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 쌤! 9월에 뉴욕이랑 워싱턴 가는 영어연수 프로그램이 학교 공지에 떴어요.
나 : 와! 민아도 신청하고 싶은 거야?
민아 : 네 근데 참가하는 동기를 써야해요
나 : 그럼 지선생한테 물어보자!
지선생은 ChatGPT다. 2016년에 출판된 <인간 vs 기계>라는 책에서 김대식 교수는 미래에 성공은 누가 더 좋은 인공지능 비서를 두었느냐에 달려 있게 될 거라고 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AI가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80년대에 대학교 다닐 때 인터넷이라는 것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떠드는 <뉴스위크> 잡지를 보면서 뭔 소린지 몰랐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 vs 기계>에 나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힌다.
예산 지역의 중학생을 모아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하고 홈스테이를 하는 단기 프로그램에 대한 가정통신문을 받았는데 선발 기준이 면접도 아니고 성적도 아니고 오직 지원서 한 장이라는 것이다. 내가 도와줄 테니 한번 써 보라고 숙제를 낸 후 써 온 것을 서너 줄 읽어보니,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라 저는 꼭 가고 싶습니다’라는 식의 속 빈 문장을 써왔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단 지선생에게 물어봤다. 중학생으로서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하고 싶은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뉴욕과 워싱턴 두 도시를 나누어 각각 7~8가지 이상 설명을 붙여 주었다. 나는 그것을 프린트해서 일단 영어 독해 공부를 했고 그 중 맘에 드는 것을 골라서 더 발전시켜 써보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아마 민아는 지선생에게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할 것이고 그 결과를 정리해 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에게 카톡으로 문장을 보낼 것이고 나는 그 문장을 내 방식으로 터치하여 신청서를 완성할 계획이다.
<인간 vs 기계>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사장님은 자신의 AI 비서에게 면접을 하라고 할 것이고 취준생은 자신의 AI에게 물어서 면접준비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누가 더 똑똑한 AI를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 될 거라고 했다. 이제 지선생을 사용하니, 똑똑한 AI 사용 경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는 아이들에게 지선생을 사용하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신문물은 빨리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것이 거부하는 것보다 낫다.
아이폰이 2007년에 출시되고 한국에 상륙하자 2009년 남편이 아이폰이라는 물건을 50만 원도 넘게 주고 샀을 때, 어린애처럼 새로운 기기가 나왔다고 덥석 샀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랬더니 앞으로 4~5년 안에 전 세계 사람들이 쓰게 될 거라고 하자 그렇게 비싼 폰을 누가 사냐고 코웃음을 쳤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아이폰 출시로부터 유치원 어린이까지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가 될 때까지 15년쯤 흐른 거 같다.
2016년에서 이미 8년이 지난 2024년 오늘 나는 수능 시험에서 문장 삽입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묻고 예문까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영어 번역까지 잘 해주었다. 큰맘 먹고 20만 원이나 내고 유료강의를 3년 전에 들으면서 배웠던 언어논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수능이 불수능을 넘어 ‘용암수능’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달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영어 90점 이상 1등급 비율이 1.47%. 역대급이다. 상대평가로 해도 4%가 1등급인데 1.47%가 1등급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렇게 어려운 시험을 요구할수록 개인의 역량은 더욱 요구된다. 공교육이나 EBS 강의로는 부족하고 수준 스타강사의 강의, 언어논리에 대한 강의, 전반적인 인문학 지식도 필요하다. 심지어 국어과목에서는 비문학 지문으로 변호사 시험인 LEET에 나오는 지문까지 문제를 푼다고 한다. 고등학교 공교육에서 수능까지의 교육을 맡아서 해주지 않으니 각자 알아서 실력을 키워야 하는 것처럼 AI가 등장한 21세기에 개인의 역량은 대학교육에만 의존할 수가 없게 되었다.
개인의 역량은 결국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고 이제 신입사원을 공채로 뽑아 교육하던 기업이 이미 준비가 된 인재를 영입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예보가 있었다. 별 능력 없이 회사에 다니는 중간관리자의 자리는 없어질 것이고, 2시간 만에 쇼핑몰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송길영 빅데이터 전문가가 쓴 <시대 예보>에 나오는 이야기다.
AI의 등장해서 아이들이 숙제를 지선생에게 물어보고 베껴가는 것은 작은 문제일 뿐이다. 개인 역량을 각자도생으로 키워나가야 하는 이 현실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대학 입시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대학에 일단 진학하면 교육문제에 관심이 없어진다. 원하는 대학에 갔다면 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대학교육 이후 취업이나 진로에 대해서는 부모가 길잡이가 될 수가 없다. 사라지는 직업은 보이는데 새로 생기는 직업은 모호하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더불어 더욱 지능화되는 세상에서 도대체 과외선생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과외선생도 AI에 의해 대체 될 직업일 수도 있다. 과외선생의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면 가장 인간적인 일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사람답게 말하는 방식을 가르쳐주는 일이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제대로 한다거나, 목마를 때 물을 가져다주면 ‘감사합니다’하고 마시는 일을 아이들이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카톡을 질문을 해 왔을 때 대답을 구구절절하게 해주어도 대답 없는 아이들에게 화내지 말고 ‘잘 알았습니다’라고 답해 달라고 일러주는 일 등이다.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인사와 감사의 표현은 아무래도 사람과 상호활동 속에서 배우는 게 쉽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아 두렵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기지 않도록 관계 형성의 연습을 과외선생인 나하고 연습을 하면 좋을 거 같다. 수업시간 공부 말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더 나누어 볼까 한다. 배고프다고 하면 먹을 것을 먹어가면서 말이다. 그런 인생 선생이 되려면 일단 내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나 자신이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아이들이 내 말을 꼰대의 말이 아니라 마음에 담아 둘 말로 여길 것 같다.
상위권 학생들이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인터넷 강의를 100% 활용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많은 학생이 있다는 것이 또한 과외선생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새로운 개념은 책에 나오는 예시만으로 부족하다. 가정법을 배우려면 과거완료 시제, 조동사 완료형도 알아야 하니, 예전에 배운 문법을 다시 끄집어내서 설명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쌍방적인 소통에 의한 교육이 효율적이다. 소리를 높여가며 설명할 때는 내가 화가 난 것이고,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할 때는 내가 만족하고 있다는 비언어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고, 다른 친구들의 반응도 파악하는 일을 나와 공부하며 익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무리 AI의 시대가 와도 사람과 연결될 줄 아는 능력은 필요하다.
송길영 작가는 미래의 회사는 ‘플랫폼 프로바이더’이고 직원은 ‘콘텐츠 크리에이터’ 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선생은 유튜브, 조교는 출퇴근 없이 24시간 일하는 AI. 이런 무서운 시대에 무한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끊임없이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절망하지 않도록, 소셜미디어에 나오는 이미지들이 평균이라고 착각하며 괴로워하며 청춘을 보내지 않도록 과외 선생님들이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부한다고 단박에 성적이 오르지 않고, 나름 공부했는데도 성적이 떨어지는 입시의 현실에서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도록 다독여 주는 일은 아무래도 선생이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AI 시대가 될수록 과외선생은 지식뿐 아니라 자신의 삶도 잘 가꾸어야 할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