그녀의 90대 어머니로 단촐하게 이루어진 고령층 모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날 갈색 장발머리를 한 40대 아들네 가족이 저녁식사를 하러 왔다. 영국인 여러명과 함께한 적이 처음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영어를 잘 못했기에 식사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됐다. 다들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아들은 어머니와 할머님과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예상대로 그들의 대화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래도 곧 플로렌스 아주머니가 나를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온가족과 함께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끼리 대화를 하였다. 시간이 계속 흐르는데도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뜨거운 감정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눈물이 떨어지려고 할 찰나 드디어 플로렌스 아주머니가 나를 소개했다. 빨개지고 있던 내 눈은 그제서야 가라앉았다. 


2017년

1년 공백 후 영국 소도시에서 새롭게 영국생활을 시작했다. 6개월 정도 본사인 이 지역에 근무하다가 런던지사로 옮기려던 때였다. 내가 떠나는 것을 기념하여 함께 일했던 디자인팀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나를 잘 챙겨주던 아시아계 영국동료 나디아와 세 명의 백인 영국동료들과 함께였다. 내 영어는 여전히 다수의 영국인들과 동시에 대화하기에는 버거운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세 동료들은 점심 메뉴를 주문할 때부터 식사를 마칠 때까지 내가 잘 모르는 한 동료에 대해서 불평했다.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나중에 나디아는 그들의 배려심 없는 태도에 화가 났다고 한다. 그들의 행동이 그녀가 보기에도 매너가 없다고 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디아는 그러한 이유로 자리를 먼저 떴다. 안 그래도 소외되고 있는 나를 두고 간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다시 덩그러니 혼자 벽이 되고 말았다. 


2019년

지난 2년동안 내 영어수준은 워홀 시절보다 훨배 늘었다. 글로벌 회사인 것 치고 사내 영국인비율이 80%에 가까웠기에 영어실력이 쑥쑥 성장할 수 있었다. 런던 지사도 여전히 영국백인들 위주였다. 같은 팀인 동료들과는 적당히 편해진 상태였고, 그외 다른 부서들에서 사교적인 성격의 동료들과 친해진 상태였다. 

그날 알렉과 알렉스와 회사 부엌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알렉은 내게 말을 잘 걸지 않아서 여전히 어색한 사이지만 빠른 시간내에 가까워진 알렉스가 중간에 끼면 그나마 어울리기 편했다. 알렉스는 태권도를 배우고 동양인 친구들이 많아서 나와 금방 가까워졌다. 무난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일하는 방으로 향했다. 알렉, 알렉스, 나 순으로 작업실에 다다랐는데… 내가 들어가기 전에 작업실 안에서 정겨운 소리가 들렸다. ‘써프라이즈!‘ 알고보니 알렉스의 생일이었다. 알렉스와 한창 친해진 마사와 올리비아가 알렉스 자리에 플랜카드와 케이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동료들과도 장난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알렉은 마사가 귀띔을 해준 뒤라 깜짝 이벤트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나만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순간 마음 속에서 불이 화르륵 치솟았다. 여러 생각이 튀어올랐다. 나도 알렉스랑 친한데, 왜 마사랑 올리비아는 알렉한테만 알려주고 나한테는 알려주지 않은 거지? 더욱이 나도 마사랑 올리비아랑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알렉스에게 축하해줄 수 있는데, 왜 나만 뺐지? 내가 외국인이어서 그런가? 


좀더 경험을 해보니, 내가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영국 백인들은 끼리끼리 문화가 유독 심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이 같은 영국 백인이어도 쉽게 말을 걸지 않는다. 심한 경우 바로 옆에 앉아 있어도 등을 돌리고 반대편 사람과만 대화한다. 이것이 그들 방식의 shy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친해도 어떤 이벤트를 할 때 상대가 옆에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을 포함하는 것에 무심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지만 이러한 특성을 몸소 깨닫기까지는 꽤나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사람들과 있을 때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예의상이라도 같은 팀원에게 참여 여부를 묻는 성격이라 여기서 소외감이 더 쉽게 든 걸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알게 된 한국 친구는 오히려 자기한테 말을 걸지 않아서 편했다고 했으니까. 나도 한국사회에서 한국인이 다수고 외국인이 소수였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롯이 소수 입장으로 살아본 경험을 통해 소수에게 좀더 시선이 가고 함께 해야한다는 마음이 커졌다. 한 집단에서 누군가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모두가 웃으면 따라 웃고,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말하는 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겠노라.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애쓰던 내 뒷모습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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