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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재 Apr 08. 2024

디자인의 무명성

사토다쿠의 [대량생산품의 디자인론]

나의 브런치의 첫 글로 일본의 그래픽디자이너 사토다쿠의 [삶을 읽는 사고] 읽고 난 후 느낀 생각을 정리한 글을 올렸었다. 이번에는 사토다쿠의 [대량생산품 디자인론]에 대한 소개이다. 이번 역시 사토다쿠가 [삶을 읽는 사고]에서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내용을 토대로 한다.


사토다쿠는 디자이너의 예술가적인 ‘작가성’을 배제하고 대상에 집중한 디자인, 즉 ‘무명성’에 기반한 디자인론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이다. 디자이너의 작가성보다 브랜드, 소비자, 연구, 기획, 제작, 유통 등 다양한 것들을 고려해 만들어지는 대량생산품을 주제로 사토다쿠가 이야기하는 무명성의 디자인에 관해 소개해보려고 한다.






마트와 편의점의 대량생산품디자인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나는 어떤 요인에 의해 제품을 구매했는지 돌아보았다. 세련되고 예쁜 디자인? 독특하고 눈길을 끄는 디자인? 모두 아니었다. 나는 과장되지 않은 정직한 제품의 모양, 즉 제품 사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예를 들어 혼자서 맥주 한잔을 같이 할 수 있는 안주를 고를 때, 구매까지 이어졌던 제품은 식품의 실제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고 맛있어 보이는 사진이 있는 패키지였다.


식품 사진이 부각되는 디자인은 흔히 말하는 세련되고 멋있는, 뭔가 ‘디자인된 듯한 디자인’과는 멀어진다.(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디자인’ 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맥주 한 잔을 함께할 안주의 패키지 디자인이 세련되고 고급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식품의 형태를 보여주는 사진이 없고, 그저 멋지기만 한 패키지 디자인이었다면 나는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 사토다쿠는 식품 패키지디자인이란 디자인의 아름다움과 침샘을 자극하는 시즐감(sizzle)이 얼마나 균형 있게 표현하냐의 싸움으로 이야기한다. 동시에 디자인의 수준자체가 상품판매량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품에는 그 자체로 본연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와 매력을 잘 표현한 디자인이 자연히 잘 판매된다고 말한다.




메이지우유 패키지 개발이야기


나는 늘 디자인이 사라지는 순간을 찾는 기분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양하게 시도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디자인이 사라지고 상품 자체가 부각되는 순간이 있다.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면 잡음이 깨끗한 소리로 튜닝될 때와 같은 순간이다. 패키지 디자인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사토다쿠는 내추럴 테이스트 제조법을 개발한 메이지 유업 주식회사의 ‘메이지 맛있는 우유’ 패키지 디자인에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내추럴 테이스트 제조법은 방금 짠 듯한 우유 그대로의 맛을 전달하기 위해 탄생한 기술이라고 한다. 사토다쿠는 여기서 ‘그대로’라는 핵심 키워드를 도출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그대로’라는 키워드를 부각하기 위해, 디자인도 가급적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메이지 맛있는 우유

 

사토다쿠는 시원함과 청량감이 느껴지는 파란색과 흰색의 대조, 맛있는 우유 글씨 뒤에 흐릿하게 보이며 흰 우유가 담기고 있는 컵의 형태로 메이지 맛있는 우유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컵에 담기고 있는 우유는 신선해 보이고 시즐감(sizzle)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수많은 제품들이 모이는 냉장고에 무리 없이 적응할만한, 우유다운 패키지라는 생각도 든다. 이후, 사토다쿠는 한 이자카야에서 어느 여성과 우연히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여성에게 자신을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고, 본인의 디자인한 것 중 메이지우유가 있다고 여성에게 말했더니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네? 그 우유를요? 그거 어디가 디자인된 거예요?


사토다쿠는 그 말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디자인이 사라지고, 상품자체가 부각되는 디자인. 여성의 반응은 사토다쿠의 디자인의도가 잘 들어맞았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엮은이 마카베 도모하루는 사토다쿠의 사라지는 디자인은 무명성의 디자인의 극치라고 표현한다.




디자인 해부


해부하는 과정은 감동의 연속이다. 음식에 비유하면 그 맛을 어떻게 내는지, 식감은 어떻게 만드는지, 시간에 따른 맛과 식감의 변화는 어떤 구조에서 비롯되는지 등을 중층적으로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의 상품으로 완성된다. ... 일반적으로 연구자, 개발자라 불리는 사람들도 엄연히 ‘디자인’을 한다.


사토다쿠는 2001년부터 디자인 해부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은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쓰임새에 대한 거부감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앞서 메이지우유의 패키지를 보고 어디가 디자인된 것이냐 물어보았던 여성의 반응처럼,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예쁘게 꾸미는 것’ 또는 ‘멋있게 만드는 것’ 정도로 인식이 되고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토다쿠는 디자인 해부를 통해 디자인의 관점으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제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들여다보고,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답을 제시한다. 해부 전시주제로는 자일리톨 껌 패키지, 후지필름 우쓰룬데스 카메라, 인형 리카짱을 소개한다.


디자인 해부


각 제품들을 해부를 해보니 자일리톨 껌에는 단순히 보여지는 포장지(패키지)뿐만 아니라 껌을 씹는 감촉도 디자인이 되어있었고, 인형 리카짱의 머리는 어린이의 두개골을 본떠 만들어진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와 몸체의 비율이 비슷한 리카짱은 아이로 남고 싶은 일본인의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흔히 아는 서양의 바비인형은 8등신의 모델처럼 보이는 인형이다. 외국의 아이들은 반대로 일찍 어른이 되고 싶은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한다.) 또 리카짱의 눈 디자인은 시대마다 조금씩 변해왔는데, 이는 시대마다 변화해 온 화장법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제품들은 완성된 겉모습만 디자인된 것이 아니었다. 제품을 이루는 수많은 사소한 부분들 모두 ‘디자인’되어 있던 것. 그 역할에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연구원, 개발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사토다쿠의 디자인 해부 프로젝트는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진짜 의미를 되뇌어보게 만든다. 디자인이란 그저 꾸미는 것이 아니며, 디자이너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원, 개발자들도 일종의 ‘디자이너’이다.




무명성의 디자인


사토는 자신이 작업한 상품 패키지, CI, VI는 그 기업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질을 중시하고 클라이언트와 함께 창조하면서 서로에게 배우자는 취지가 곧 ‘공동 가치 창조•공유 디자인’이다. 이를 통해 클라이언트 측에 당사자 의식이 싹트고 완성된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 신뢰감이 생긴다. 이때 예전처럼 카리스마 있는 스타 디자이너는 필요 없다. 오히려 무명성, 익명성이 요구된다.


저자는 무명성의 디자인을 말하면서 ‘당사자 의식’을 이야기한다. 당사자 의식이란, 디자이너에게 의뢰를 맡기고, 완성된 디자인에 대해 기업이 가지는 ‘아끼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런 당사자 의식은 디자이너와 함께 만들어나감으로써 생긴다고 말한다. 가능한 클라이언트 측의 많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각 부서 담당자를 이해를 시켜야, 만들어지는 디자인에 대해 아끼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공동 가치 창조•공유 디자인이라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함께 만들어나가는 디자인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에서, 작가성을 가진 스타 디자이너보다는 무명성을 가진 디자이너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가적인 디자이너의 스타일에 따라 디자인이 진행된다면, 기업 관계자들은 디자인을 함께 만들어가기보다 담당 디자이너의 스타일에 의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당사자 의식 또한 저하될 가능성이 커진다.


디자인 자체가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작은 브랜드의 클라이언트라면 당사자 의식, 즉 디자인에 대한 애착이 당연히 크겠지만, 영업, 개발, 연구 등 수많은 직원들이 있는 큰 기업의 경우에는 만들어지는 디자인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최종 상품이 무책임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무명성의 디자인이란 디자인이 모든 이들에게 소중하게 여겨지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의 용어가 디자이너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점과,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는 대량생산품을 주제로 책을 쓴 저자의 의도가 이해가 간다.






사토다쿠는 긴자에 있는 고보라는 작은 갤러리에서 정기적인 개인작업을 전시한다고 한다. 재미있었던 점은, 엮은이 마카베 도모하루는 이 전시를 보고 사토다쿠 내면의 무명성과 작가성이 치르는 인파이트 복싱에 비유했다. 무명성을 추구하는 사토다쿠 내면에서 작가성의 내부 반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디자이너란 무명성의 디자인을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작가성을 가진 훌륭한 디자이너들은 많이 존재한다. 저자 사토다쿠와 동시대 디자이너인 하라켄야는 디자인을 작품으로 바라보는 유포적인 작가성으로 나름의 디자인관을 가진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하라켄야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무인양품의 디렉터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브랜드 디자이너인 나는 현재 작가성보다는 무명성에 더 가까이 있는 듯하다. 브랜드 디자인 실무에서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기란 어렵다. 그래도 다양한 방식의 디자인을 고민하는 것도 늘 재미있다고 느낀다. 가끔 내 취향의 디자인이 들어맞는 브랜드의 경우에는 신나게 작업을 하기도 한다. 무명성과 작가성, 정답이 없는 두 부류에서 나는 어떤 디자인관을 원하게 될까, 미래의 나는 어떤 디자인을 하고 있을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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