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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댁 Apr 03. 2022

10번째 글

딱 10 편만 써보자.

 바야흐로 자기표현의 시대이다. 나 혹은 내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알리는 시대가 왔다. 스마튼 폰의 등장 후 그 변화는 따라잡기 벅찰 정도로 빨라서, 잠시 한눈을 팔면 놓치기 십상이다. 나의 10대는 지금에 비해 보면 원시 시대나 다름이 없다고는 해도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 함께 20대를 보낸 나인데도, 40대로 들어 선 지금은 가끔 새로운 플랫폼을 따라가기가 벅차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문득 우리 부모님이 생각이 난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무섭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맞춰 살아가기 얼마나 조급했을까. 이제야 그 마음이 조금 헤아려지는 걸 보면, 나도 이제 기성세대로 접어드는 건가 하는 쓸쓸하고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변화는 어느 세대나 존재해 왔고, 그런 변화를 주도하기도 하고 받아 들기도 하면서 흘러온 시간들이 우리 인류의 역사 아닌가.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나는 흘러가는 시간 속의 작은 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내 세상의 중심이기도 하니 세상의 흐름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가 내 세상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SNS 유튜브를 하기 시작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역시 SNS 무시할  없는 중요한 홍보 수단이라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열심히 흉내를 내고는 있다.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튜브 역시 욕심이 나서 시작은 해보았지만, 누군가에는 쉬울  영상 촬영과 편집  일련의 작업들이 내게는 찼다. 뭐랄까, 단순히 찼다가보다는, 내가 느끼기에 재미도 없었고, 재주도 없었다고 해야 하나. 이런    알아야 21세기를 살아남을  있다는데, 나는 도통 어떻게 해야 하나 감이 서질 않았다. SNS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진을  찍는 재주도, 순간을 남기는 열정도 없는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공공장소에서 촬영한다는 쑥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했고, 흔한 포토샵이나 영상 편집의 능력도 없었다. 누구나 쉽게   있다는 앱을 찾아 다운로드하고, 때로는 구입하기도 해서 열심히 해보았지만  흥미도 생기지 않고 부담만 되었다. 그런 나를 마주하고 있자니, ,  사업을 위해서라면 해내야 하는데 이렇게 열정도 능력도 없어서 어떡하지? 내가 이렇게 의지박약  사람이었나,  열심히 하면 되는  아닌가.라는 자기 비하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던 중에 읽던 책에서 반짝 나를 깨워주는 문구를 만나게 되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Atomic Habits/아주 작은 습관의 힘' 책의 끝무렵 18장의 'The truth about talent(When genes matter and when they don't)'재능의 진실(타고난 능력이 영향을 미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내용을 만났을 때 나는 뭔가 눈앞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원래 자기 계발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긴 한데, 나에게 독서는 휴식이라서 책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나의 의지를 다독이기보다는 그냥 좋아하는 일 -책을 읽는- 을 하는 자체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블로거가 극찬을 하며 자기 아들에게 용돈을 쥐어주면서까지 읽혔다기에 궁금함이 생겨서 아마존에서 주문해 읽었었다. 결과적으로는 나도 우리 큰 아들에게 포상금을 걸면서 읽도록 시켰다. 그 결정적 계기가 된 문단이 저 부분이었다. 습관도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내가 타고난 능력을 살릴 수 있는 분야를 잘 알고 계발해야 한다는, 다소 냉정하기까지 한 현실적 조언이었다. 타고난 신체 조건이 다르듯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무조건적으로 '노력하라' 혹은 '계발하라'가 아닌, '나를 잘 알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라' 또는 '인간은 모두 다르고 타고난 재능도 다르다'는 대전제를 인정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넘어간 부분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면서도 내게 맞는 부분을 찾아 애쓰고 노력하도록 격려하는 저자가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경험을 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재능 없는 영상의 영역에서 애쓰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내 필드는 이곳이 아니라고.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은 무얼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그저 대세를 쫓아하는 일 말고, 과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고찰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에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해외살이가 십수 년이 되어가니, 알지 못하는 한국의 플랫폼들이 대부분이다. 카카오톡도 해외 사용자인 내가 사용하는 버전과 한국의 그것이 다르다. 나는 카카오톡을 통해 지인들에게 기프티콘을 보낼 수도, 받을 수도 없다. 해외 사용자의 카카오톡 플랫폼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카카오톡을 쓰고 있었음에도 브런치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브런치를 만나고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꼭 맞는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는 편이다. 영상은 제작하기 전부터, 찍으면서도 부담이 되는 반면,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 행위 자체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에게 맞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를 신청하기 위해서 세 편의 글을 첨부해야 한다기에 우선 써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저장해 나갔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우선 쓰고 보자는 마음으로 매일 창을 열어 글을 썼다. 잘 안 써지는 날에도 우선 몇 자라도 적고 봤다. 피카소도 우선 그리기 시작해야 작품이 나온다고 했는데, 나도 뭐라도 우선 적고 보자는 마음으로 적어내려 갔다. 그렇게 몇 편의 글을 쓰고, 그중 세편을 첨부해 작가 신청을 했는데, 다음 날로 브런치 작가 허가가 났다. 그래서, 그냥 시작했다. 아무도 봐주지 않더라도, 딱 열 편만 써보자, 는 마음으로. 그리고 감개무량하게 한 달의 시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이렇게 열 번째 글을 적고 있다. 감사하게도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에 공감해 주기도 했다. 영상으로 소통하려 했을 때에는 이보다 더 힘들게 작업했지만 공감을 얻긴 힘들었는데. 아마 이게 내가 가진 소질의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로 14년째 크로아티아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5년만 살고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었는데, 어느새 그 시간의 세배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이곳에 있다. 늘 지나간 내 시간들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행동이 마음을 쫓아가지 못해서 늘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실행하지 않는 아이디어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던데 정말 시작하니 어느새 이만큼 와 있다. 지난 십여 년간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기억하며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어느 순간 위안을 받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나에게 쓰는 행위는 나 자신을 위한 치유의 행위이자 명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 하얀 바탕에 깜박이는 커서를 보고 고민하는 시간들도 있지만, 어느새 생각 없이 손가락이 투둑 투둑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쓰고 나면, 그날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


 나의 지난 시간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지만, 그 시간들을 어떻게 정리해서 적어 내려 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로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십수 년의 시간은 적지 않아서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딱! 떨어지게 맞아 드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그래서 나의 소망은 늘 그저 생각으로 머물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냥 우선 쓰기로 마음먹고 브런치를 시작한 순간부터 생각은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아직도 뒤죽박죽인 내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래서 될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 나는 정리는 나중에 하고 우선 뭐라도 적어 내려가자 라는 행동이 앞선다. 그리고 이렇게 그 결과 앞에 서 있다. 딱 열 편의 글만 한번 써보자는 결심을 생각보다 빨리 지켜내었다는 뿌듯함,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 여정에 생각지도 못하게 만난 따뜻한 공감을 준 많은 사람들. 시작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감정과 인연들에 감사하며 나는 다시 다음의 목표를 향해 간다. 그리고, 그 언젠가 그 목표를 달성할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적어본다. 단 한 글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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