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본디 더운 계절이고 매년 무덥다고 하지만, 해마다 그 기록은 경신되어 올해는 유난하고 지난하다. 며칠 비를 내려 대지의 열을 식히던 장마는 이제 없고, 기습적으로 비를 한바탕 쏟아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뜨고 이내 무더워진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이었다는 2018년 이후 6년 만에 또다시 최악의 폭염이라는데, 섭씨 40도를 훌쩍 넘어갔던 그해 여름 나는 부지런히 산에 걸음 했고, 올해는 한 번을 힘겹게 다녀온 이후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핑계의 무덤만 높여가며 여름 내내 그 뒤에 숨었다. 그 한 번의 기록도 9월이 되어서야 겨우 쓴다.
표고(標高)가 1,500m가 넘는 20여 개의 봉우리가 이어진 지리산 일대는 구름대가 가로막히고 부딪혀 큰비가 잦다. 그간 지리산 일대의 연 강수량은 1,200~1,600mm로 그중 절반 이상이 여름철인 6~8월에 내린다고 하는데, 올해 본격적인 장마철에 접어든 6월 30일 하루에만 지리산과 남해안에 200mm 이상, 전라남도 구례에 218mm의 비가 쏟아졌다.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내다 그치기를 반복한 무더운 장마의 끝자락인 7월 26일에도 지리산 부근에 120mm 이상의 많은 비가 예보되었고, 비는 27일 저녁까지 흩뿌렸다.
몸은 온종일 기계가 일으키는 바람에 길들어, 제 스스로 바깥의 사정을 헤아리는 감각이 무뎌진 채 길을 나선다. 비가 멎은 숲에는 나무들의 비릿한 향 사이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물이 뿌연 안개로 내려앉는다. 발이 닿는 곳마다 흐르는 물에 내딛기를 주저하고, 거듭 주저하는 사이 아침 해가 높이 떴다. 겨우 닿은 산 중턱의 샘에는 쉬지 않고 산을 달려 내려와 모여든 물이 와글거린다. 그곳에 서서 나아갈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벌써 반절을 비운 물통을 다시 채운다.
머물러있던 대기가 움직이면서도 습기를 덜지 못하고 온도만 높여 후덥지근하다. 오르는 길의 절반만 가보자고 어르고, 거기서 10분만 더 걷자며 달래보지만, 일신의 안락을 갈구하는 본능에 맞부딪힌 걸음은 더욱 더디고 무겁다. 어찌하여 이리 오르고, 어찌하여 이리 오르지 못하는가. 느리거나 멈춘 걸음에 상념이 자꾸 끼어든다.
물을 머금은 대기가 서서히 움직이는 아침
초록이 완연한 여름 산에 이름 모를 수풀이 분별없이 뿌리내리고 꽃을 피웠다. 도시의 콘크리트 사이로 뿌리를 내렸다면 대체로 잘리거나 뽑혔을 꽃들은 산에서 저마다 선 곳의 주인이다. 홀로 잘나서 옆을 무시하지 않고, 따로 또 같이 바람에 산들거린다. 몸짓에 불과하던 것에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비로소 꽃이 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제각각의 색과 모양으로 계절을 품고 피워낸 그들은 언제나 오롯이 꽃이었고,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나의 식견은 턱없이 얕다.
산에는 계절마다 꽃이 핀다. 봄에는 일제히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초록 일색이었다가, 가을에 열매를 맺고 잎을 떨군 자리에 찾아온 겨울은 눈과 얼음뿐이라고 고착된 일차원적인 관념은, 걸음마다 눈으로 보고 부딪히고 나서야 그 위세를 꺾는다. 새로이 난 연둣빛과 어우러진 봄꽃과는 또 다른, 깊어진 초록에 뒤섞인 여름꽃을 보느라 두 걸음에 한 걸음을 멈춰서니 흐르는 시간은 속절없다.
저마다의 색과 모양으로, 따로 또 같이 핀 꽃
결국 늦어진 걸음에 버스가 서는 곳까지 마저 걷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이라 택시를 부른다. 타고나니, 나를 태우고 움직이는 거리보다 태우러 오기까지 온 길이 더 멀다며 거리가 긴 쪽에 맞춘 요금을 내민다. 어느 쪽이었든 더는 못 걸을 일이라 대도시와는 다른 낯선 셈법에 열을 내는 대신 택시 속 기계가 뿜는 바람에 열을 식히는데, 넋 놓은 표정을 두고 산에서 얻은 여유라고,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기사는 말했다.
더위와 열기와 습기를 핑계로 더는 산에 걸음 하지 않고 한 글자도 나아가지 못한 시간을 타박하는 사이, 가는 나무에 붙어 울던 매미가 물러나고 풀벌레 소리가 밤을 채운다.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산과 나를 연관 짓는 타인의 말에 언젠가부터 속박된 제 시선이 부끄러워 내밀하게 일어난 저항으로 그저 흘려보낸 날들을 지나, 도시 한 켠에서 이름 모를 풀벌레가 날개를 비벼 내는 소리에 물을 머금은 그날의 산이 흩트린 비릿한 향과 길가에 도란도란 핀 여름꽃을 마음속에 그린다. 이제는 도시의 바람도 제법 시원해졌다.
[지리산국립공원크루(Crew) 활동기록]
보이는 것을 지나칠 수 없는 건 천성인지, 재주인지 모르겠다. 지리산에 걸음 하며 봉지 하나를 채우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경험이 거듭될수록 안타까움만 는다.
얼마 지나지 않은 대화 중, 그렇게 높고 깊은 산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에 대한 인식과 존중을 갖춘 이들이 아니냐는 질문에, 종일 뛰고 걸은 것을 '인증'해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상식과 배려보다 우선되는 일이 슬프게도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나는 대답했다.
인증하는 것 외에는 안중에 없는 개인과 무리는 먹고 마신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고, 부끄러움과 적당함을 잊은 채 걸음마다 소란했지만, 감사하게도 초연하게 바위틈의 쓰레기를 주워내는 한 사람을 오늘도 봤다.
스치는 찰나 뒷모습을 담았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1987년에 출시된 이백냥이라는 라면이 2020년에 잠깐 다시 나왔다. 계곡길 틈에 있는 봉지는 최근에 나온 디자인이 아니라 그 옛날의 것에 가까웠다. 4년이라도 꽤 많은 인원이었을 텐데, 사람이라면 30살은 족히 되었을 시간 동안 몇 명이나 스치고 지나갔을지는 좀처럼 짐작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