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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을 걷고 배추를 심어요

어상천 수박과 가을배추 이모작을 아세요?

by 유희나

어상천면사무소에서 3년 간 근무를 했다.

아이 둘을 힘닿는 대로 키울 수 있었고 부족하지만 즐겁게 영어수업을 마련해 줄 수 있었던 이유도 1900명이 살아가는 작은 시골마을 행정직 주무관이었기 때문이다.


작지만 특별한 시골마을을 속속들이 모두 안다 말할 순 없지만 봄여름가을 작은 새싹들이 나고 부지런히 작물을 키우고 거두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들을 3년 간 봐 왔으니 이곳 어르신들의 일상과 스케줄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말할 수 있다.


어상천은 수박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단양 하면 마늘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수박 마니아가 있다면 아마도 한 번쯤은 '어상천수박'이라는 고유브랜드를 들어봤을 것이다.


어상천 수박이 자라나는 모습을 3년 간 봐 온 시골 면서기로서 조금 특별한 수박에 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우선 이 마을 수박은 참으로 크고 달다.

평균적으로 마을에서 생산되는 수박 한 통의 무게는 6KG~ 10KG 이상이다. 6KG짜리 수박은 작은 축에 드는데 수박이 어찌 이리도 크게 자라나? 눈을 휘둥그레 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을에 몇 년간 근무하면서 수박재배의 몇 가지 비법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다.

어상천 수박은 줄기마다 한 개의 꽃만 남긴다.

그리고 박과 수박을 접 붙여 수박크기를 박만큼 키워내는 것이 이 마을 농부들만이 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이라 했다. 최고의 수박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7월이 되면 마을 입구부터 면소재지로 이르는 큰 밭들에 조롱조롱, 주렁주렁 수박들이 열린다. 아침마다 차를 몰며 면사무소로 가는 길은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진녹색의 예쁜 수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계란만큼 작은 수박이 한 달여 만에 두 팔로 안기도 버거운 사이즈로 크는 걸 보면서 농사 한 번 제대로 지어본 적 없는 면서기는 참으로 신기한 느낌이었다. 역시 기술자들이 키워낸 수박은 맛도 있고 멋도 있다.


수박이 익어가면 신물을 덮어줘야 한다. 뜨거운 햇볕에 수박이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수박밭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꽤나 멋진 포토존이란 생각을 해 봤었다. 참고로 모델은 밭주인의 따님이다.



이렇게 한 여름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화상 없이 잘 자란 수박은 캄캄한 오밤중 큰 트럭에 실려 전국으로 떠나는데 이 맘 때면 면사무소도 수박을 실컷 얻어먹는 시즌이 된다. 마을 이장님과 어르신들이 수박을 정리했으니 농협직원도, 면사무소직원도 소방서직원들에게도 한 해 잘 지켜줬으니 감사의 뜻이 담긴 두 팔로 안기도 버거운 수박들을 선물로 보내주신다.


7월 말 수박을 걷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배추를 심기 시작한다.

수박을 걷고 배추를 심는 이모작이다.

수박도 하염없이 귀여웠는데 수박이 떠난 자리에 작은 배추를 옮겨 심으면 옹기종기 작은 배추들이 얼마나 앙증맞고 예쁜지 모른다.


올 가을 김장용 배추들이 열심히 자라고 있습니다.


올해도 수박이 자라난 비옥한 황토밭에 서늘한 바람을 따라 배추들은 사부작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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