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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하 Sanha Nov 12. 2022

변하는 관계

마음의 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비밀이 없었다.


아니, 비밀을 만들어도 친구들의 성화에 다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다 공유하고 시끄럽게 웃고 떠들던 추억들이 떠올랐고


 얼른 다시 만나 그때의 향수를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 우리에겐 선이 그어져 있었고,


난 이렇게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만난 친구들은 모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옛날 같았으면 그 변화들을 캐물으며 궁금증을 해소했겠지만 지금의 우리는 서로를 배려할 줄 알았다.




한 친구는 예전에 헤어진 애인과 다시 만나며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다시 만났고 왜 마음이 움직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개인에게 예민한 문제이고 다수의 앞에서 밝히기 껄끄러울 수 있으니까.





또 다른 친구는 회사를 그만둔 지 2년이 지났다.


취업준비는 하고 있는지 어떤 회사를 갈 건지, 요즘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 애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아주 얕은 대화들만 나눴고 대화의 소재는 점점 떨어졌다.


은연중에 느껴지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모임은 생각보다 일찍 파했고 단톡방은 형식적인 인사들을 나누고 사라졌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가장 편한 장소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을 때 깨달았다.


난 그 친구들이 불편했구나.



 모든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없고, 서로가 기분 상하지 않을 선을 지키고,


 설령 기분이 상했더라도 티 내지 않는 관계가 불편했다.




비즈니스로 만난 사람과 서로를 다를 바 없이 대하면서도 남아있는 애매한 친분이 묘하게 다가왔다.


여전히 반갑고 여전히 좋지만 예전처럼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지 않았다.  










 변해버린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이 아쉬웠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할 생각은 없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이 약한 관계의 실을 붙잡기엔 지금 잡고 있는 인연들로도 충분하니까.


 실은 그냥 뚝 잘라서 돌돌 말아 내 기억 속 보관함에 넣어놓기로 했다.


그럼 사라지진 않을 테니까.  




















 그 친구들과의 관계를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냥 달라진 관계를 받아들이고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예전만큼 커다란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인정했을 뿐이다.


 앞으로 우리가 모두 모이는 날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둘 중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참 많다.


그날 우리는 모두 같은 걸 느꼈을 거다.


추억 속의 우리 같은 사이가 아니라는 걸.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만큼 이런 관계의 변화는 수없이 겪게 될 것이다.


 어쩌면 서운할 수도 있고 가느다란 실이라도 붙잡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끊어지는 실이 생길 테고 그땐 슬퍼하지 말고 돌돌 말아 보관함에 넣어놓자.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관함을 열어볼 땐 수많은 실 속에서 예전의 추억들을 떠올리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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