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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머리 앤줌마 Mar 11. 2022

삶을 위한 노래

추억을 먹다

엄마의  찬은  늘  가지런했다. 한  접시에  두가지  음식을  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는  그  원칙을  지키셨다. 노년에는  한상을  차려내는  것을  힘들어  하셔서  반찬수를 줄이고  탕이나  볶음요리를  비롯한  간단히  먹을수  있는  일품요리를  권하여  보았지만  남편을 향한  마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엄마에게서  밥을  짓는  법이나  반찬을  만드는  과정을  배운  적도    엄마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본적도  없었다. 결혼하고서  부엌의  주인이  되고보니  먹어본  입과  어깨너머로  본  눈이  엄마의 손맛을  흉내내고  있었다. 집을  방문하여  음식을  먹어본  지인들이  한결같이  나의  집밥에  대해 건네는  칭찬은    "담백하다"는  것이다. 재료들이  섞이지  않고  하나하나  본연의  맛을  가지고 있어서  먹고나면  개운하다는것이다.


오늘  딸램과  함께  외식을  했다. 집밥이  먹고  싶을때나  오랜만에  밥을  사고  싶을때  또  귀한 손님이  오면  꼭  보여주고  싶은  맛집이다. 네덜란드산  사위  파서방도  맛을  보고는  엄지척! 하며 나와  남편의  생일에  이곳에서  밥을  대접해  주었다. 간판도  소담스럽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건물  모퉁이에  새겨진  '붓반'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나는  주인님의  그 마음도  좋다. 화려한  간판으로  유혹하는  음식이  아니라는  뜻이  담긴듯하고 맛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정성이  내게도  보여서  좋다. 미리  예약을  한지라  햇살이  따뜻한 창가로  안내를  받았다. 자리에  앉으면  곧  따뜻한  차가  나오고  이어서  호박죽과  샐러드, 계절을 알리는  전이  함께 나온다. 먼저  호박죽을  숟가락에  반만  채워  입안에  넣고 나는  천천히  음미하며  일부러  만든  느긋한 여유를  즐긴다. 혓바닥에  스며드는  호박의  본연의 달큰함이  다음으로  먹어볼  샐러드를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샐러드  위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소스는  잇몸이  좋지  않은  내가  차고  새콤한것을  꺼리는데도  자꾸만  손이  가는 맛이다. 입안에서  퍼지는  유자향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그렇게  호박죽과 샐러드, 계절의 전을  먹고  나면  한상이  차려진다.



븟반은 부엌이라는 '븟'과 밥이라는 '반'이 합쳐진 '부엌밥'이라는 뜻으로 주인님이 지었다는 설명처럼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다. 계절에 따라서 찬의 종류가 바뀌기도 하고 엄마의 손맛을 닮아서 단순하고 깨끗한 맛이 내가 만든 집밥과 닮아서 부엌이 버겁거나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출렁일 때면 나는 이곳을 찾는다. 딸과 함께라서 더 맛있게 먹었다. 솥밥을 먹을만큼 밥그릇에 푸고, 국도 가득히 담고는 후루룩~ 쩝쩝 소리를 내며 찬들과 함께 먹고나니 숭늉의 고소함이 코를 찌른다.


우리는  누룽지  남김없이  긁어서  남은  배를  채우고  말미에  나오는  매실차도  달게  마시고 일어섰다. 오랜만에  엄마의  손맛을  어깨너머로  배운  딸이  엄마의  손맛을  닮은  식당에서 딸과함께  고운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나는  엄마와의  추억을  먹었고  딸에게는  먼훗날  그리움 하나를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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