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의미의 발견]
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메세지는 의미의 획일화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의미의 획일화는 반드시 누군가를 소외시킨다.
저자이자, 컨설팅 에이전시 LMNT의 최장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책을 통해 ‘의미의 획일화’을 경계하라고 이야기한다. 의미의 획일화는 반드시 누군가를 소외시킨다고 하면서 말이다. 즉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가져야 하고, 정답은 하나라는 사고방식은 피해야 한다는 메세지로 이해가 된다.
저자는 의미의 획일화를 비롯한 의미에 관한 다양한 메세지를 ‘브랜드’라는 매개체로 소개한다.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디자이너이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책을 읽고 느꼈던 점을 저만의 생각과 경험에 빗대어 공유해 보려고한다. (이 글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 위주로 서술하였다. 자세한 책의 내용은 꼭 구매해서 읽어보시기를)
“눈에 보이는 의미만 고집할 때, 현상의 주름 사이에 숨겨진 수많은 의미를 놓치게 된다. 세계는 기본적으로 다의어이어야 한다. 의미의 다양성은 세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란 무엇일까?
나의 경험을 예로 말해보면, 작년 스튜디오에서 비영리 사단법인기업의 C.I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이 기업은 래퍼, 댄서분들을 섭외하여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보컬, 댄스, 랩 등을 교육하고 공연을 개최하는 등, 음악을 매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기업이었다.
나에게는 이 프로젝트가 특별했다. 우리 스튜디오의 일반적인 견적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진행을 했고, 나머지 비용의 절반 역시 후원금으로 기부를 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프로젝트 킥오프 후, 스튜디오 대표님께서 인볼브 된 디자이너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로 받게 되는 비용의 절반을 후원금으로 기부할 예정입니다. 회사의 이름을 빌려 여러분들이 직접 기부를 하는 것이니, 모두 뜻깊은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가진 의미란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하자면 ”기업 아이덴티티 리뉴얼 프로젝트“이다. 또는 “매일 출근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끔씩 힘든 날에는 “먹고살기 위한 일”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수익의 일부를 기부함으로써 프로젝트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한 기업 아이덴티티 리뉴얼 프로젝트에서, 꿈 많은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에 동참하는 ”사회복지활동“이 된 것. 나아가 조금 더 의미를 생각해 보면, 나는 선한 영향력을 공유하는 주체가 되기도 했고, 보컬, 댄스를 통해 청소년들의 꿈을 키워주는 것을 도와주는 어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꼭 이 프로젝트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 모든 프로젝트에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 뿐. 저자가 말하듯, 모든 일에는 다양한 의미의 층위가 존재하고, 그런 의미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훨씬 건강한 생각으로 일을 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의 다양성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면서,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진 일을 하는 사람인가?
디자이너인 나는 디자인이라는 일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해보고 있다. 아직 뾰족한 대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나만의 의미 있는 대답을 하고 싶다. 케네디 대통령이 미항공우주국 NASA에 방문하여 한 청소부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자, “저는 달에 사람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청소부처럼.(책의 내용 중)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직장인들도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숨겨진,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발견해 보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소비자는 단지 제품의 기능이나 유용성만으로 구매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 해석되지 않으면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다. 브랜드의 효용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얼마 전 성수의 아이아이리서치(ii Research)이라는 카페에 방문했다. 아이아이리서치는 컨설팅 에이전시 orkr에서 전개하는 브랜드인데, 식물의 암술과 수술을 의미하는 'ii'와 ‘Research’가 합쳐져, 자연의 사용이 침략이 아닌 인간과의 동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며, 인공과 자연 속에서 새로운 친환경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한다.
독특한 브랜드 컨셉과 재미있게 전개하는 비주얼 아이덴티티로 늘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었다. 이 카페는 특이하게 지하에서 치약을 팔고 있었다. 이 치약은 프랑스 게랑드 토판 천일염, 폴뢰르 드 셀이라는 소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초여름의 태양을 맞아 바닷물이 건조되며 표면에 소금이 꽃처럼 피어난다고 해서 폴뢰르 드 셀(Fleur de sel), 프랑스어로 ‘소금의 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폴뢰르 드 셀은 표면에 떠오른 첫 수확물만 수작업으로 걷어내어 사용하는 프리미엄 소금이라고 이야기한다.
집에 치약은 많지만 하나 구매했다. 브랜드와 제품이 가진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 자연에서 온 소금으로 만든 치약에 아이아이리서치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친환경’의 의미가 담겨있는 듯했다. 나는 치약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의미를 구매한 것이었다.
책에서는 볼보, 티파니앤코, 레고를 예시로 들었다. 자동차회사인 볼보는 ‘안전’에 진심인 회사이다. 3 점식 안전벨트를 최초로 개발하고 특허로 등록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모든 자동차회사가 2 점식 안전벨트보다 더욱 안전한 3 점식 안전벨트를 사용하게 하여 운전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모든 면에서 안전을 신경 쓰는 볼보의 자동차는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을 넘어 ‘안전’을 구매하는 것과 같다.
티파니앤코는 반지를 넘어 ’청혼‘이라는 의미가 더해졌고 아이들에게 레고는 단순한 장남감이 아닌, 조립하고 다시 쉽게 부수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텔링 교보재이다. 레고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이야기’에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적극적으로 의미를 소비하는 소비자였다. 생각해 보면 치약을 구매한 행위 말고도 제품의 기능보다 의미를 고려한 소비가 많았다. 튼튼하고 디자인도 예뻤지만 업사이클링의 브랜드 의미가 더욱 좋아 구매한 프라이탁의 가방, 종류도 많고 맛도 더 좋은 베이커리가 많지만 굳이 구매해 먹어봤던 Make new fantasy를 이야기하는 누데이크의 케이크가 생각난다.
나는 아이아이리서치의 ‘새로운 친환경’을 구매하고, 프라이탁의 ‘업사이클링’에 함께했으며, 누데이크의 ’New fantasy‘를 경험한 것이었다.
브랜드는 결국 의미이고, 브랜딩은 의미를 전달하는 행위이며, 디자이너인 나는 의미를 시각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브랜드와 제품이 가진 의미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디자이너다운 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브랜드는 단지 상표가 아니다. 브랜딩은 네임, 디자인, 패키지 등으로 멋지게 꾸미는 성형활동이 아니다. 브랜딩은 조직 제품 상징 개성 등의 차원에서 의미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행위다. 브랜드는 공동체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기업이나 브랜드가 가진 역할이란 무엇일까?
기업이나 브랜드는 우리(소비자)에게 제품 또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이윤을 얻는다. 우리는 보통 브랜드나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한, 즉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기업과 브랜드의 역할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은 기업의 존재이유는 영리 추구라는 것이다. 기업의 성공은 원래부터 고객의 행복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저자는 브랜드와 기업의 성공은 고객의 ‘행복’에 직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브랜드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신들의 본질에 입각한 공동체 기여활동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맥도날드의 예시를 들었다. 1992년 LA흑인폭동 당시에 수많은 가게들이 파괴되었지만 5개의 맥도날드 가게만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맥도날드 가게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맥도날드는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에 무료로 농구장을 설치해주고, 흑인 노숙자에게 수백 잔의 커피를 나눠줬다.. 당시에 ‘family’라는 본질을 추구했던 맥도날드는 흑인들에게 가족이자 친구들이라고 느껴졌던 것.
나는 브랜드 에어비앤비가 떠올랐다. 에어비앤비는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슬로건으로, 여행지의 호스트와 연계하여 호스트의 집을 호텔과 같은 숙소로 제공하는 공유경제를 이끄는 브랜드이다.
여행지에서 숙소를 제공하는 DNA를 가진 에어비앤비는 비단 여행객들을 위해서만 숙소를 제공하지 않았다. 에어비앤비는 세계 난민들을 위해 무료로 임시숙소를 제공했는데, 지난 2021년에는 아프간 난민들을 위해서,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생긴 수많은 난민을 위해 다시 한번 임시숙소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영국의 샌드위치 브랜드 프레타망제는 회사의 사명이 ”올바른 일을 하자“라고 한다. 그리고 샌드위치는 당일제조, 당일판매의 원칙을 내세우는 브랜드이다. 프레타망제는 하루에 팔고남은 음식을 가게 인근 노숙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규모는, 2020년 기준으로 무려 730만 개의 재고를 기부했다고 한다. 약 24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한다.
에어비앤비와 프레타망제는 각 브랜드의 사명이자 본질에 입각한, 숙소와 샌드위치라는 방법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공동체에 기여하는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반드시 기부를 하거나 선행을 해야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금 더 편리한 우리의 삶을 고민하고, IT제품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실천하는 애플과 같은 브랜드들도 공동체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겠다.
브랜드의 역할은 개인의 행복감의 증대라는 저자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펄스널브랜딩시대에서 ‘나’라는 브랜드 역시 무엇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지 조금 도움이 되었달까. 돈을 벌고, 디자이너로 인정을 받고를 넘어서 나 역시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저자 최장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브랜드‘라는 매개체로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많은 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지고, 존경스러운 분이다. 언젠가 꼭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