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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May 14. 2023

밀려오는 새 파도 앞에서

<400번의 구타> (The 400 Blows, 1959)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말에는 무척이나 무게가 있어서, 나의 취미나 관심사를 공유해야만 할 때 “전 영화 좋아해요”하고 당당하게 선언하기보다는 “뭐… 영화를 좀 보는 편이에요”하고 에둘러 말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꽤 있으리라 믿는다. 영화를 한동안 안 봤다 싶으면 마음의 가책과 조급을 느끼지만, 또 보진 않고 듣기만 해 본 영화를 산더미처럼 쌓아 가는. 매번 영화를 사랑하냐는 회오리 같은 물음을 제 마음에 던지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400번의 구타>는 영화에 눈길을 좀 줬다 싶은 사람 귀에 한 번은 꼭 흘러 들어갔을 영화다. 감독 프랑수와 트뤼포의 이름도 그렇다. 오류였던 것으로 정정되긴 했으나 그의 말이라 전해진 ‘영화를 사랑하는 세 단계’는 몇 백 번이고 인용됐다. 누벨바그의 주역이나 프랑스 영화계의 대표자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달라붙어 있어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영화의 중심에 가 닿은 인물이란 뜻이기도 하다. 마음을 가벼이 하며 트뤼포를 편하게 불러 보자면 영화를 가장 사랑한 영화광, 혹은 영화 중독자라 할 수 있겠다.


--“인생, 그것은 스크린이었다”라는 트뤼포의 문구처럼 그의 첫 장편영화인 <400번의 구타>에는 감독 자신의 인생이 담겨 있다. 스스로는 영화의 자전성을 부인하기도 했지만, 작품 속 열두 살배기 앙투안의 모습은 트뤼포의 유년기와 밀착해 있다. 부모-특히 어머니-와의 불화, 한 친구의 구원, 소년보호소로의 이송 등 모난 돌 취급을 받으며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영화 제목은 ‘소년이 자라면서 400번 정도 매를 맞아야 어른이 된다'는 프랑스 속담을 함의한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에 더해, 프랑스문화예술학회에 따르면 ‘400가지의 바보짓’ 내지는 ‘무수한 말썽’ 정도의 의미로 보는 게 적합할 듯하다. 이리저리 반항하고 쏘다녔던 트뤼포와 비슷하게 구는 앙투안, 두 인물을 봤을 때 더더욱이 어울리는 제목이다.


--어머니는 외도를 하고, 외도 사실을 아는 듯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 않고, 선생은 야박하다. 사회는 앙투안을 보호원에 보내지만 감싸주지는 않는다. 그런 앙투안이 위로를 얻는 곳은 다름 아닌 문학과 영화다. 점점 방황하던 그는 부모와 유리되어 자랐지만 나름의 세계를 펼친 작가 발자크를 탐독하며 위안을 얻는다. 안 맞는 퍼즐 조각처럼 한참 어긋난 앙투안의 가족이 작중 유일하게 화목하게 지냈던 공간은 집이 아니라 영화관이었다.


--앙투안은 학교-집-구치소 등 물리적으로는 계속 가두어지면서 동시에 심리적으로는 점차 추방되어 간다. 그만이 아니라 등장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다. 길거리, 또래뿐인 인형극장처럼 어른과 멀리 있을 때에야 아이들은 자유롭고 웃고 어리게 군다. 앙투안은 아이가 되기 위해 학교에 무단결석을 하고 집에서 가출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으로부터 영영 추방되어 소년보호원으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앙투안은 눈물을 흘린다. 내내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을 짓다가 거의 처음으로 슬픔의 감정을 내비친 장면이다. 촬영 현장에서 인공조명은 자제했다고 전해지는데, 고립이자 방임의 공간이었던 파리의 불빛이 눈물에 맺혀 반짝이는 장면에 우리는 모난 돌을 마음으로 품을 수밖에 없다.


--바다 앞에서 표류한 듯 서 있는 앙투안의 모습은 가장 많이 알려진, 또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엔딩 중 하나로 꼽힌다. 애당초 바다는 순환-생명-죽음 등 모든 원천을 상징함과 동시에, 이미 많이 언급되었다시피 불어에서 어머니(la mère)와 바다(la mer)는 유사하게 발음된다. 어머니, 그러니까 태초에서부터 끝없이 밀려난 앙투안은 마지막에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의 공간으로 향하고 만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배회하는 시선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그가 삶의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New Wave’라는 누벨바그의 뜻처럼 영화에 어떤 파도가 들이닥칠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이 앙투안 드와넬 역을 장 피에르 레오는 이후에도 트뤼포와 작업을 함께했다. 아역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마치 <보이 후드>처럼 한 인간의 성장을 담듯 ‘앙투안 드와넬 5부작’이 오랜 세월에 걸쳐 제작됐다. 한편, <400번의 구타> 촬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에 트뤼포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화계의 중추였던 앙드레 바쟁이 별세했다. 장례 기간에 검은 옷을 입고 촬영을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감독 개인만이 아니라 영화계 전반에 걸쳐 유의미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우연히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갖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트뤼포는 당당하게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고 선언하고 말 테다. 그런 사랑이 스크린에 영사되고, 또 그것을 직접 본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영화는 온전히 시네마로서 필름과 극장의 것이었던 시절로 잠시 돌아가보자. <400번의 구타>를 보자. 트뤼포를 만나자.


엣나인이 배급해 1월 25일 부로 재상영을 시작한 프랑수와 트뤼포의 작품 2편(<400번의 구타>, <쥴 앤 짐>)은 아트나인을 비롯한 여러 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I IMDb

원글 주소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9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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