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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Dec 12.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12월 1주)

ATEEZ, DEAN, 버둥, Ariana Grande, brb. 외


"진화 혹은 퇴보"


1. ATEEZ(에이티즈) - [GOLDEN HOUR : Part.2]

 : 에이티즈는 시리즈라는 장치를 굉장히 잘 써먹는 팀이다. 'TREASURE' 시리즈에서는 ‘해적왕’, ‘WONDERLAND’ 등 강렬한 드럼과 브라스가 돋보이는 웅장한 스케일의 곡을 선보이며 팀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후 'ZERO : FEVER' 시리즈에서는 ‘야간비행’, ‘Inception’, ‘Eternal Sunshine’ 등 더 멜로딕하고 감성적인 팝을 선보이면서도, ‘THANXX’, ‘멋’ 등 힙합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용 곡을 더블 타이틀로 함께 발매하며 강렬한 에너지가 돋보이는 팀의 색깔을 유지했다. 혁명을 주제로 한 'THE WORLD' 시리즈에서는 메탈 요소가 가미된 ‘Guerrilla’, 거칠고 공격적인 신스가 활용된 ‘BOUNCY’ 등 실험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며 앨범 전체적으로도 힘이 강하게 들어간 트랙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시리즈 별로 구별되는 이들의 음악 특성은 팬덤에게 다음을 기약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주기적으로 변화하면서도, 시리즈라는 명분이 존재하기에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여지를 주어 팬덤 이탈을 방지한다는 뜻이다.


이번 'GOLDEN HOUR' 시리즈는 특히 큰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전작들에 비해 확실히 가볍다. ‘Ice On My Teeth’는 미니멀한 트랩 비트 위로 현악기 사운드와 캐치한 코러스가 더해져 매우 가볍게 듣기 좋은 팝이다. 이들의 음악에서 꼭 등장하던 몰아치는 후반부, 파워풀한 고음이 사라지고 절제된 흐름, 단조로운 멜로디가 자리했다. 꾸준히 코어 팬덤을 겨냥한 강렬한 음악을 선보이며 어느 정도 확고한 팬층을 구축했기에 새로운 시도를 해볼 만한 타이밍이라고 느껴진다. 에이티즈는 공연 수요에 비해 유독 스트리밍에선 약세를 보이기도 했는데, 그동안의 음악들로 인해 자리 잡은 시끄러운, 과한 음악을 선보이는 팀이라는 진입 장벽을 낮추기에도 적절해 보인다.


다만 약간의 아쉬운 부분이 존재하는데, 이전의 가사와의 괴리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이다. "겸손 겸손"을 외치던 이들이 부와 성공을 자랑한다거나, "이 끝에 우린 어디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이 돼야만 하나" 등 성장을 위한 고민과 질문을 던지던 이들이 성과에만 매달리는 듯한 가사를 전하는 것이 진정 이들이 되고 싶던 모습이 무엇인지를 의심하게 한다. 또한 라이트한 청자 유입을 목표로 한다면, 콘셉트에만 충실한 가사가 아닌 어느 정도 청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트렌드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한다는 것은 이 팀의 큰 장점이지만, 변화 속에서도 팀의 색깔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DEAN X FKJ 완벽한 조합"


2. DEAN - ‘3:33

키키 : 예고 없이 돌아온 DEAN은 기다렸던 팬들에게 더블 싱글 앨범으로 두 배의 행복을 선사했다. 함께 협업한 FKJ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 FKJ는 전자 음악 씬에 혜성처럼 등장해 어쿠스틱과 재지한 느낌까지 잘 다루는 아티스트이다. 타이틀 곡 ‘NASA’ 속 R&B, 재즈, 일렉트로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우주에서 떠도는 듯한 몽환적인 사운드를 자아내는데, 그 속에서 DEAN의 힘을 뺀 듯 툭툭 내뱉는 보컬은 곡 전체에 공허한 감정을 불어넣으며 감정선을 이끌었고, FKJ의 클래식 피아노 선율은 마치 DEAN과 대화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며 곡 전체에 섬세한 균형감을 더한다. ‘Ctrl’은 ‘NASA’와는 또 다른 매력의 곡으로, FKJ의 신스 컨트롤이 돋보이며 DEAN의 초기 일렉트로닉 감성이 떠오르게 해 또 다른 만족감을 채워준다.


이전 ‘Die 4 You’를 이어받을 훌륭한 시리즈이다. ‘Die 4 You’가 몽환적인 R&B 사운드로 DEAN의 감성을 재확인한 싱글이었다면, ‘3:33’에서는 보다 재지한 질감과 미니멀한 구성을 통해 더욱 세련되고 클래식 분위기를 더했다. FKJ와의 콜라보를 통해 딘은 그 한계를 깨며 음악적 색깔을 더 짙어지게 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앨범을 보면 긴 공백기 동안 그저 쉬기만 한 건 아닌가 보다. 





"‘외유내강’을 음악으로 정의한다면"


3. 버둥 – [보호자]

루영 : 버둥. IZM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정규 1집 [지지않는 곳으로 가자] 이후에도 꾸준히 싱글을 발매해온 뒤, 이번에는 정규 2집 [보호자]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정규 1집에서 시티팝, 모던락 등의 장르를 소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에서도 포크 음악에 부드럽고 서정적인 팝 음악의 요소가 가미된 몇몇 트랙이 눈에 띈다. 특히 더블 타이틀곡이자 첫 번째 트랙인 ‘알아챈 순간’과 세 번째 트랙 ‘잊어’는 가성의 애드립뿐만 아니라 곡의 구성과 편곡도 포크 음악보다는 R&B 음악에 더 가깝게 느껴졌고, 다른 타이틀곡 ‘아카시아’에서는 80·90년대 음악처럼 옛 시절의 향수가 떠오르는 인트로도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8번 트랙 ‘까맣게도’에서 전체적으로 삽입된 어두운 느낌의 노이즈가 다소 이질적이면서도, EP [잡아라!]에서 선보였던 어둡고 독특한 사운드를 상기시켜 주어 마냥 평이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날카로우면서도 무거운 사운드의 곡으로 개인의 분노를 표현했던 데뷔 초반과 달리, 그는 점차 부드럽고 서정적인, 때로는 명랑한 느낌의 밝은 곡들로 앨범을 채우고 있다. 비록 사운드 면에서 EP [조용한 폭력 속에서], [잡아라!]에 수록된 곡들을 더 선호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이유는 불편한 경험에서 오는 감정을 회피하는 대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기를 개의치 않는 아티스트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라는 꿈을 이루고 불현듯 찾아온 공허함과 허탈함(‘알아챈 순간’), 사랑하는 상대보다 자신을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느껴지는 씁쓸함(‘잊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떠날까 봐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내 아픈 타이밍은 모두가 바쁠 때’) 등을 수차례 들여다보고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가사는 청자에게 '나도 그랬었지'라는 공감과 '나는 어땠었지'라는 질문이 생기게 하는 힘이 있다. 음악은 부드러워졌어도 그의 언어에 담긴 힘은 여전히 강하다. 그야말로 외유내강의 표본이 아닐까.





"팝스타에서 브로드웨이로 이직"


4. Ariana Grande – ‘Popular’

키키 : 아리아나 그란데는 올해 정규 앨범 [Eternal Sunshine]을 발매한 이후 뮤지컬 원작 영화 '위키드'에서 글린다 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동안 R&B, 팝, 벨팅 창법을 주로 사용했던 아리아나는 이번 작품에서 주로 높은 음역대에서 빠르고 기교를 보여주는 성악 기술 '콜로라투라' 발성을 연구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미 고음을 잘 내는 가수로 유명했던 아리아나답게, 영화 개봉 전 공개된 메이킹 필름에서도 하이 F를 넘나드는 테크닉을 선보이며 시작부터 관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뮤지컬 계의 불문율이 하나 있으니, 뮤지컬에선 어느 정도의 가수의 개성과 재해석이 용인되지만 제일 유명한 곡, '쇼스토퍼' 라고 불리는 넘버들은 원작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선과 스토리를 헤치지 않게 부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일부 팬들은 아리아나가 위키드의 쇼스토퍼인 ‘Popular’에서 팝에 가까운 노래를 할까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원작이 의도한 음악적 포인트를 잘 살려 그 우려를 종식시킬 수 있었다. 아리아나 입장에서 이번 시도가 좋았던 이유는 올해 발매한 ‘yes, and?’에서는 하우스, 신디사이저가 중심이 되어 가창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일부 아쉬워한 팬들에겐 그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운 음악을 제공했을 것이다. 원작을 최대한 살린 아리아나 버전 ‘Popular’에 만족하는 뮤지컬 원작 팬들의 반응을 보아 아리아나는 아리아나 팬, 원작 팬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것처럼 보인다.





"다 좋은데… 한끝이 아쉽다"


5. brb. - [we've been here before] 

루영 : 국내에서는 ‘whoops’의 한국어 버전으로 R&B 아티스트 Jimmy Brown과 협업한 적이 있는 싱가포르의 R&B 트리오 brb.가 이번에는 한층 더 칠하고 딥해진 감성의 EP를 발표했다. 인기곡 ‘whoops’를 포함해 ‘my type’, ‘do me right’ 등의 싱글곡에서 밝고 캐치한 리듬의 대중친화적 R&B를 선보였다면, 이번 EP는 보다 어둡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신스와 함께, 트렌디한 전자음악 리듬과 사운드를 가미한 곡들로 구성하여 컨셉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점이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뭄바톤, 트랩, UK 개러지, 저지 클럽 등 각 트랙마다 활용된 다양한 전자음악적 요소들이 곡에 익숙하면서도 세련된 리듬감을 더해주며, 특히 6번 트랙 ‘kill 4 u’에서는 다양한 신스 사운드와 베이스가 한데 섞여 나오는 부분이 보컬을 압도하고 그 이상의 역동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게 인상적이었다.


기존의 대중적인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고, 타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컨셉을 선보인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운드 면에서 임팩트가 있는 트랙이 많지 않은 탓인지, 앨범을 몇 번씩 들어도 'kill 4 u' 외에 기억에 남는 음악이 없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았어야 할 타이틀곡 ‘midnight train’의 경우, 후렴구의 UK 개러지 리듬과 후반부의 저지 클럽 리듬이 곡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긴 하지만, 그 박진감조차도 차분한 분위기에 묻혀 그대로 흘러가버린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을 만한 훅도 부재하다. 새로운 도전과 음악적 실험에 초점을 뒀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타이틀곡만큼은 머리에 각인될 만한 구성과 흐름을 더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진정한 덜어냄의 미학"


6. Djrum - [Meaning’s Edge]

 : 전체적으로 유려한 흐름에 초점을 맞춘 듯한 앨범이다. 광활한 앰비언스 위로 정글 비트, 글리치 사운드 등이 운용되는데, 전작에 비해 미니멀해진 구성이 돋보인다. 유려하게 흘러가는 앰비언스와 특정 패턴 없이 템포와 강도의 변주를 거듭하며 잘게 쪼개지는 리듬의 조합은 그의 특징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다. 여전히 그러한 특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사운드의 밀도가 매우 느슨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치밀하게 짜여 있어 지루하다거나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예시로 ‘Frekm, Pt. 1’의 플룻 사운드 활용 방식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플룻 사운드와 캐치한 멜로디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EP에선 가장 결이 다른 트랙이다. 해당 멜로디는 곡 전체에 걸쳐 반복되며, 플룻 사운드가 자취를 감추자 신스가 이를 이어받아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후 신스의 질감과 볼륨을 이리저리 바꿔 보이며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다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플룻 사운드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전개는 그의 음악이 철저한 계산하에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와 같은 Djrum 특유의 정교한 디테일은 사운드 디자인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공격적인 정글 비트와 금속성 사운드가 귀에 자극을 주는데, 과하다는 느낌 없이 기분 좋은 타격감만을 전달하고 이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렇듯 어느 정도의 강약조절은 있으면서도 깔끔한 텍스쳐와 유려한 전개로 듣기 편안한 사운드를 구현해 냈다. 사운드 디자인 능력, 세심한 전개 모두 빛을 발하며 진정한 덜어냄의 미학을 실천한 앨범이다.





※ '둥', '키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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