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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연 Jun 03. 2022

마지막을 기억하는 방법: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4)

레이 올든버그가 말하는 '제3의 장소'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다.

제3의 장소를 기하며.

작성 동기와 선정 이유, 확인하고자 했던 것들

 

 이번까지 총 4편으로 기획된 [마지막을 기억하는 방법: 동네책방개똥이네책놀이터] 시리즈는 필자가 수강 중인 '마을공동체 재생' 수업의 과제의 일환으로 작성된 글이다. 책방이 공간을 비우기까지 총 3번의 답사가 진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성미산 마을의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가 가지는 제3의 장소로서의 가능성과 특징을 분석하고자 했다.


 대상지 선정에 앞서 작성했던 간이 연구계획서는 다음과 같았다.


□ 개요

소박한 외관을 가진 개똥이네책놀이터

성미산 마을에 위치한 동네 서점 ‘개똥이네 책놀이터’를 대상지로 연구를 진행하려 한다. 대부분의 동네, 독립서점은 ‘노키즈존’을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어른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아이를 위한 공간이 있더라도 성인을 위한 공간과 분리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하지만 ‘개똥이네 책놀이터’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책을 읽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장소를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점에서 기존의 서점과 차이를 가지며 그 안에서 형성되는 공동체의 모습 역시 다른 서점들과는 사뭇 다를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다. 또한, 대상지가 위치한 성미산 마을이 공동육아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탄생한 곳임을 감안할 때, 개똥이네 책놀이터는 성미산 마을에 위치한 다른 제3의 장소와도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흥미로운 연구 장소라 판단했다.


연구계획

     

1. 연구 배경과 목표

2. 장소의 위치와 역사

3. 운영되는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 인터뷰 진행

   - 인터뷰 대상: 공간 운영자, 이용하는 아이들, 부모님(혹은 주민)

   - 인터뷰 내용: ‘개똥이네 책놀이터’가 가지는 이미지와 공간성

                        그동안 진행되었던 활동이 마을에 미친 영향

                        운영자와 이용자(주민) 사이에 형성된 관계망

4. 제3의 장소로서의 특징 및 내부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 효과에 대한 고찰

    + 재건축 이후에 대한 기대



 첫 번째 게시글에서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지기 '그대로'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두 번째 게시글은 아이의 부모이자 독서동아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백만송이'와의 인터뷰, 그리고 아이들의 전통놀이 시간인 '놀동'에 대한 참여관찰의 결과를 보여준다. 마지막 세 번째 글에서는 공간 비움 행사에 대한 기록이 진행되었다.


연구 계획의 목차 중 3번에 대한 내용은 앞서 작성된 세 개의 게시글에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4번, 개똥이네 책놀이터가 지니는 제3의 장소로서의 특징과 내부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고찰, 그리고 재건축 이후에 대한 기대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제3의 장소로서의 특징

아이와 어른이 모두 존중 받는 장소


중립지대, 제3의 장소와 레벨러, 가장 중요한 활동 대화,
접근성과 편의, 단골, 소박한 외관, 장난스러운 분위기, 또 하나의 집

 

레이 올든버그의 책에서 이야기하는 제3의 장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이 중 개똥이네책놀이터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관찰된 특징은 레벨러(수평파)와 대화, 단골, 그리고 또 하나의 집의 가능성이다.



수평적 관계의 실현, 레벨러

 레벨러 Leveler(수평파)는 찰스 1세 때 출현한 단어로 크롬웰 공화정 때 사라진 급진적인 좌파 집단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모든 지위나 계급을 폐지하고자 했으며, 사람들을 동등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제3의 장소 p70)

게시글 (1)
게시글 (3)

 개똥이네책놀이터가 레벨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위의 텍스트에서 찾을 수 있다. 레벨러는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입회와 배제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답사를 통해 살펴본 책방은 어른과 아이, 부모와 부모가 아닌 이들이 모두 방문할 수 있는 장소에 해당했다.


 아이와 마을의 어른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반말 문화'는 개똥이네에서의 수평적 관계 형성이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아이가 어른을 두려워하지 않고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공간에 깔릴 수 있었다. 이름 대신 별명을 사용한다는 점 역시 수평성에 기여한다. 누구 집의 구성원인지, 성별은 무엇인지 등등 배경을 유추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모두가 동등한 관계 속에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곳에서 진행되는 방과 후 활동의 경우 인근에 위치한 공립학교인 '성서초등학교'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회에 대한 기준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준이 대안학교(성미산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생에게도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이 기준 역시 수평성을 위한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으리라. (덧붙이자면 출입에 있어서는 제한이 없다.)



웃음과 위트가 넘치는 대화

 대화는 중립적이고 수평화 작용이 일어나는 무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은 제3의 장소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자 제3의 장소를 유지시키는 활동이다. (제3의 장소 p73)


이에 대한 내용은 위의 본문에서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 레이 올든버그의 말에 따르면 제3의 장소에서는 더 나은 대화가 이루어지며 대화 분위기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활기차고 솔직하고 적극적이며 웃음과 위트가 넘친다고 표현했는데,  아래의 텍스트에서 그 증거를 엿볼 수 있다.


책방지기와 함께 떡장수 놀이를 하는 모습
게시글 (2)
게시글 (3)

위는 아이들을 위한 야외 전통놀이 시간에 진행되었던 대화의 일부로 아이와 인솔자(어른) 간의 위트 있는 대화가 이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떡장수 놀이'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발생한 대화이긴 하지만 평소 솔직하고 위트 있는 대화 분위기가 있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위와 같은 책방지기에 말에 위트 있게 반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다.


 아래(게시글③)에서는 적극적이고 솔직한 대화가 관찰된다. 아이는 줄임말을 지양해야 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진행자(어른)는 그것을 바로 수용, 정정하는데 이는 앞서 말한 수평적 관계의 증거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작성된 글에서 자세히 언급한 적은 없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어른(부모와 동아리원)의 대화 분위기도 비슷했다. 공간 비움의 날 마지막 일정이 끝난 뒤, 자리에 함께했던 동아리원들은 안주 그리고 약간의 술과 함께 유쾌하고 화기애애한 대화의 시간을 보냈다. 이는 개똥이네 책놀이터가 제3의 장소에 가까움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앞으로 생길 새로운 공간에서도 제3의 장소로서의 특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해당한다.

 


단골, 그리고 또 하나의 집

 단골손님은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장소에 특색을 부여하고 언제 방문하더라도 그곳에 아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게 만든다. 새로운 이에 대한 환영과 수용 역시 단골손님의 중요한 역할로 볼 수 있다. (제3의 장소 p83)


 개똥이네책놀이터에는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너무나 많은 단골이 존재한다. 능동적 참여로 아이들의 놀동 시간을 지원하는 단골도 있었고, 책방의 재고 정리를 돌아가며 돕고 있는 단골도 3명 이상 있는 듯했다. 3번의 답사 중 2번 이상을 마주친 이도 있다. 아이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두 번째 답사에서 몇몇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말을 걸었던 모든 아이들이 거의 매일 개똥이네에 온다고 답했다. 또한 책방에 오는 것을 반기는 것처럼 보였다.


환대의 조각들

 이곳의 단골에게 받은 환대의 기억들은 아직도 마음 한 켠에 따뜻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첫 방문부터 한 아이가 직접 만들어 온 빵을 나누어 먹기도 했고, 놀동 시간 잠깐 함께한 아이 중 하나가 손톱 위에 자신의 것과 같은 다진 꽃을 올려주기도 했다.


 사실 인터뷰와 사진 촬영 관련으로 많은 걱정을 가지고 진행한 방문이었는데, 다들 흔쾌히 받아줘서 조금은 놀랐던 기억이 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사진 찍히기를 싫어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먼저 찍어달라고 다가오기도 하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며 호기심 섞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는데, 전반적으로 새로운 얼굴에 대한 환대의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게시글 (3)

위의 글에서 말하듯 공간을 채우는 저마다의 색깔이 있어 지금의 책방이 만들어졌다. 이때 단골들은 책방에서의 사교 집단 생성에 기여하는 대상이자, 장소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에 해당한다. 이들이 제공하는 환대가 '따뜻함'을 불러일으켜 책방이 '또 다른 집'으로 느껴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크게 4가지의 제3의 장소로서의 특징이 관찰되었다. 제3의 장소가 가지는 개인적 이점인 새로움, 균형감각, 원기회복제, 무리로 만나는 친구 역시 이러한 특징들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상의 기능

정치적 역할, 결사의 습관, 선의의 강제력


정치적 역할과 결사의 습관의 근원, 성미산마을

개똥이네책놀이터가 제3의 장소로서 가지는 정치적 역할과 결사의 습관의 기능은 책방이 위치한 '성미산 마을'이라는 관계망과 맞닿아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마을이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색하고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데, 그 결과 마을 안에 다양한 측면에서의 '돌봄'을 위한 공간들이 조성되었다. 성미산 마을의 사람들은 정치적 대화를 통해 사고를 확장시키고, 그것을 다시 대화에 반영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개똥이네책놀이터의 이용자 역시 대부분 많은 수가 성미산 마을의 사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지리적 의미에서의 뜻이 아니다) 동일한 특징을 갖는다.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인 것이다. 실제로 마지막 답사가 있었던 공간 비움 행사날 해당 구의 의원 후보가 인사를 하러 잠깐 들리기도 했다.


 결사의 습관도 성미산 마을이라는 배경에서 비롯된다. 성미산 마을의 사람들은 이미 3차에 걸친 '성미산 지키기 운동' 참여를 통해 결사의 습관을 체득했다. 책방의 단골들이 직접 역할을 맡아 공간의 운영을 돕고, 원하는 활동이 가능한 독서동아리를 기획하는 것도 이 결사의 습관이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책방에 모여 공동 기반을 발견하면 그것을 독서동아리화 한다. 그리고 동아리 안에서의 독서활동을 통해 문제 해결을 찾기 위한 대화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어쩌면 성미산 마을에 자리한 그 많은 출자의 결실 중 몇몇은 개똥이네에서의 독서 동아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선의의 강제력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

미디어가 자주 뿜어내는 유해하고 낯선 영향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며 어떻게 그 소중한 것을 보존해야 하는지에 관해 토론하는 지반적인 대면접촉이다. (p139)
    하지만 이제는 공간인 집과 공공장소 사이의 괴리가 커짐에 따라, 부모나 배우자나 가족의 안위를 알 수 없다는 점을 점점 더 걱정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동네에서 놀지 않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가족 구성원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다. (p140)

 위에 인용한 두 구절은 '미디어의 홍수'로 대변되는 오늘날, 아이를 양육하는 많은 부모들이 경계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말과 온갖 혐오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내 아이를 바르고 건강하게 키우기란 그만큼 쉽지 않다.


공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

 하지만 그동안 지켜본 결과 개똥이네책놀이터에서 만큼은 이런 걱정은 접어둘 수 있을 것 같다. 골목에서 뛰어놀고 친구들과 이런저런 방과 후 활동을 하면서 오후를 보내기 때문에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다. 또 다양한 시선, 가치관을 다룬 책을 읽고 직접 글을 써보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에 폭력적인 미디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다. 이곳이 가지는 선의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오롯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만큼 미디어의 악영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성미산 마을의 많은 부모님이 아이를 학원이 아닌 책방에 보내는 것 역시 이와 같은 기대에서가 아니었을까 한다.




동네책방! 제3의 장소가 되다.


여기까지 3번의 답사 기록을 토대로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가 가지는 제3의 장소로서의 특징과 기능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제3의 장소의 특성과 일부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제3의 장소로서의 특성, 기능과 일치하는 지점이 여럿 관찰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이곳을 제3의 장소로 정의하려 한다. 적어도 현재의 구옥에 한해서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제3의 장소 속 제3의 장소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년 3월, 새롭게 재탄생할 책방은 어떤 장소가 되어야 할까?

아이가 바라보는 책방의 모습

 

 우선 기존의 마당을 대신할 수 있는 공간이 책방 내부에 위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실제로도 아이와 어른 구분 없이 대부분의 구성원이 이 부분에 대해서 제일 아쉬워하는 듯싶었다. 구옥이라서 가능했던, 그리고 좋았던 장소가 사라지게 된 만큼 옥상이나 다른 곳에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소박한 외관을 연출해내는 것도 앞으로의 공간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책방의 이용자들,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익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기존 공간의 가구와 소품을 새로운 장소에도 배치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이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는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새로운 공간이기에 가능한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접근성과 편의의 증대일 거라 생각한다. 구옥에서의 책방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단을 거쳐야 했다. 새로운 책방에는 경사로도 함께 갖추면 어떨까?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의 가치 실현은 책방으로의 접근성을 높임과 동시에 보다 더 수평적 관계의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최근에 조성된 놀이터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계단에서 발생하는 부상을 줄이기 위해서 마운딩(언덕)형 구조물을 도입하는 걸 고려하면, 아이들의 안전 측면에서도 이 점이 더 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 공간의 특성을 적절히 담아내고, 그 위에 새로운 이점이 추가되었을 때, 새로운 둥지에서 시작할 개똥이네가 더 나은 제3의 장소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보며, [마지막을 기억하는 방법] 시리즈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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