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CE, 로제, 이승열, LAZER DIM 700 외
도라 : 생각해 보면 트와이스만큼 일관된 에너지를 보여주는 아이돌 그룹이 있을까 싶다. 컨셉이야 바뀌었지만서도, 우리가 '트와이스'라는 그룹을 떠올렸을 때 자연히 따라오는 그 건강하고 활기찬 무드를 벗어난 적은 없으니 말이다. 뻔하다는 평도 있지만 그 뻔한 음악이야말로 트와이스를 지지하는 든든한 기반이 되어 지금은 자타공인 'JYP의 캐시카우'로 활동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근래 발매된 앨범이 "뻔해도 너무 뻔해서" 지루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번 [STRATEGY]는 달랐다. 유치함은 한 스푼 덜어낸 채 앞서 말한 트와이스다운 음악의 스펙트럼을 뻔하지 않게 넓혀냈다.
이번 음반의 킥이라고 하면 Megan Thee Stallion의 피쳐링이라 할 수 있다. 보통 해외 아티스트와의 협업할 경우 해당 아티스트에게 국내 아티스트가 트랙 전체를 '잡아먹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력은 물론 서로 다른 보컬 톤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는 차이를 보여주곤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 타이틀 곡 ‘Strategy (feat. Megan Thee Stallion)’는 짧지 않은 피쳐링 구간임에도 두 아티스트 사이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 촘촘하게 쌓인 보컬 화음과 챈팅이 단단한 기반을 마련해 준 덕분에 약 40초간의 랩 파트가 들어가도 트와이스의 목소리가 둥둥 떠다닌다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럴 거면 피쳐링 아티스트한테 곡 주지'라는 아쉬움을 벗어난 것이다. 이번 타이틀 곡은 신디사이저가 만들어내는 그루브 위에 808 카우벨, 그리고 라이트한 퍼커션 사운드가 리듬을 이끌어가는 작법이 The Neptunes의 곡을 떠올리게 한다. 한술 더 떠서 알음알음 유행하고 있는 G-Funk 느낌의 리드 사운드를 쓰지 않아, 도리어 과하지 않고 절제된 트랙으로 완성되었다. Too much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내고 그 위에 트와이스의 챈팅과 보컬이 올라가니 고유의 에너지는 살리되, 장르적으로 새로움은 매끄럽게 선사하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글 가사의 부재이다. 물론, 최근 선보인 타이틀 곡이 대부분 영문으로 이루어진 것은 알고 있으나 Chorus를 잇는 캐치한 한글 가사 또한 트와이스의 큰 장점임은 분명하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밸런스가 상당히 좋은 음반이었기에, 한글 가사가 함께 했다면 그 색깔이 더욱 돋보이지 않았을까.
연차가 쌓일수록 아티스트의 기존 매력과 새로운 매력 사이를 다루기 까다로운 건 누구나 알 터이다. 트와이스는 대부분 '기존의 매력'에 집중한 활동을 보여주었고 그 모습이 살짝 지루해질 찰나 이번 음반을 통해 제대로 환기를 시켰다! 타이틀뿐만 아니라 대체로 달콤한 무드가 묻어있는 수록곡을 통해 트와이스의 러블리함을 최대한 신선하게 표현한 음반이었다.
리유 : ‘APT.’의 성행으로 블랙핑크가 아닌 솔로 아티스트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진 로제의 첫 정규 앨범이 발매됐다. 앨범은 총 12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공개 곡 ‘APT.’와 발라드 ‘number one girl’에 참여한 브루노 마스뿐만이 아닌 미국 음반 시장의 정점에 있는 여러 프로듀서가 참여한 것은 로제가 아티스트로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2017, 2018년에 총 9개의 그래미상을 받은 Greg Kurstin, 그리고 수많은 톱 아티스트의 노래를 작곡한 Michael Pollack 등 [rosie]의 중심에는 여러 작가가 있지만, 로제는 작업을 받는 것만이 아닌, 전 곡의 작사, 작곡에 직접 참여하면서 의도한 감정을 잘 전한 것이 특징이다. 타이틀 ‘toxic till the end’의 경우, 몽환적인 신스의 도입부의 고조로 '팡'하고 터뜨린 코러스의 구성을 만들어낸 점이 돋보이는데, 실제 '전남친'이 등장하는 부분은 여러 해외 팝 가수와 유사하다. 하지만 소재의 특징은 강하지 않더라도, 특히 앨범의 마지막 여운을 남긴 어쿠스틱 감성의 팝 ‘dance all night’는 물론, ‘APT.’에 이어 다른 모든 트랙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게 만드는 탑라인은 로제 앨범만의 강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노래에서 느껴지는 핵심 요소 중, 가장 돋보인 것은 로제의 목소리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멜로디는 보컬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로제의 개성 있는 목소리에 어느새 매료되어 있었다. 사실 앨범에 전체적으로 묻어난 팝 스타일이, 같은 팝 장르의 곡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 아티스트로서 해외, 국내 모두의 이목 집중을 해낸 것은 분명하다. [rosie]는 실제 애칭인 '로지'를 사용한 앨범명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한 의도가 잘 느껴지는데, ‘two years’, ‘drinks or coffee’ 등 모든 곡 제목을 소문자로만 표현한 이유는 친구로서 가볍게 이야기하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맞다면, 성공이다.
윈스턴 : 누구나 들으면 잊지 못할 목소리가 있다. OST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던 한국 모던록의 거장 이승열의 보이스가 그러하다. 국내 모던록은 U2나 오아시스 같은 밴드의 영향을 받은 쟁글팝 기타 사운드와 브릿팝의 감성적인 멜로디가 고루 섞인 사운드로 통용됐고, 그가 속해있었던 밴드 유앤미블루도 이러한 사운드를 펼쳐왔다. 허나 맞지 않는 국내 정서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밴드 활동이 마무리되면서 홀로서기를 이어왔는데, 이때부터 그만의 모던록 작법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첫 솔로 1집에서는 블루스의 질감을, 2집에서는 밝은 색채로 엮어낸 소프트 록을, 3집에서는 음울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4집에 이르러서는 실험적인 곡들을 펼쳐내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아트록에 가까운 형태로 이 모든 것들을 엮어내고 절충해 가며 음악 안에 공간을 부여해 갔다. 하지만 23년에 발매한 싱글 ‘아직은 여기 있다’는 6년 만에 돌아온 만큼 다시금 얼터너티브 록의 향기를 전달해 내며 또 다른 변화를 이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전 발매한 새로운 싱글 ‘넌 (you are)’은 그의 또 다른 변화처럼 보인다.
전작의 사운드에 비하면 손을 덜 탄 데모곡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아날로그 피아노와 스트링 사운드만으로도 뚝뚝 묻어나는 그의 마음이 전달된다. 진심을 전하는 단순한 가사와 트레이드 마크인 거칠고 울림 있는 보이스를 더욱 깊게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가 왜 이러한 형태로 곡을 내놨는지 선택의 당위성이 느껴진다. 특히나 바람 소리처럼 음산하게 맴도는 FX 사운드, 그리고 몽환적인 EP, 브릿지에 이르러 작동하는 리버브는 이 곡의 분위기를 매우 색다르게 조성해 놓는다. 보통의 아티스트라면 진심을 전달하는 가사에 맞도록 따뜻한 색채로 곡을 구성하겠지만, 그는 시시각각 곡의 색채를 변화시켜 나가며 어딘가 불안감이 느껴지도록 한다. 아마도 자신에게 기쁨과 동시에 슬픔을 주는 상대에 대한 그만의 표현법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꽉 찬 사운드 안에서 그의 유니크한 보이스를 펼쳐나가는 OST의 매력도 멋있지만, 이렇게 음악적 표현과 메시지만으로 채워나가는 그의 음악은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진다. U2의 보노를 연상케 하는 보이스 컬러임에도, 여전히 그만이 할 수 있는 음악 세계를 30년 동안 펼쳐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을 알길 바란다.
윈스턴 : 장르 간의 분별이 없어지면서 힙합은 굉장히 다양한 변화를 겪어 왔다. 특히 최근 힙합 트렌드의 경향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건 플레이보이 카티의 등장이 아닐까. 그가 등장함으로써 힙합의 방향은 자유 혹은 스웩을 강조하는 메시지보다 듣기 좋은 사운드와 스타일의 추구로서 나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전자를 중요시하는 래퍼들이 대다수겠지만, 리스너들의 태도가 메시지를 1순위로 여기는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메시지가 탁월하더라도, 다른 래퍼들과 비슷하게 들린다면 찾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음악 안에서의 승부처는 플로우 또는 비트의 작법이다(물론 후자의 경우 프로듀서의 역량에 더 가깝지만). 2020년대에 이르러 다양한 래퍼들이 등장했지만, LAZER DIM 700은 이 중에서도 가장 정형화되지 않은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를 접하지 않은 국내 리스너라면 다소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억하자. 이 젊은 래퍼는 애틀랜타에서 제일 하입되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래퍼이다.
최근 발매한 싱글 ‘CALYPSO’는 이번 달 18일에 발매할 앨범의 선공개 트랙으로, 튀는 신스와 함께 컴팩트한 드럼과 음산한 808 베이스 사운드로 구성해 낸 다크 플러그 스타일의 비트 위 쏟아내는 플로우를 확인할 수 있다. 메시지는 별다른 스토리를 전달하지 않고, 단순히 생각나는 대로 내뱉을 뿐이다. 리듬을 구성하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그의 플로우는 그야말로 야마로 가득하다. 가사를 계획하지 않고 내뱉는 래퍼들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어긋나듯 내뱉는 플로우 덕분에 그가 더욱 독특하고 에너지 있고 진짜처럼 느껴진다. 다만 모든 곡이 쏟아내는 플로우기에 비슷하게 느껴지고, 이 때문에 메인 스트림까지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견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된다. 최근 덴젤 커리의 싱글 ‘STILL IN THE PAINT’에서는 기존까지 쏟아내는 플로우와 달리 정제된 스타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토록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는 그를 통해 느낀 점은 여전히 힙합은 자신의 삶을 전달하는 수단이자 문화라는 점이다. 어딘가 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계속 듣기 버거운 사운드일지는 몰라도,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과 자신임을 드러낼 수 있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면 환영받을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아직도 의심된다면 그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자. 그루브를 타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운 140대를 겉도는 BPM의 비트임에도 수많은 이들이 공연장을 꽉 채운 채 그에게 소리 지르고 있다.
리유 : 2024년 2월 데뷔로 1년도 되지 않은 활동 기간, ‘偽愛とハイボール’(가짜 사랑과 하이볼)의 유행으로 내한 공연까지 이룬 3인조 일본 밴드, LET ME KNOW의 ‘真夜中のタクシー’(한밤중의 택시) 신보가 발매되었다. 지금까지 LET ME KNOW의 노래에서 공통으로 보인 점은 바로 과한 변주 없이 깔끔한 구성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지루함이라는 점에서, 이번 싱글에서 역시 집중되었던 것은 바로 음악적 구성이다.
‘真夜中のタクシー’는 도입부에 등장하는 미니멀한 구성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의도한 분위기를 정확히 전달하고 있는데, 일본 특유의 문화가 담긴 시티팝과 신스웨이브에 쓰이는 신스를 결합하여 80년대 도쿄 감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뮤직비디오 역시, 당시 시티팝 가사와 뮤직비디오에서 자주 보이던 클리셰 중 하나인 '도쿄의 밤거리'를 활용하거나, 실제 80년대 택시와 색감을 사용하여 단순한 노래 이상의 분위기를 경험하게 만든다. 특히 Anri의 ‘Last Summer Whisper’와 같은 느린 템포의 시티팝, 竹内まりや의 ‘Plastic Love’와 같은 브라스, 퍼커션, 스트링 등 훵크의 요소가 돋보이는 전통적인 시티팝과 달리, 박자감이 넘치는 비트와 다소 거친 보컬로 LET ME KNOW만의 개성 있는 록 또한 느껴진다. 물론 시티팝은 80년대 전후의 일본에서 유행한 '도시 음악'으로 넓은 범주의 의미를 지닌 만큼, 하나의 문화적인 단어로 본다면 장르적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LET ME KNOW는 ‘真夜中のタクシー’를 통해 도쿄의 도시에 대한 추억을 전하는 것에 성공했다.
LET ME KNOW는 2024년 첫 데뷔 음반인 ‘LAD浪漫's’ (LAD낭만's)부터 이번 음반까지 1년 동안 무려 7개의 곡을 발매했지만, 모두 디지털 싱글 발매로 항상 '더 듣고 싶다'는 마음을 남겨왔다. 그런 의미에서 ‘真夜中のタクシー’ 역시 싱글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한 달에서 두 달의 컴백 텀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LET ME KNOW이기에 다음 음반은 또 언제, 어떤 음악을 들고 올 지 궁금증이 생기며, 이번 싱글에서 남긴 여운이 다음 긴 러닝 타임의 앨범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도라 : 영국의 DJ Shygirl은 일렉트로니카를 베이스로 실험적인 사운드를 접목해 왔다. 일렉트로니카와 실험. 이 두 가지에서 알 수 있듯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은 패션과 광고계인데, 현재 속해있는 레이블 NUEXXE의 공동 설립자 COUCOU CHLOE의 ‘Doom’이 가수 Rihanna의 브랜드 Fenty가 PUMA와 함께 주최한 패션쇼를 통해 소개된 걸 시작으로 서서히 그 이름을 알려왔다. 주로 하우스를 베이스로 한 테크노, 힙합, 얼터너티브 R&B를 섞는 시도를 보여주는데, 메이저한 탑라인을 사용해도 그 아래 깔린 트랙은 어두컴컴한 지하를 연상시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밝은 듯, 어두운 듯 묘한 경계가 누가 들어도 '패션쇼' 혹은 '광고 음악'에서 안 쓰고 못 배기겠구나, 싶은 느낌을 준다. 그런 세련된 쇠 맛 나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Charli XCX가 놓칠 리가 있나. 2024년 치러진 Charli XCX와 Troye Sivan의 투어 "Sweat"에서 오프닝 무대로 ‘365’의 remix 버전을 선보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시겠다.
이번 싱글 ‘F*Me ft. Yseult’는 테크 하우스 장르 곡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노골적인 가사가 중독적인 신스 사운드에 맞춰 반복된다. 딱 두 번 움직이는 제한된 코드 진행 위로 리듬을 채워주는 건 세세하게 쪼개진 보컬 소스들이다.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구조이지만 그럼에도 아무 생각 없이 흔들고 싶을 때 듣는다는 목적에는 아주 충실하다. 그뿐일까, Shygirl이라는 아티스트 명과 상반되는 가사에서 오는 원초적인 재미까지. 장르 음악, 그중에서도 일렉트로니카 음악은 반복되고 낯선 사운드 소스들 때문에 '어렵다'고들 여겨지곤 하는 데 그 목적이 단순하고 명확할수록 매력적인 결과물로 연결되는 점에서 대중음악과 일맥상통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Shygirl의 이번 싱글은 1. 말하는 바가 명확한 가사와 2. 정신없이 춤추는 데 딱 좋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모든 걸 깔끔하게 보여주는 음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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