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11월 2주)
BIG Naughty, NCT DREAM, 더 픽스 외
"달달한 사랑 이야기는 이제 안녕"
1. BIG Naughty (서동현) - [“SIKE”!!]
키키 : 빅나티는 쇼미더머니 출연 이후 [낭만], [호프리스 로맨틱]에서 낭만적인 감성 힙합, 알앤비 등 다양한 장르로 특유의 서정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기존에 보여주던 알앤비 싱잉랩 느낌에서 벗어나 강렬한 힙합을 시도하며 팬들의 엇갈린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 앨범 [+]에서 키드밀리와 합을 맞춰 발매한 힙합 앨범을 시작으로 이번 앨범에서도 트랩 비트 사용, 로파이 스타일 등 힙합씬에 다시 발을 들이고자 하는 시도가 보여진다. 이는 기존에 빅나티가 해왔던 서정적이고 멜로디컬한 음악을 기대했던 팬들에겐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타이틀 곡 ‘Around You’에서는 Skinny Brown이 피처링 하면서 두 아티스트의 싱잉랩 스타일의 곡을 시작으로 이전의 달달하고 낭만적인 느낌에서는 벗어난다. 타이틀 곡뿐만 아니라 모든 수록곡에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피처링이 도배되어 있는데, 빅나티가 보여주고자 하는 음악 색깔과 트랙 간 일관성이 희석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Fucked up’에서는 다소 복잡한 사운드 레이어링으로 실험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동시에 난해한 느낌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티스트로서 기존의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빅나티 스스로 힙합은 아니라고 했지만, 요즘은 스펙트럼이 넓은 아티스트가 더 많은 주목을 받는 만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밀고 싶진 않지만, 힙합에 대한 더 많은 준비가 되었다면 앨범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지리스닝은 이제 그만!!"
2. NCT DREAM - [DREAMSCAPE]
둥 : 타이틀곡 선정에 실패한 앨범이다. 먼저, 캐치한 코러스, 기억에 남는 멜로디도 없는 심심하고도 일정한 진행이 가장 아쉽다. 또 무디고 질긴 음색의 신스 사운드와 하우스 장르의 합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하우스는 특유의 패턴이 존재하기에 사운드의 질감, 강약 조절이 더욱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지루함만을 더욱 부각시키는 사운드로 느껴졌다. 단순히 하우스가 해외 트렌드이기에 갖다 붙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다이내믹도 강약 조절도 부족해 이를테면 '그저 그런' 이지리스닝 케이팝에 그쳤다.
요즘의 케이팝에서는 끝없는 이지리스닝 만능주의가 느껴진다. 물론 이지리스닝으로 성공한 사례들이 있지만, 당연하게도 같은 전략이 모든 그룹에게 통할 수는 없다. 남자 아이돌은 팬덤이 가지는 영향력이 여자 아이돌에 비해 훨씬 크고 중요하기도 하다. SM 그룹의 팬덤은 유독 SM의 음악 전부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SM의 음악을 좋아해 온 사람이 완전한 이지리스닝 트랙을 반길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이 팀이 대중(또는 라이트한 청자)에게까지 어필할 타이밍이 아니지 않나 싶은데, 예컨대 라이즈와 엔시티 위시를 비롯한 수많은 후배 아이돌의 등장으로 인한 팬덤 유출,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높은 연차 등 이 팀을 둘러싼 상황들이 몹시 그렇다. 지금은 대중성보다 팬덤을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할 시기로 보인다.
그럼에도 수록곡들은 준수한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아프로 리듬으로 차분하게 시작되어 몰아치는 후렴구의 록적인 사운드와 속사포 같은 사랑 고백으로 뛰어난 완급 조절을 선보이는 ‘Flying Kiss’, 후반부의 재즈틱한 연주로 예상을 깨는 ‘YOU’, 어딘가 동방신기, 소녀시대의 음악이 떠오르는 아련한 멜로디와 이를 신스팝으로 재해석한 듯한 ‘하늘을 나는 꿈’까지. 전체적으로 힘을 빼는데 무척이나 집중한 것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적절한 변주를 꾀했다. 또한 NCT DREAM의 정체성과도 같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는 유지하되, 음악의 변화와 어울리게 잔잔하고 따뜻해진 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무엇보다도 중요한 타이틀곡이 팀의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 큰 문제다. 팬들이 느끼는 불만이 단순한 운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진지하게 팀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팝 섞인 밴드 음악, 이대로 픽스해도 괜찮을까"
3. 더 픽스 (THE FIX) - ‘TiCKi-TA’
루영 :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에서 결성된 이후, 2023년 펜타포트 슈퍼 루키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으며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밴드, 더 픽스(THE FIX)가 새로운 싱글 앨범을 발표했다. 이전까지는 멤버들이 주도적으로 프로듀싱을 해왔다면, 이번 싱글에서는 케이팝 프로듀서 Daniel Kim, VINCENZO가 더블 타이틀곡 ‘TICKI-TA’와 ‘Oddventure’의 작사, 작곡, 편곡에 함께 참여한 점이 눈길을 끌었던 부분이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차별점은 팝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였다는 점이다. ‘TICKI-TA’의 경우, 전반적으로 빠른 템포의 테크노 리듬을 활용하여 속도를 올리고, 'TICKI-TA-TA'를 빠르게 반복하는 훅을 쓰는 등 기존의 밴드 사운드가 중심이 된 곡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운드를 구현하였다. 후렴구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했고 그만큼 대중적으로 들리는 강점이 있었지만, 시그니쳐로 자리 잡은 묵직한 신스 베이스와 일렉기타 리프 중심의 강렬하고 웅장한 사운드와 분위기가 다소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던 게 아쉬웠다. 반면 ‘Oddventure’에서는 랩을 추가하거나 곡 자체에 강약을 조절하는 등 케이팝적인 요소를 추가하면서도 파워풀한 밴드 사운드를 그대로 유지하여 다채로우면서도 트렌디한 느낌의 밴드곡이라고 느껴져 좋게 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 트랙 ‘DARK’에서는 더 픽스 본연의 웅장한 분위기로 돌아와 마무리를 해줌으로써 앞의 두 곡에서 받은 낯섦이 중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Oddventure’와 마찬가지로 ‘TICKI-TA’에서도 밴드 사운드를 동일한 비중으로 가져가고, 더 픽스가 가진 특유의 묵직한 웅장함과 포스를 조금 더 살렸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팝적인 요소를 밴드 음악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새로움, 혹은 진부함 사이를 오가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정통 밴드 음악이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고, 대중성을 확보하여 청자들이 쉽게 따라 부르거나 기억에 남도록 할 수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팝 음악과 차별성이 크게 없는 양산형 음악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Oddventure’에서 팝적인 요소를 더한 시도가 새롭게 느껴지면서도 매력적인 포인트를 줄 수 있다고 느낀 것처럼, 음악적 융합을 시도하면서도 본연의 독창성과 차별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오늘날 밴드 아티스트가 당면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틱톡이 낳은 차세대 팝스타"
4. Addison Rae - ‘Aquamarine’
둥 : ‘Diet Pepsi’가 팝스타가 될 법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트랙이었다면, ‘Aquamarine’은 여러 장르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트랙이라 할 수 있겠다. 날카로운 튠의 신스 리프와 묵직한 베이스, 보컬과 랩이 적절히 섞여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데, 신비롭고 감각적이면서도 무게감을 확실히 잡아주고 있다. 특유의 나른한 보컬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하지만, 강한 리듬감으로 감상용과 댄스 음악 어느 쪽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듯한 음악이다. 더불어 몽환적인 보컬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섬세한 프로덕션이 돋보인다.
그 외에도, 보컬에 필터를 걸어 끊기는 듯한 연출 등 어느 정도 예측이 가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지루함을 덜어내는 약간의 변형들 역시 마음에 든다. 자잘한 디테일까지 메인스트림 팝의 작법에 충실하면서도, 뻔하지 않게 들리게끔 제작된 깔끔한 구성의 댄스 팝 트랙이다. 틱톡 크리에이터로 시작했음에도 이토록 팝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여주는 것이 놀랍다.
"조금 이른 찰리의 캐럴 선물"
5. Charlie Puth - ‘December 25th’
키키 : 찰리 푸스가 12월 7일 예정된 내한 공연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첫 캐럴 앨범을 발매했다. 이번 싱글은 캐럴에서 많이 쓰이는 4비트의 고고리듬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찰리 특유의 감각적인 멜로디 센스가 돋보인다. 특히 자주 사용했던 오토튠을 최소화하고 본연의 보컬 음색과 멜로디 라인에 집중한 점이 진정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단순한 4비트 리듬 안에서 멜로디 라인이 잘 들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의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건 찰리가 독보적이다.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랄까.
귓가에 맴도는 중독적인 멜로디가 매력적인 이번 곡을 통해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사랑받는 "캐럴 연금"의 반열에 올라 거리마다 울려 퍼질 것 같은 기대감도 든다. 캐럴은 플레이리스트에서 자주 반복 재생되기 때문에 이지리스닝 곡으로서 부담 없이 오래도록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살짝 이른 감이 있지만 11월부터 찰리의 캐럴을 들으며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내한 공연까지 기대가 되어 마음이 부푼다.
"맞아, 컨트리는 이런 노래였지"
6. Shawn Mendes - [Shawn]
루영 : 2022년 7월, 숀 멘데스는 정신 건강 상의 문제로 남은 월드 투어를 취소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이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그로부터 휴식기를 가진 2년 뒤, 이에 대한 소회를 비롯해 그간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한 심경을 담은 정규 5집 앨범으로 다시 대중 앞에 섰다. 이번 앨범은, 예전보다 차분하고 성숙해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대부분의 수록곡에서 컨트리 음악의 향이 짙다는 특징을 보인다. 선공개곡 ‘Why Why Why’, ‘Isn’t That Enough’을 비롯해 타이틀곡 ‘Nobody Knows’, ‘The Heart of Gold’, ‘The Mountain’에 이르기까지 곡 대부분에 컨트리풍의 어쿠스틱 기타 리프가 두드러지고, 다소 거친 느낌의 컨트리 가스펠 코러스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데뷔 때부터 포크 기반의 팝 음악으로 활동한 아티스트였지만, 이번에는 전작 타이틀곡에서 보여줬던 캐치한 리듬 대신 차분하고 느린 템포의 포크 팝, 컨트리 팝 음악으로 5집 앨범을 채웠다.
‘Who Am I’에서 그는 갑작스럽게 투어를 취소하여 많은 팬들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을 노래한다. 뒤이어 타이틀곡 ‘Why Why Why’에서는 전 연인 카밀라 카베요와의 결별과 공연 중단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담았다. 이처럼 그는 본인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과 심적인 고통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풀어내기 위한 장르로 컨트리와 포크를 선택했던 것 같다. 모건 월렌이 쏘아 올린 정치적 논란 이후로 컨트리는 미국의 정치적인 이슈가 먼저 떠오르는 음악이 되어버렸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일상에서 겪은 애환을 꾸밈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국민적 장르(White Man’s Blues)였음을 이 앨범을 통해 상기할 수 있었다. 톱스타로서의 모습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숀 멘데스'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진지함이 정성스럽게 잘 전달된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 '둥', '키키' 블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