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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Aug 08. 2024

감사하다는 그 한 마디

과외 선생의 희로애락

나 : 와, 벌써 3년 시간이 흘렀네. 헤어지게 되니 마음이 섭섭하다.

두 명의 여학생 : (묵묵부답 딴청)

나 : 그동안 잘 지냈고 너희들 가르치면서 즐거운 시간이었어. 오늘이 마지막 수업인데 뭐 하고 싶은 말은 있니?

두 명의 여학생 : 없어요.   

  

4명이 한 팀인 수업에서 두 명의 여학생이 수업을 그만하게 되었다. 한 명은 아산으로 이사 가고, 한 명은 예산지역이 아닌 다른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서 아마도 과외를 바꾸려 하는 모양이다. 정말 매번 학생이 나갈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게다가 아이들 중에는 3년이건 5년이건 긴 시간 동안 수업을 이어오다가 마지막 시간에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면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학생들이 있다. 질문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빠 엄마가 돈 벌어서 돈 내고 교육 서비스를 받았을 뿐인데 무슨 말을 하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저에게 듣고 싶으신 거냐 하는 표정이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단 한마디. ‘감사했습니다’    

 

과외 선생을 하다 보면 수많은 학생을 만나고 수많은 학생을 떠나보낸다. 학생이 새로 들어오면 이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하는 호기심과 성적을 올려보자는 다짐과 희망과 함께 성적을 올려야 하는 부담 등이 밀려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학생에게 정을 준다. 손님 대접하듯 학생을 대한다. 교실이 쾌적하도록 온도를 맞추고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쓸 때는 최대한 반듯하게 쓰려고 한다. 목이 마른 학생에게는 얼음을 동동 띄운 차가운 물을, 배가 고픈 학생에게는 빵이나 과자를, 졸린 학생에게는 커피를 타준다. 외국 여행에 다녀오면 아이들과 먹을 과자와 초콜릿을 꼭 챙겨온다.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나의 자존감은 솟아오르고 성적이 떨어지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진다. 마트나 식당에서 어머니를 만날까 두려워진다. 이렇게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합쳐 4회의 시험을 치르고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보내면 1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시험의 긴장과 방학의 느슨함이 반복되면서 리듬을 타고 켜켜이 아이들과의 시간이 쌓여간다. 다 공부한 영어교재가 쌓여가듯.    

  

학생이 나갈 때는 실망감이 크다. 우선 나의 자기 효능감이 떨어진다. 이사를 하더라도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에 진학 한다 해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믿으면 학생들은 계속 수업을 이어간다. 그러니 무슨 이유가 되었든 내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만두는 것이긴 하다. 1:1 수업이 아니라 3~4명의 아이들을 함께 가르칠 경우 모든 학생을 역량에 맞추어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힘들다. 내가 모든 아이의 수준을 다 맞추어 주기는 힘들다고 위로는 하지만 내가 뭐가 부족했던 것인가 반성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어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모두 남탓이고 남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한 나르시시스트이거나 성격장애자이고,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노이로제 환자라는 말을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르시시스트도 노이로제 환자도 아닌 적절한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애쓴다. 학생이 나간 것은 내가 엉터리 선생이어서도 아니고 학생이 나처럼 좋은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멍청이어서도 아니다. 학생과 선생은 서로의 요구와 필요를 찾 교육 서비스 시장에서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로 만나는 것이라고 건조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돈거래에 의한 이 시장 질서에서 그래도 마음을 주고받고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기적 같은 일은 신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지 매일 받아먹을 양식은 아니다.     

 

마지막 수업을 하던 두 여학생은 나에게 실망감에 이어 모멸감을 주었다. 이 시간이 마지막 시간이니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는 수업이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설명을 이어가고 있는 중에도 둘이서 속닥거리고 낄낄거렸다. 나는 정색을 하고 선생님이 말할 때 그렇게 떠드는 것은 정말 무례한 짓이라고 경고를 보냈다. 조금 전에 아이스크림 같이 먹으면서 학생들에게 덕담을 해 주었지만 내가 말하는데 떠드는 꼴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말하는 중에도 옆 친구와 말을 하고 잠을 자고 딴 생각하는 것이 일상화된 요즘, 내 수업 시간에 떠드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과외 수업 20년 넘게 하면서 내 앞에서 떠드는 애들은 처음 봤다. 마지막 시간이니 수업을 잘 마무리해야지가 아니라 마지막 시간이니 아무 영양가도 없는 수업이고, 들을 필요도 없으니 떠들면서 시간을 때우자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갈 때 두 여학생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안녕히 계세요 하고 평소처럼 인사하고 나갔다. 혹시나 하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하나 기대했으나 역시나 그냥 나가 버렸다. 나는 3년 동안 그들의 부모님이 준 교육비에 감사하고 내 수업을 들으러 열심히 결석하지 않고 와준 이 두 여학생에게 감사하면서 내 마음을 다독였다. 내가 교육 시장의 한 상품으로 그들에게 여겨졌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로 인해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과외 선생이 느끼는 두 가지 기쁨이 있다. 하나는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도록 수능 영어 1등급을 받게 도와주는 것이다. 어제도 마트에서 올해 연세대 원주 캠퍼스 의대에 입학한 학생과 엄마를 만났다.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의 합격 소식에 나는 가슴이 뛰었었다. 의대나 명문대가 아니어도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갈만한 성적이 나오면 나는 정말 기쁘다. 충남대 원광대등 지방대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과에 합격 소식을 전해오면 눈물도 찔끔 난다.


또 하나는 졸업을 하고 스승의 날이면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찾아와서 같이 밥을 먹고 진로나 사람들과 관계를 상담하는 학생들이다. 얼마 전에 결혼한 지 5년 차에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 살이 된 나의 옛 학생을 만났다. 인터넷 쇼핑몰을 부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옷을 몇 벌 사주었더니 나에게 점심을 대접해 주었다. 나의 푸른 젊은 시절에 단 몇 달 동안 공부한 학생과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점심까지 사준 그녀는 나에게 선물 보따리를 내보였다. 너무 예쁜 블라우스와 롱스커트였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베이비 블루 블라우스에 인디고블루의 긴치마. 그래도 난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있구나 생각하며, 3년씩이나 공부하고도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나가버린 두 명의 여학생에게서 받은 상처를 나 혼자 말없이 꿰맬 수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하건 사교육을 받건, 회사에 다니든, 대학원을 다니든, 인간사는 모두 인간관계라는 날실과 씨실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매일 날실과 씨실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인생이라는 옷감을 만들어 간다. 그 옷감에 아름다운 무늬가 만들어지고 좋은 촉감을 창조하려면 ‘감사’라는 무형의 질료를 넣어야 한다. 감사는 여러 말들을 포함한다. 믿음이나 사랑과 같은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단어가 다 들어있다. 감사하다는 말을 잘하면 인생이 잘 풀릴 거라는 인생의 지혜가 요즘은 확실해진다. 감사하다는 말이 간지럽게 느껴진다면 그냥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면 된다. 웃는 것도 습관이고 감사하다는 말도 몸에 배어야 잘 나온다.     

 

복이 와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야 복이 온다. 그래서 옛날 코미디 프로그램 제목이 ‘웃으면 복이 와요’. 나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도 매일 말해준다.   

  

‘감사하면 복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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