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시동생의 부탁을 들어주는 남편에게 물었다. 지금 한창 바쁜 시기인데 왜 거절을 하지 않냐고.
남편은 "그다지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고 내가 들어줄만해서 들어준 거야. 그리고 내가 이렇게 부탁을 들어주면 혹시 내가 부탁할 일이 있을 때 더 신경 써주지 않겠어?"라고 대답했다.
즉시 나와 남동생의 사이가 떠올랐다.
"누나! 나 이것 좀 해줘."
"야! 바빠죽겠는데 그런 걸 나한테 시키냐? 어후 정말. 아 뭔데?"
"됐어! 됐어! 해주지 마!!!"
이때부터 남동생과 개싸움이 시작된다.
어차피 해줄 거면서 왜 투덜거리냐고 똑같은 말을 서로에게 퍼붓는다.
늘 이런 식이다 보니 남동생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고 서로에게 원망의 마음만 쌓였다.
남편은 이런 나에게 한마디 조언이나 훈계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안 좋은 감정으로 휩싸인 사람에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실천하지 않는 백 마디의 말보다 실천하는 한 번의 행동이 더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배워서) 전화로 이것저것 부탁해도 일단 알겠다고 대답한다.
가끔 너무 바빠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때면 사정을 잘 이야기하고 미안함을 표시한다.
아이들은 아빠의 설명에 실망했던 기분을 금세 회복한다. 아빠는 신뢰가 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호감이 가고 마음이 간다는 것을 남편을 통해 배운다.
갑자기 전화해서 엉뚱한 부탁을 해도 일단은 긍정의 언어로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 줄 줄 알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를 베풀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큰 축복임을 결혼 12년 차에 또 한 번 느낀다.
물론 내가 부탁한 글쓰기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쓰자고 했지만 게으른 내가 안 쓸 수도 있고 남편이 바빠서 못 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부탁에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는 그 마음이 고마워 쓰지 않아도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남편 덕분에 나도 성장하고 있다.
농담으로 자식을 셋 키운다고 구시렁대는 나를 보며 웃는 남편도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