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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소리 Jun 14. 2024

제사와 대하소설

제사문화를 생각하다

     

 4월이 되어 시어머님 기일이 다가오자 큰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든이 넘으시고 거동이 불편해지면서부터 제사 준비를 어려워하신다. 설날처럼 밥과 국만 준비해 놓으시겠다고 한다. 삼색나물과 전, 수육과 조기를 준비해 오면 좋겠다는 전갈이다. 둘째 동서는 과일과 약과를 준비해 오신다고 한다. 나는 흔쾌히 대답을 하고 떡집을 들러서 시장을 보러 갔다. 

 우리 집은 막내지만, 막내니까 집안에서 제일 젊은 우리가 제수 마련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시댁은 장손이 없는 관계로 아직 제사를 다음세대에 물려주지 못하고 있다. 

 제수를 마련하고 우리는 시고모님을 모시고 가평 형님 댁으로 갔다.


 큰 형님은 차례를 지내거나 제사 때에 절을 한 후에는 그동안 자녀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고하고 예전에 있었던 부모님의 덕행을 칭송하는 순서로 제사를 진행하신다. 

 “어머님, 아버님 기일을 맞이하여 저희들이 모였습니다. 어머님의 지혜롭고 담대하신 모습을 보고 배워 저희들이 이렇게 잘 지내고 있사옵니다.”를 시작으로 이번에는 해방이 되고 지주였던 시부모님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택 감금되어 있다가 한밤중에 몰래 집을 빠져나와 기차를 타고 평양과 개성을 거쳐 다시 걸어서 예성강을 건너 남으로 오던 이야기를 하신다. 우리나라 근대사를 듣는 것처럼 흥미롭다.

 예성강 근처 마을까지 어렵게 내려온 후 하룻밤을 지내고 가려고 방을 얻었는데 저녁에 주인집 여자가 슬며시 나가는 것을 보고 어머님은 자려고 누운 아이들을 깨워 뒷동산으로 올라가 숨어있었다고 한다.  잠시 후 예상대로 주인여자가 내무서원을 데리고 나타났다고 했다. 지혜롭게 대처를 하셨기에 남으로 올 수 있었던 시어머님은 그 후 뒤따라 넘어온 친척을 만삭의 몸으로 안동까지 안내하고 돌아오다 기차에서 출산을 하셨고 그래서 남편은 어려서 별칭이 차복이었다고 한다. 남편의 어릴 때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시어머님은 18세에 결혼을 하여 30이 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여 작은댁을 얻는 고충을 겪었는데 32세에 첫아들을 낳고 2~3년 터울을 두고 둘째와 셋째 아들과 딸 둘을 줄줄이 낳고 마흔여덟에 막내아들을 또 낳는 바람에 남편은 쉰둥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그래도 시어머님은 정정하셔서 별칭 많은 막내아들이 결혼을 하여 둘째를 낳을 때까지 아이들을 보살펴 주셨다. 

  그렇게 평안도가 고향이신 시어머니와 살면서 이북식 김장도 배웠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도 한동안은 이북식 김장을 하였다. 그런데 생태토막을 넣는 그 김장 담그기가 어려워졌다. 기후 온난화로 냉수 어종인 생태가 러시아 쪽으로 올라가 생태를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환경도 사회도 변하면서 제사도 간소화가 되었다. 예전에는 제사 때문에 큰아들은 결혼 대상자로 기피하는 현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제사가 재미있는 이벤트처럼 여겨졌다. 

 제사를 지내며 큰 형님이 부모님께 “영빈이 내외가 정성 들여 제수를 마련해 왔사오니 맛있게 흠향하옵소서” 하고 고할 때 나는 어깨가 으쓱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제사 때마다 부모님께 칭찬받는 아이처럼 마음이 환해진다. 그래서 제사 흥정을 하러 다닐 때에도 즐거운 기분이고 전을 부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제사 때마다 흥미진진한 근현대를 살아가신 지혜로운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롭다. 

 6.25 때 한강다리를 건너 강나루에 아이들을 내려놓고 시어머니는 다시 쌀을 가지러 집에 가셨다가 다리가 끊기는 바람에 부모님을 잃어버린 채 4남매는 아이들끼리 피난민을 따라 몇 달을 걸어서 대구까지 피난을 갔고 어머님은 이러이러한 아이들을 보았느냐고 수소문을 하면서 따라가서 대구 피난민 수용소에서 만난 이야기는 정말 아슬아슬했다.

 제사 때마다 듣는 토막이야기를 모으면 대하소설이 될 것 같다. 누구에게는 악몽처럼 느껴지는 제사이야기가 나에게는 흥미로운 이벤트처럼 여겨지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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