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혜숙 6시간전

두 번째 캘리그라피 전시회

아마추어가 좋아


 방문객 : 이 액자가 5천 원 맞아요?
 나 : 네, 싸니까 2개 사세요!
 방문객 : 이거 너무 싸게 받으시는 거 아니에요?
 나 : 아 그런가요? 내년 전시회 때 가격 인상해야겠네요, 하하     


  ‘참글 캘리그라피’. 참으로 글씨를 좋아하고 참된 글씨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에서 지은 캘리그라피 동아리 이름이다. 글씨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캘리그라피를 하고 있다. 초보자들에게는 가르치기도 하다 보니 초심에서 연습하게 되는데, 가르치는 일이 곧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늘 깨닫는다, 글씨보다 사람이 좋아 모이기를 힘쓰다 보니 글씨가 제법 여럿 완성되어 전시회를 열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전시회다.


대한 성공회 예산교회 옆에 신명 유치원이 있었는데, 그 유치원이 2017년 문을 닫았다가 도시 재생사업으로 리모델링이 되어 다시 태어났고, 우리 동아리는 거기서 전시회를 열었다. 죽었던 유치원이 지역 주을 위한 공간으로 부활했다. 죽었던 공간이 기적처럼 살아난 것처럼 전시회를 돌아보면 기적같이 사람들이 모였고 기적같이 그 모임 안에 우정이 꽃피었다. 기적은 소소한 일상에도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어있다.
 
   작년에도 올해도 각자 작품을 판매했다. 판매하기에 좋게 작은 액자에 문구를 써서 단돈 5천 원. 이것은 천원의 행복이라는 대형생활용품점이 있어 가능했다. A4 용지 만한 액자는 2만 원에 좀 더 큰 작품은 3만 원에 팔았다. 또 천 원짜리 엽서, 책갈피도 준비했는데, 방문해주신 분들이 이거 너무 싼 거 아니냐고 돈을 내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작품을 판매하는 이유는 돈을 벌겠다는 것은 아니다. 내 글씨가 다른 이들의 마음에 들도록, 또 글씨에 담은 의미를 전하려고 애쓰는 과정은 단지 상거래 이상의 의미가 있다. 캘리그라피는 글씨뿐 아니라 글에 담긴 의미가 마음에 닿을 때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내 작품 중에 가장 많이 사람들이 좋다고 칭찬해 준 것은 윤동주의 ‘서시’였다. 우리 민족의 정서라고 할까. 이렇게 비장하고 가슴 아픈 젊은 시인의 외침이 가장 사랑받는 시라니, 즐거움보다 결연함에서, 행복보다 비통함에서 우리는 더 마음에 큰 울림을 경험하는 것 같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라고 쓴 내 캘리그라피가 전시 첫날 팔리고 팔렸다는 스티커를 붙여 놓았는데 서너 분이 사고 싶다는 말씀을 해서 다음 전시회 때도 서시를 쓰려고 한다. 하나가 아니라 서너 개는 써 놓고 팔면 되지 않을까 은근 기대를 하고 있다.


수익금 일부는 각자 자발적으로 공간 활용을 허락해 주고 향기 좋은 커피까지 드립으로 내려 먹도록 해주신 성공회 교회에 헌금하기로 했다. 이번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팔고 감격한 회원들이 많다. 아마추어 작품인데 돈을 내고 사다니, 너무 기쁘다고 했다.


  아마추어. 우리 모두는 아마추어다. 프로답게 전문가답게 되는 것도 좋지만 참글 캘리그라피는 아마추어를 추구한다. 아마추어, amateur라는 영어는 신기하게도 프랑스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아마추어 앞에 붙은 ama는 사랑 amor을 뜻한다. 아마추어는 프로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고 어설프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직업’ 수준은 아니지만, 열정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다음 전시회도 아마추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저렴한 대관료가 있는 동네 전시장이 있지만, 지금처럼 신명 유치원에서 전시를 계속 이어나가자고 결정했다. 전문 전시장에 걸자면 일단 표구비도 수십만 원 들 것이고, 그것을 사는 사람도 ‘이거 너무 싸게 받으시는 거 아니에요?“라고 질문 할 수 없기에 그냥 이렇게 소소하고 오종종 소박 담백하게 이어가는데 만장일치였다. 캘리그라피로 직업을 삼아 돈을 벌 생각이 전혀 없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격려해 주며 글씨를 쓴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지난 한 학기 동안 대학원 수업에서 F.D 모리스라는 영국 19세기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배웠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영국 국교 성공회 내에 분열이 일어났다. 진정한 신학적 논의와 교리적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주도권 싸움이었다. 성직자의 권위, 성사와 전통에 목숨 건 앵글로 카톨릭과 성경만이 중요하고 전례와 전통을 비본질이라고 하는 복음주의자들 둘로 나눠 원수가 되었다. 이 싸움에서 모리스라는 철학자는 양 진영에 일치를 가져오기 위해 상호존재, 상호의존이라는 개념의 커뮤니언 사상과 포용성의 신학을 펼쳤고 그것이 성공회의 정신이 되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왜 이 ‘포용’이라는 것이 안 될까 하고 우리에게 질문하셨다. 그리고 간단히 요약해 주셨다. ‘쪽팔림과 잘난 척’ 때문이라고. 자기방어 self protection는 쪽팔리는 자신을 숨기려 하는 노력이고, 자기홍보 self promotion는 좀 더 잘나 보이려고 자기를 포장하고 허세를 부리고 아는 척 있는 척, 있는 척하는 모든 행동을 말한다.


  캘리그라피 모임에는 쪽팔림도 잘난 척도 없다. 글씨를 못 쓴다고 창피할 것이 없고 글씨 좀 쓴다고 자랑할 것도 없다. 다만 서로서로 글씨를 잘 쓰게 도우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쓰고 서로 보여주고 칭찬해 주는 모임이다. 아마추어들이라 마음에 짐이 없다. 작은 엽서나 작은 액자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 우리가 점심시간에 식탁으로 쓰는 탁자 위에 올려놓고 관람자들이 글씨를 아래로 내려다보게 구성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전시장에서는 그림을 눈높이나 위로 쳐다보아야하는 것과 달리 작품을 가까이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손으로 만져보고 얼굴을 작품에 가까이 대고 보아도 되는 편안한 전시였다.

  캘리그라피 회원님들 중에는 실력이 나날이 늘어 일취월장하신 분도 있고 아직 완전 초보인 분들도 있다. 이미 자신의 미적 영역을 개척한 분도 있고, 실력이 늘지 않아도 조바심 없이 그냥 즐겁게 쓰시는 분도 있고, 언제나 당신이 쓴 것에 만족해하시는 내년이면 팔순이신 어르신도 있다. 나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돕는 코디네이터로서 나의 존재감을 느낀다. 행복한 마음으로 늘 캘리그라피 시간을 마친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고 나도 조금씩 글씨가 나아지고 있고, 영문 캘리그라피를 섭렵하신 분께 내년에는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지난 20년 넘게 돈으로 맺은 인간관계가 내 삶을 지배해 왔다. 돈을 받았으니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냈으니 가성비 따지며 효율을 계산하는 관계들. 그런 관계들을 벗어나 연결감 만으로도 좋고, 쪽팔림도 잘난 척도 필요 없는, 오직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사랑의 빚만 지는 그런 관계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도 은퇴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캘리그라피는 내 은퇴 이후 가장 큰 삶의 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캘리그라피를 10년 전에 처음 배울 때, 이것이 나의 은퇴 생활에 이렇게 큰 부분이 될지는 몰랐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었다. 인생은 의도한 것보다 의도치 않은 것들에 의해 더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점점 진실이라고 느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