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힙합에 도전한 Doechii만의 특별한 레시피
올해 초 Future와 Metro Boomin의 콜라보레이션 앨범은 Kendrick Larmar와 Drake 간의 디스전을 촉발시키며 힙합 문화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이어서 Kanye West, Denzel Curry, Lil Uzi Vert 등 주요 힙합 아티스트들이 잇달아 앨범을 발매하며 힙합 씬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힙합 씬 전반의 호황이 과연 여성 힙합 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Megan Thee Stallion의 ‘Mamushi’, Glorilla와 Sexyy Red의 ‘WHATCHU KNO ABOUT ME’가 틱톡을 통해 유행하며 주목받은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 음악은 새로운 시도라기보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안전한 스타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곡들이 힙합 씬 전체를 뒤흔들 만큼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여성 힙합의 성장은 더딘 상태이며, 대중적인 성공 역시 일부 소수의 여성 힙합 아티스트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친 여성 힙합 아티스트로 Doechii를 꼽고 싶다. 그녀는 최근 Tyler, The Creator와 협업한 곡 ‘Ballon’으로 자신의 역량과 재능을 다시 한번 입증했고, 지난 8월 발매한 믹스테이프 [Alligator Bites Never Heal]로 그래미 어워즈 ‘Best Rap Album’ 후보에 오르며 커리어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Doechii의 음악적 방향성은 다른 대표적인 여성 랩퍼들과 어떻게 다르며, 그녀만의 독특한 음악적 궤적은 무엇일까.
Doechii의 음악 스타일은 R&B와 힙합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점이 특징이다. ‘Pencil Pouch’에서 SZA 특유의 네오 소울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부드럽고 감성적인 매력을 보여주지만, ‘Spookie Coochie’와 ’Crazy’에서는 유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하드코어 힙합의 강렬한 면모를 완벽히 소화해 낸다. 특히 ‘Persuasive’는 컨템포러리 R&B를 기반으로 멜로딕한 면을 강조하면서도 쨍한 보컬과 활기찬 래핑을 조화시켜, 이른바 “마라 맛 R&B”라는 신선함을 더할 수 있었다. 이처럼 Doechii는 곡마다 R&B와 힙합의 비중을 조율하며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능력을 잘 보여준다.
최근 발매된 믹스테이프 [Alligator Bites Never Heal]에서는 이전의 엉뚱하고 장난스러운 이미지를 벗어나 힙합 본연에 집중하며 정교함과 깊이감을 더한 그녀의 음악적 성장이 돋보인다. 앨범은 미니멀한 비트를 활용해 90년대 전통적인 힙합 요소를 살리는 동시에 얼터너티브 R&B와 재즈적 요소를 결합해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독창적인 방향성을 확립했다. 무엇보다도 Doechii는 뛰어난 랩 실력을 바탕으로 멜로디한 영역까지 뛰어들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 ‘Beverly Hills’ 같은 R&B 중심의 트랙도 있는가 하면, ‘Boombap’에서는 드럼 리스를 활용해 복고풍 힙합의 감성을 재현하며, 그 위에 유려한 랩 스킬을 더해 힙합 본연의 정체성을 더욱 강조한다.
즉 Doechii는 힙합에만 머물지 않고 컨템포러리 R&B, 네오 소울, 재즈 등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자유롭게 아우르며 음악적 예술성과 확장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그녀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궤적을 만들어 나가며 독보적인 포지셔닝을 구축하는 중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Megan Thee Stallion, Glorilla, Sexyy Red와 같은 여성 랩퍼들은 곡의 퀄리티나 완성도와 관계없이 비교적 수월하게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며 대중적인 힙합 씬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Doechii는 작년에 발매한 ‘What It Is?’로 처음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후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는 그녀가 아직 대중적인 힙합 씬으로 충분히 확장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상업적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다.
Megan Thee Stallion, Glorilla, Sexyy Red 등 최근 주목받는 여성 랩퍼들의 공통점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 강렬한 에너지, 직관적인 비트와 직설적인 가사이다. 이들은 주로 파티튠과 퍼포먼스 중심의 음악 스타일로 청중을 사로잡으며 트랩 기반의 곡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 스타일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반복되는 트랩 비트와 섹슈얼한 가사는 초기에는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사한 흐름과 정형화된 패턴으로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파티 문화를 중심으로 한 서던 힙합과 멤피스 랩 특유의 호러스러운 신스 사운드는 쾌락적이고 즉각적인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는 데 그쳐, 심도 있는 주제나 감정적 서사를 담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결과적으로 음악적 성장과 새로운 리스너층 확보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예술적 깊이와 장르적 다양성, 실험성의 부족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폭넓은 장르적 스펙트럼과 음악적 서사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 Doechii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적 방향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Doechii의 래핑 스타일은 공격적이고 직설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랩퍼들과 비슷하지만, 흑인 여성으로서 겪은 일들과 그로부터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자전적인 스토리텔링을 중심에 둔다. 또한 다른 여성 랩퍼들이 특정 스타일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Doechii는 힙합과 R&B를 자유롭게 오가며 R&B 멜로디와 랩 실력을 조화롭게 결합해 다양한 청중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균형 잡힌 접근을 시도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그녀의 음악이 지닌 확장성과 잠재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Doechii가 처음 선보였던 컴필레이션 [Coven Music Session, Vol. 1]과 비교해 보면, 이번 믹스테이프는 그녀의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중히 선별된 고품질의 비트를 활용하며, 음악적 확장과 진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믹스테이프 특유의 느슨한 구조는 그녀가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의 질감을 능숙하게 다루며 유연한 스타일을 펼칠 수 있는 훌륭한 발판이 되어 준 것이다.
다만, 이제는 믹스테이프라는 형식의 보호막 뒤에서 벗어나 곡 간의 서사적 연결성과 유기성을 갖춘 앨범 제작이 필요하다는 점도 느껴진다. 현재 믹스테이프에서 나타나는 호흡이 짧은 곡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프로덕션의 완성도를 견고히 다듬는다면, Doechii의 첫 정규 앨범에서는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음악 세계를 들려줄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Doechii가 컨템포러리 R&B와 네오 소울 앨범 제작에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것도 흥미로운 방향이 될 것이다. 트랩 음악이 주를 이루는 여성 힙합 씬에서 포화 상태에 이른 트랩에 의존하기보다는 R&B 씬에도 신선한 자극을 더할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Doechii의 독특한 보컬 톤과 감성적인 표현력은 부드럽지만 과감한 매력을 지닌 “마라 맛 R&B” 스타일에서 이미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스타일은 단순히 힙합 씬에서의 영역 확장을 넘어, 대중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제시한다.
Doechii는 독창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힙합과 R&B 씬 모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준비를 마쳤다. 대중적 성공을 넘어, 음악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선두 주자가 되기를 바라며.
by. 율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