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소리 Dec 02. 2024

굴러온 돌과 새우깡

남편의 본심

 이팝나무 하얀 꽃들이 가로수 길을 환하게 밝히는 계절이 왔다. 바람도 싱그럽다.

 예전 같으면 추운 겨우내 막혔던 봉사 활동으로 부산스러웠을 계절이다. 지금쯤이면 어머니봉사단과 함께 영월 지역으로 봉사를 갔을 때이다. 

 재직하던 학교는 어머니봉사단이 있어서 매년 같은 지역으로 봉사를 갔다. 해외봉사단체인 ‘해비타트’와 함께하는 사랑의 집짓기, 겨울에 쓸 연탄 미리 들여 드리기, 겨울 이불 세탁하기, 목욕차를 운영하여 목욕시켜 드리기 등을 하였다. 


 퇴직과 함께 좋은 계절은 와도 그때처럼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가슴 찡한 활동을 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경기교육자원봉사협의회’와 20여 년 함께해 온 무료 급식뿐이다.

 오늘은 그 무료 급식 봉사 활동이 있는 날이다.

 매주 토요일 수원역 ‘정든 터’에서 점심을 제공하는 활동이다. 보통 150분에서 170여 분이 식사를 하시는데 밥과 1국 3찬의 음식과 카스텔라를 제공한다. 7명~12명의 봉사자들이 참여하여 음식장만부터 배식까지 한다. 9시부터 시작하여 쌀을 씻어 3개의 가스 밥솥에 얹고 국을 2통 끓이고 소고기불고기와 나물 반찬 등을 마련한다.     

 무료 급식 주방은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 그런데도 그는 토요일만 되면 8시쯤부터 밥을 채근하며 급식 주방에 9시 전에 도착해야 한다고 강조를 한다. 사실 그가 이 급식 봉사에 함께 하게 된 것은 3달여 밖에 되지 않았다.

 30여 년간 봉사 활동을 하면서 남편에게도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런데 세 달 전 내가 팔을 수술하고 일을 하기가 어려워 대체 인력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봉사자들이 대부분 어머니들이어서 무거운 것 들 때와 고기 볶을 때는 남자들의 힘이 필요하다. 그는 한번 두 번 참여하더니 이젠 나보다 더 열심이다. 아니 이젠 이곳 주방의 봉사단들이 나는 안 나와도 그는 없으면 안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온다.

 처음 그가 한 일은 당근 채 썰기였다. 집에선 숟가락 하나 거들지 않던 그가 채 썰기의 달인이 되었다. 커다란 50명분 밥솥의 밥은 접시로 퍼서 통에 담는데 힘이 보통 드는 게 아니라 남자가 퍼야 한다. 이제 그는 밥 퍼 달인도 되었다. 장만된 음식을 역전까지 운반하려면 차가 2대 필요하다. 봉고에 음식을 싣고 배식과 설거지하는 사람까지 가려면 한 대가 더 가야 한다. 수원역까지 운전도 그가 맡았다. 두 번째 급식 봉사를 하고 돌아왔을 때였다. 그는 이의를 제기했다. 집에서는 꼭 화를 내면서 잔소리를 하기에 어떤 잔소리를 하려나 하고 내심 걱정이 앞섰었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것은 추운 날씨에 봉사자들이 설거지를 하며 바지와 신발이 다 젖는데 장화와 발등까지 내려오는 방수 앞치마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며 주인 행세를 한다.

 심지어 돈이 안 되면 자기가 사 오겠노라고 큰 소리를 친다. 우리 단체는 1 계좌 만 원짜리 회원 100여 명이 모여 월세와 급식 자재비를 마련하는 처지여서 살림이 넉넉하지 않다. 그래도 필요의 타당성에 모두 공감하던 차여서 논의를 하던 중 독지가가 생겨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덕분에 설거지를 해도 옷이 젖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모두들 좋아한다.

 또한 식사를 하고 나가시는 분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일도 그가 맡았다. 한 분 한 분에게 맛있게 드시라고 덕담을 하며 나누어주는 모습을 보면 나는 또 헛웃음이 나온다. 20년 해 온 나보다 자기가 더 주인처럼 행동을 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급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봉사자 한 분이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제가 어제 남편과 친구 아버지 조문을 갔는데 절을 두 번 하고 세 번째 절을 또 하려고 엎드린 거예요. 순간 아차 했지요. 얼른 ‘아버님을 존경해서 한 번 더 했어요.’라고 말하며 일어섰어요.” 그들 부부는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놀리는 바람에 싸울 뻔했다고 한다.

 “남편이 계속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서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헷갈렸다. 산 사람에게는 한 번, 제사에는 두 번, 고사에는 세 번 절하는 거 다 안다.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도 남편은 ‘새우깡’이라고 계속 놀렸어요.”

 “새우깡이요?”

 “네, 손이 많이 간다고 놀리는 말이요” 우리들은 ‘와하’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이 말한다.

 “어이, 새우깡,” 

 “웬 새우깡?”

 “당신도 손이 많이 가잖아, 내가 봉사를 안 갈 수 없는 게 허술한 새우깡 때문인 거 몰라요?”

 남편이 봉사에 열심히 참여하기에 인간적인 성찰의 경지에서 나온 것인 줄 알았더니 순전히 내가 걱정이 되어서 열심히 하는 것이라니...

 주방에서도 이리저리 잔소리가 심해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려 한다고 봉사자들과 흉을 보았었는데 나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를 하였다니...

 앞서 가고 있는 남편에게 소리쳤다. 

"그러지 말고, 그냥 사랑한다고 말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