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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ul 04.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6월 4주)

The Quiett, The Volunteers, TWS 외


"장점은 의도가 좋았다는 것. 단점은 의도만 좋았다는 것…"


1. The Quiett - [Luxury Flow]

베실베실 : 꽤나 많은 비판을 받았던 Westside Gunn (이하 WSG)의 작년 앨범 [And Then You Pray For Me]는 기획 의도와 배경만큼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언더그라운드만의 작은 파동인 줄만 알았던 드럼리스라는 장르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으며, 본인 역시 Travis Scott의 앨범에 참여하며 큰 인상을 남긴 만큼, 해당 장르의 선봉장으로서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해야 했을 시점이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존 최고의 히트 앨범 [Pray For Paris]를 잇는 제목,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라는 거창한 어그로를 끌며 발매한 본 앨범에서 그가 제시한 그 "새로운 무언가"는 트랩이었다. 그렇지만 21곡이라는 쓸데없이 많은 트랙은 진입 장벽을 너무 높이는 결과를 불렀으며, 느와르적 분위기는 유지했지만 앨범 내에서 드럼리스보다 훨씬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트랩 넘버들은 안타깝게도 기존 드럼리스와 WSG의 팬들도, 그리고 Scott의 곡으로 입문해 처음 음악을 접하는 유입 팬들도 모두 만족시키지 못했다. "새로운 음악을 해야 한다"라는 접근 자체는 합당했으나 "왜 하필 트랩인가", "왜 드럼리스와 트랩을 한데 섞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차라리 WSG가 필요 없는 트랙을 추려 드럼리스와 트랩을 분리한 더블 앨범으로 본 앨범을 발매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았으리라 확신한다.


서론이 길었다. 기습 발매된 더 콰이엇의 10집 [Luxury Flow]를 듣고 느낀 감상은, WSG의 본 앨범의 감상과 매우 유사하다. 한국에도 JJK와 서리를 필두로 드럼리스 장르가 서서히 판을 넓혀가고 있으며, 기존의 트랩이나 드릴 등 단순히 '타격감'과 '신남'에 초점을 둔 힙합 앨범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선택 자체는 매우 절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 유행하는 느와르적인 분위기에 드럼리스, 재즈 힙합, 칩멍크 소울 등을 활용한 붐뱁의 선택은 해외의 트렌드와도 부합하면서도 (그의 가삿말처럼) 10년 전에 늘 선보였던, 더 콰이엇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앨범의 앞부분까지만 해도 그러한 기조로 쭉 가는 줄만 알았건만, 4번 트랙 ‘UGRS’ 중반부부터 몰아치기 시작하는 드릴과 트랩 트랙들의 향연은 본 앨범의 집중도를 해치고 만다. 또한 더 콰이엇 라인인 창모나 릴러말즈 등의 피쳐링은 전혀 새로움을 주지 못하고, 결국 골백번도 넘게 들어온 그들의 랩핑과 탑라인 메이킹은 앨범의 트랙이 모두 '거기서 거기'에 머물게 해 준다. 뒷부분의 솔로 트랙들은 그저 순수하게 재미가 없으니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격언처럼, 이렇게 과거의 클래식한 스타일로 돌아올 거라면 조금 더 과감하게 기존의 트랩, 드릴 장르의 곡을 포기했어야만 했다. 피쳐링 역시도 식상하기 이를 데 없는 '이멤버 리멤버'를 과감하게 쳐내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했어야 했다. 더 콰이엇의 음악 커리어를 3개의 챕터로 요약한다면 본 앨범은 ‘일리네어’로 시작된 2기 이후 새로운 '3기의 시작'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선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미처 포기 못한 2기 시절의 장르, 사람들을 포기하지 못한 덕에 매우 찝찝하게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게 되어 버렸다.





"구름 없는 여름날은 더위 조심"


2. The Volunteers (더 발룬티어스) - [“L”]

등구 : 백예린 전문 프로듀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늘 함께 작업할 줄만 알았던 구름과 백예린이 갈라선 후 처음으로 발매된 앨범 [“L”]. 그래도 [The Volunteers] 때부터 밴드 멤버 모두가 앨범에 참여했었기 때문일까, 이전과의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의견이 꽤 많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역시 난 자리는 알 수밖에 없나 보다.


구름의 빈자리를 채우는 방법으로 그들이 택한 것은 백예린의 존재감을 키우는 방향인 듯하다. 전작만큼 에너제틱 하지 않고 차분해졌으며, 최소한의 악기로 튀지 않게 연주함으로써 백예린의 보컬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음악 색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이전 곡들과 비슷한 결인 ‘Psycho’, ‘Tell 'em boys’ 같은 곡들이 수록되기는 했지만, 탑라인과 리프의 후킹함이나 곡의 구성적인 부분에서 [The Volunteers]의 곡들보다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또한 ’Starfish on your head’와 ‘“L”’에서는 백예린의 보컬의 비중을 키우기 위해 연주에 힘을 뺀 것이 특히나 잘 보이는데, 그런 것에 비해 보컬이 입체적이지 못해 그 빠진 힘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음역대가 넓거나 강약이 뚜렷하지도, 랩을 하거나 연기를 하듯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긋나긋하게 부르는 것이 전부이다. 


공백이 생긴 상황. 이렇게 백예린의 보컬을 앞세운 감성적인 앨범이 멤버들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멜로디, 곡의 구성, 보컬의 한정적인 다이내믹에서 오는 지루함의 원인을 찾다 보면 자연스레 구름의 부재로 도달하게 된다.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 더 필요하지 않을까.





"TWS가 보여주는 첫 번째 여름"


3. TWS (투어스) - [SUMMER BEAT!]

도라 : 처음 만난 후 5개월 뒤, 여름 방학과 함께 TWS가 돌아왔다. 단순히 '청량함'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두의 곁에 모습을 드러내는 점이 TWS만의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장르적 통일감을 리듬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 깊었는데,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내가 S면 넌 나의 N이 되어줘’ 모두 1, 3박에 강세를 두고 있다. 게다가 스타카토에 가깝게 딱딱 짚어주는 가사를 통해 누가 들어도 TWS의 곡임을 연상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데뷔 n년차에 같은 패턴을 계속 보이면 모를까, 이제 160일을 넘긴 TWS에 색깔을 입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TWS는 '보이후드 팝'이라는 독자적 장르를 내세우며 데뷔했다. 비단 TWS뿐일까, 요즘 데뷔한다고 하는 아이돌들은 모두 독자적 장르를 하나씩은 들고 나온다. 대체로 음악적 장르로서 기능하기보단 그룹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데 일조하곤 한다. 그중 그룹 방향성과 함께 음악적 색깔을 확립하고 있는 것에 가장 가까운 그룹은 단연 TWS라 느껴졌다. '일상에서 아름다운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음악' 어디에도 끼워 맞출 수 있는 문구이지만 일상의 구체화를 통해 TWS가 보이후드 팝 장르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새 학기, 여름방학,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을 던져주고 거기에 디테일을 더해 한층 더 친근함을 느끼게끔 한다. 그야말로 섬세하게 세공된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이대로 보이후드 팝을 차근차근 쌓아나가다 보면, 막 입학한 TWS가 입대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모쪼록 독자적 장르를 가장 성공적으로 수렴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쉽지 않은 라틴 걸의 변신"


4. Camila Cabello - [C,XOXO]

등구 : 일단 이 앨범은 시기적으로도 좋지 못했다. Charli XCX가 [brat]으로 하이퍼 팝을 섞은 클럽 뮤직을 맛있게 말아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고, 드레이크가 켄드릭 라마와의 디스전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것도 아직 모두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하이퍼 팝 트랙인 ‘I LUV IT’을 들을 때도, 드레이크 피처링 트랙들을 들을 때도 일단 팔짱을 끼고 듣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음악적으로 그걸 뒤집을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Camila Cabello는 그러지 못했다. ‘I LUV IT’은 Carti의 피처링으로 재미와 힙한 요소를 캐치하기는 했지만 불안정하게 반복되는 보컬이 그저 Charli XCX의 톤을 흉내 낸 아류작처럼 느껴지게 한다. 드레이크가 피처링한 댄스홀 트랙 [HOT UPTOWN]은 카밀라보다 드레이크가 더 잘 보이며 주객전도가 된 느낌의, 특별할 것 없는 흔한 팝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드레이크 솔로곡 ‘Uuugly’는 이 곡이 왜 드레이크 앨범이 아닌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다른 트랙들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Twentysomethings’는 인트로의 포크 멜로디부터 앨범의 흐름을 끊으며 몰입을 방해하고, ‘DREAM-GIRLS’는 피아노 리프와 신스, ‘hey!’라고 외치는 코러스 등에서 크리스 브라운 시절의 Y2K 느낌을 내고자 한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시도가 곡을 이도 저도 아니게 만들며 촌스럽게 들리게 한다. 인터루드가 3곡이나 들어가야 했던 이유를 찾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카밀라는 이번 앨범을 통해 핫한 라틴 걸에서 벗어나 쿨하고 힙한 이미지로 변신하는 것을 원했던 것 같지만, 결국에는 시기적으로도, 앨범 퀄리티적으로도 힙하기는커녕 그녀의 포지션만 애매해져 버렸다. 





"통념을 뒤집은 창의성"


5. Kim Gordon - 'ECRP'

도라 : 나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를 늘상 보여주는 아티스트 Kim Gordon이 싱글로 돌아왔다. 호평이 자자했던 이전 음반 [The Collective] 이후 약 3개월 만의 이른 컴백이다. 1981년도에 결성한 록 밴드 Sonic Youth의 멤버로서 2011년까지 20여 년간 활동하며 얼터너티브 록, 그리고 익스페리멘탈 록의 기운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2019년 솔로 데뷔까지 성공리에 마친 그녀. 70대에 접어 섰음에도 레이지, 퐁크 등 새로운 영역에 끊임없이 발을 들이는 모습을 보자면 마르지 않는 크리에이티브함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익스페리멘탈 베이스의 음악을 꾸준히 만들어온 Kim Gordon이기에 불친절하고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번 싱글은 모두에게 익숙한 트랩 비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엔진 배기음 같은 사운드가 되려 기타로 연주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통상적으로 악기가 아닌 물건에서 나는 소리로 음악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한번 뒤집어서 악기로 소음을 표현했다는 발상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많은 창작자가 그러하듯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막연히 생각하기보다, 일반적인 명제를 시원하게 뒤집어버리는 게 때로는 더 창의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익숙함과 새로움 그 사이"


6. Porter Robinson – ‘Russian Roulette’

동봄 : 편안함과 특유의 감성 그리고 마치 곧 찢어질 듯한 사운드, Porter Robinson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세 개의 이미지이다. 일반적인 팝의 문법을 그대로 좇지 않고 본인이 가진 감성을 독창적인 사운드 디자인으로 엮어내는 이 아티스트의 색채감은 언제나 특징적이었다. 다만 본인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 이전 선공개 중인 싱글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그 변화는 그의 음악이 이전보다 조금 더 팝스러움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의 음반에서 아련하게 느낄 수 있었던 그만의 세계에서 한 걸음 벗어나 대중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듯한 느낌을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복잡하지 않게 흘러가는 리듬과 과하지 않은 보컬 효과, 편안한 멜로디 등에서 이러한 점이 더욱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친 사운드의 신시사이저를 곡의 중요 지점마다 배치했으며, 중후반에서는 특유의 감성까지 착실하게 챙겨 놓아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 역시 가져가는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emo 혹은 우울한 감성을 기조로 팝과 본인의 스타일 사이에서 잘 저울질을 해낸 곡이라 평가할 만했다.


이 ‘Russian Roulette’까지의 싱글 총 세 곡을 감상해 보면 예정된 앨범 [SMILE! :D]을 대강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우울함이 기저에 깔려 있는 편안함이 되지 않을까. 지난 앨범 [Nurture]가 자연에 안긴 듯한 편안함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Porter Robinson의 이번 앨범은 사실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진화에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도라', '동봄', '등구', '베실베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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