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영국과의 인연이 햇수로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올초 한국에서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1년 반이나 된 시점이었다.
영국에서 겪었던 여유가 사라지고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 회사에 숨이 막혀갔다.
마음의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삶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영국에서 겪은 경험이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기 전에 생생하게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를 조잘조잘 들려주고 싶다는 바람이 점점 강해졌다.
결국 과감하게 회사를 관두고 ‘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경제적 안정이 끊긴 반면 하루하루 초고를 쓸 때마다 점점 마음이 평온해졌다. 영국에서 겪었던 힘든 일들이 치유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뿌연 안개 속에 떠다니던 기억들을 조각조각 모아 차곡차곡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영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멀찍이 떨어져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에서 타지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외국에 사는 사람은 구명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족과 직장 동료와 친구, 어릴 적부터 알아서 어렵지 않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지닌 나라, 즉 조국이 모든 인간에게 제공하는 구명줄이 없다.
정말 그랬다. 비싼 물가로 인해 집에서 매주 장을 보고 직접 요리했고, 이사부터 각종 관리비 등록까지 모두 혼자 했다. 한국에서라면 쉽게 도움받았을 일들을 눈물을 흘리며 혼자 꾸역꾸역 해나갔다. 게다가 내 몸뚱이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항상 경계하고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홀로 길을 걷는 와중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라와 인종이 다르다보니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부딪칠 때가 많았다. 같은 한국인들끼리도 갈등이 벌어지기 쉬운데 여기저기에서 왔으니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영어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정서까지 폭넓게 받아들여야 했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듯 시야를 넓히는 동안 수없이 눈치 보고, 싸우고 울었다.
그런데 어느덧 눈을 떠보니 나는 예전의 나보다 훨씬 배짱 두둑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쉽게 쫄았을 법한 사람들을 만나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내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생각하기보다 '저 사람 왜 저래?'하는 깜냥이 생겼다.
7년만에 본 친척오빠는 놀라며 내게 말했다.
"너 좀 많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에는 주위 사람들을 별로 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것봐 지금도 나 옆사람이랑 부딪칠까봐 손으로 가려주는 거.. 이런 거 예전에는 안 했었어. 진짜 많이 바뀌었네."
내가 그 정도였나 싶다. 하긴 예전에는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더 강했다. 재밌는 사실은 한국의 집단문화가 싫어서 간 개인주의 영국에서 훨씬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는 점이다.
살다보면 인생에서 물음표가 떠오를 때가 있다. 나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의 삶이 궁금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답을 찾으러 영국에 다녀왔다. 물음표의 연속이었던 영국에서의 시간은 내가 전폭적으로 성장한 시간이었다. 물음표는 분명 혼란을 야기했지만 동시에 더 넓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지금은 앞으로는 어떻게 살지 또다른 물음표가 진행 중이다. 내 글을 읽으면서 독자분들도 틀에서 벗어나 물음표를 많이 던져보기를 바란다. 또 모른다. 당신도 느낌표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