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옥에서의 마지막 시간, 공간 비움의 날에 함께하다.
구옥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앞두고 있는 4월 29일,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로의 세 번째 답사를 진행했다. 그동안의 활동과 추억을 공유하는 '공간 비움의 날' 행사가 있었는데, 1부는 개똥이네 문화놀이터를 이용하는 아이들과 부모를 이용한 시간으로, 2부는 독서 모임 참여자를 위한 시간으로 계획되었다.
[마지막을 기억하는 방법: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 시리즈는 총 4편의 글로 기획되었다.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이번 글에서는 '공간 비움의 날' 행사에 대해 기록해보려 한다. 마지막 글에서는 '제3의 장소'로서 개똥이네 책놀이터가 가지는 특징을 비교, 분석해 볼 예정이다.
진행자로 나선 MC샘물의 아이스브레이킹과 함께 1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1부는 개똥이네 책놀이터를 이용하는 아이와 부모님을 위한 시간이었는데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빼곡하게 메울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참석했다.
퀴즈를 통한 아이스브레이킹이 진행되었는데, 이때 '공사 기간 중에 책 주문은 어디서 하지?', '수령은 어떻게 해? 누구한테 연락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 등등, 질문을 통해 아이들에게 개똥이네 책놀이터의 추후 운영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레 전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난주 작가의 '냥이의 이상한 하루' 이야기 공연이 진행되었다. 모든 사람(어린이)은 저마다의 재능이 있고 함께 했을 때 각자의 재능이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공연이었는데, 사진에서 보이듯 아이들의 열띤 참여가 있었다. 특이했던 것은 이야기 공연이 끝난 뒤, 글 쓰는 노하우를 아이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를 그저 동화, 공연의 감상 대상(문화 소비자)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는 '작가'로 여기는 태도에서 개똥이네 책놀이터의 아이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른을 대하는 태도 역시 수평적이었다. MC가 행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생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에 대하여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생목은 줄임말이에요. 줄임말은 쓰지 말아야 해요!'라고 조언을 한 것이다.
아이들이 책방을 이용하는 어른들을 권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 있는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이에 진행자는 아이의 의견이 맞다고 공감해주며 즉석에서 표현을 수정했는데 개똥이네책놀이터의 어른들 역시 아이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똥이네 문화놀이터의 구성원과 그들의 부모를 위한 행사였던 1부는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 그리고 개똥이네 책놀이터의 기록을 담은 영상 상영으로 마무리되었다. 공연의 반주는 너굴몬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다. (너굴몬은 2회차 방문 때 있던 '놀동' 시간에도 놀이 인솔자로 함께했다.)
'이 공연은 관객이 참여자네!'
아마도 책방지기 그대로가 했던 말로 기억한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자 책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아이들이 일어나 앞쪽의 무대로 향했다. 보통의 '기념공연'과 달리 공간의 이용 '당사자'가 직접 공연을 꾸린다는 점이 생소하면서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후에 있던 영상 상영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관찰되었는데, 영상에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아이들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어 나다!', '나야 나'를 연신 외쳐대며 즐거워했다.
사회를 보고, 공연을 준비하고, 영상 제작에 참여하고.
이렇듯 공간 비움 행사의 모든 과정은 책방을 사랑하는 이들의 능동적 참여로 이루어졌다.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를 바탕으로 능동적 참여가 형성되었고, 모두가 즐거운 공간 비움 행사가 완성되었다. 이곳에서만큼은 마지막이 꼭 슬프고 아쉬운 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추억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마지막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아이들이 자리를 비우자, 독서동아리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함께 나눌 먹을거리를 들고 왔으며, 누군가는 아이와 함께 방문했다. 몇 년 만에 방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회원도 여럿 있었다. 2부 행사는 1부에 비해 간결한 구성,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저녁을 먹지 못하고 온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먼저 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1부와 마찬가지로 영상 상영의 시간이 있었으며 그 뒤에는 구옥에서의 마지막 시간에 대한 소감과 새로운 장소에서 쌓아갈 미래에 대한 기대평을 나눴다.
2부의 경우 식순에 따라 있었던 일을 나열하기보다는 자리를 지키면서 들었던 대화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에 대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개똥이네가 했던 가장 큰 일은 이 공간에서 어른들을 만나게 해 줬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미산 마을은 워낙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은데, 문턱을 낮춰서 어른들이 올 수 있는 공간을 지금까지 운영해 준 덕분에 지금 이런 순간들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성미산 마을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은데 이렇게 어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고맙고 소중하다는 내용이었다. 외부인인 필자의 눈에도 존재가 부러운 장소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싶다.
동네 친구. 어릴 때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존재였지만 어른이 되고 진학, 취직, 결혼 등의 삶의 변화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잃어버린 존재에 해당한다. 오늘날에 있어서 동네 친구란 누구나 있었으면 하지만 가지긴 힘든, 그런 희귀한 존재에 가깝다. SNS와 대중교통 광고판에서 동네 친구 찾기 어플을 홍보를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여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필자의 눈에는 이들이 '독서 동아리'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 친구들의 모임처럼 보였다. 각자 다른 직업, 배경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책방에 함께 모여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공동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고민을 위해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아 독서동아리를 꾸린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지역의 현안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독서를 통해 한다는 점에서 '동아리원'이라는 말보다는 '동네 친구', '마을공동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어른에게도 개똥이네 책놀이터가 소중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여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 아름다웠던 지금 이 공간이 사라져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드는데요.
공간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 저마다의 색깔이 있어서 지금의 책방이 만들어졌듯이 다음에 새로 생기는 공간에서도 아이들과 또 이용하는 우리들이 만나 책방을 만들어 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놀이공동체이기도 하지만 지적 공동체이기도 한 것 같아요.
현재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면서도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 갈 책방에 대한 기대를 비추고 있는 말이다.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 저마다의 색깔이 있어 지금의 책방이 만들어졌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만큼 다양한 배경,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아이가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좋다.
어떤 조건과 관계없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장소.
떠났다가도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장소.
아마 그런 장소가 개똥이네책놀이터이지 않을까? 개똥이네책놀이터가 제3의 장소로서 가지는 특징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남아있지요?
일주일 정도 남았으니까 벽에 막 낙서도 하시고 담벼락에서 기념 촬영도 하시고 그러세요.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공간이 부서지기 전에 여러분이 마구마구 자기만의 기념사진도 찍고, 가족이나 책방 친구들이랑 같이 기록을 남기기를 권해드리면서...
아직 마자막을 기억하는 방법이 한 가지 남아있다. 바로 철거될 책방의 담을 이용한 기억법이다. 책방지기는 공간 비움의 날 행사 이후, 철거까지 남은 기간 동안 개똥이네책놀이터 앞쪽 담장에 열심히 각자의 기록(낙서)을 남길 것을 권유했다. 또 어른들에게는 아직 책방에 남아있던 책을 한 권씩 선물하기도 했다.
마지막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순간을 어느 때보다 즐겁고 뿌듯한 시간으로 보내는 것이다. 책방지기가 '그대로'가 철거 진행 한 달 전부터 공간 비움의 날 행사를 기획해온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날 쌓은 추억들이 다시 만나는 날에는 새롭게 탄생할 '제3의 장소'를 위한 밑거름이 되어주길 바라며, 세 번째 답사에 대한 기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