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살아 있을게.(p379)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았던 지수는 중학교 시절, 갑작스레 키와 몸무게가 늘어나며 주변을 당황하게 하고 자기를 실망하게 하는 무지막지한 몸을 갖게 된다. 그 시절, 지수는 자신을 ‘덩어리’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때,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고 동경의 대상이었던 예쁘고 마른 해리(해리아)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불린다. 해리아의 옆에는 늘 같은 종교 공동체에서 지내는 신아가 있었다.
해리를 라이벌로 여기던 지연까지 얽힌 이 네 사람은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발생한 수영장 사고를 계기로 각자 가슴에 다른 ‘덩어리’들을 품게 된다.
시간은 흘러 32살이 된 지수는 176cm에 50kg. 오후 6시 이후 금식을 기본으로, 회식 다음 날엔 운동과 단식을 반복하며 몸을 ‘관리’한다. 그녀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자신의 몸이라는 생각에 빠져 이미 절식과 폭식의 중독 상태에 이르렀다.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지수는 고향으로 내려가 과거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해리아와 신아가 운영한다는 채수회관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지수는 해리아를 만나기 위해, 어쩌면 스스로를 마주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채수회관에서는 통증이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 기억의 ‘최초’로 들어가야만 마지막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으며, 이는 재생을 위한 치유이자 치유를 통한 재생이다. 하지만 해리아는 정말 치유되었을까? 지수는 그곳에서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외로움, 고립감, 결핍. 그래. 있었다. 통증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철저히 나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아프기 전에도 그러지 않았나. 내가 혼자가 아닌 적이 과연 있었던가?❞(p.183)
지수의 몸이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던 ‘스스로’가 먼저 자신을 볼품없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자신을 고립시키고, 외로움에 잠식되며, 결핍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 음식에 의존했을 것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몸을 망가뜨리는 지수의 행위는 어쩌면 너무도 이해 가능한 절규였다.
나 역시 초등 고학년부터 몸의 무게는 키와 상관없이 늘어갔고, 아이들의 놀림과 스스로 위축되면서도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며 늘 허기졌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오면서 몸(외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다이어트를 했고,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부단히 애쓰는 내가 보여 지수를 다른 인물보다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기억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내 마음의 근원에 가닿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매번 어떤 저항을 마주해야 한다.❞(p.236)
인간은 때때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억을 봉인한다. 나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아픈 기억을 피하고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 기억의 근원에 도달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치유’란, 결국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수, 해리아, 신아, 지연—이들 사이에는 동경과 질투, 소외와 애증이 뒤섞여 있었다. 감정의 파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몸의 통증이 되었고, 그 통증은 마음과 생각이 고통을 잊기 위해 스스로를 다시 고통 속에 빠뜨리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어쩌면, 그 시절, 이 아이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공감과 이해, 존재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한 줄기 빛이 있었다면, 이토록 오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강화길의 『치유의 빛』은 치유를 말하면서도 그것이 ‘통증의 제거’가 아닌, 오히려 통증을 인정하고 껴안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회복이란 고통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고통이 있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가는 일임을, 이 소설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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