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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사람 Jun 15. 2024

개조식 보고서 (1) - 오해와 진실

- 한국 정부와 관공서의 개조식 보고서, 이게 최선일까?

한국정부, 공공기관의 보고서


우리나라 정부기관과 대부분의 기업에선 개조식 보고서를 사용한다. 개조식 보고서는 특정 현안을 의사결정권자에게 빠르게 파악하도록 돕는 역할에는 탁월하다. 특히, 군부대와 같은 곳에서 개조식 보고서는 매우 유용한 양식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개조식 보고서,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사실 개인 회사나 영리가 목적인 기업에서 보고서를 무슨 양식으로 쓰던지, 혹은 쓰던지 말던지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그 회사나 업체에선 돈을 벌고 경쟁사를 이기고, 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팔게 하기 위해 업무를 하고있다. 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개조식, 서술식 보고서, 혹은 PPT,  혹은 빠른 메모와 메신저, 전화.. 어떤 수단이든 본인들의 영리목적에 맞게 선택하면 그만이다.   


반면 공공기관이나 정부는 행정서비스와 정책제도를 수립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집행하는 주체이다. 이 과정에서 정책 수립에 오해나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이 미친다. 또한 바로 문건을 사고파는 기업의 행위와 달리 정부의 정책이나 행정서비스는 수립과 집행과정이 오래 걸리고 효과나 문제점이 드러나는데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최초에 보고와 정책수립의 과정에서부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거슬러 올라가기 쉽지 않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정부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에서야말로 커뮤니케이션, 보고 과정이 명확해야 하며, 이과정에서 소통매체로 쓰이는 보고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조식 보고서의 특징  


한국의 개조식 보고서는 짧고, 요약식이다. 거의 훈민정음 해서본 수준으로 해독해 가며 읽고 설명까지 들어줘야 이해가 된다. 실제로 공공기관에서도 개조식 보고서를 장려하거나, 개조식 보고서를 얼마나 잘 쓰는지로 정책이나 담당자를 평가한다. 2022, 창업진흥원에서도 개조식 보고서 쓰기가 하나의 주요 과제이다. (https://blog.naver.com/sbooklab06/222714304765)


대표적으로 2020년 초에 발표된 산업통상자원부의 2020년도 업무계획이 잘 쓰여진 개조식이다.


개조식 보고서는 얼핏보면, 요약식이라 1-2장으로 내용을 압축할 수 있고, 보기에도 매우 잘 정리되어 있는 느낌을 준다.  단어와 단어로 연결하여 서술형 어미가 없어 왠지 힘있어 보이고 보고서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하기도 쉽다. 공공기관이나 정부에서는 실무자들이 개조식으로 글을 쓰는 것을 요구하고 얼마나 개조식으로 요약하고 짧게 잘 쓰느냐에 따라 담당자를 평가하고 있다. 보통 기관의 상사들, 나이든 윗분들일수록 이 개조식 보고서를 선호하니 바꾸질 못한다. 그러니 실무자들은 유능해 보이기 위해 개조식 보고서에 더 집중하게 된다.


개조식 보고서의 문제점  ... 이게 최선입니까?


Writing 중에서도 한국 공무원의 개조식보고서는 전개형 문장이 아닌 한문식 단어의 평면결합으로 쓰다보니 생략이 너무 많고 오해와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주어와 서술어 축약이 많아 시점상 했다는 건지, 하겠다는 건지, 누가 했다는 건지, 할건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정보 왜곡을 조장한다. 서울대 이준웅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한 언론기고문에서 개조식 글쓰기의 기원과 문제점에 대해 격조있게 비판한 바 있다. 개조식 글쓰기란 한국 공무원들이 공문서 작성에 사용하는 특유의 관료주의적 글쓰기 방식인데, 국립국어원의 박용찬 연구원에 따르면, 개조식이란 용어 자체도 일본어의 ‘항목으로 나누어 쓰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첫째, 개조체 스타일은 어디에도 없는 문체로서 일단 문장이 아니다. 개조식이라 실제로 보고자를 만나 말로 듣지 않으면 오해와 불이해 초래 가능성 높다. 즉, 지식전달이나 사실을 요약해서 빨리 보고하는데는 효율적이나, 상호 대화하고 소통해야하는 사안,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일 때는 위험해진다. 그래서 중요한 사안인데, 개조식으로 쓰게되면 결국 보고서 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반드시 대면보고를 해야한다. 결국 이것이 면대면 보고를 더 강화시킨다.   


둘째, 문장이 아니고, 서술어로 끝나지 않아 시제가 불분명하다. - 한거냐 할꺼냐? 네가 했다는거냐? 남이 할꺼라는 거냐?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 시제가 불분명하면 이것이 과거의 일 fact 인지, 앞으로 하겠다는 계획인지, 그냥 막연한 희망과 의지 hope 인지 혼동된다. 시적 표현이라면, 그 부분을 모호하게 놔둠으로써 여운을 불러일으킬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공정책을 논의하는 보고서에서 시제의 혼동은 자칫, 현재의 현황을 왜곡함으로써 미래의 방향을 잘못 인도할 수 있다. 위 산업부 보고서 첫 페이지에 서술어로 끝맺지 않아도 오해하지 않는 이유는 맨위 제목에 그나마 “계획”이라고 되어있어서이다. 그래서 모든 말은 희망 내지는 계획으로 생각하고 읽어주는 것이다. 서울대 이준웅 교수도 명사형 어미의 시제 문제를 지적했다. 과거 사실을 쓴건지, 현재 행위에 대한 보고인지, 아니면 미래 계획을 쓴 건지 애매지 애매하다. 


이 역시 추론과 유추로 뜻을 해석할 순 있겠으나, "추론을 통해서만 명료하게 의미를 복원할 수 있다면, 공문서로서는 실격"이다. - 이준웅


셋째, 주술관계, 대상관계, 주어와 목적어가 분명치 않아서 혼동을 초래한다. 이는 수동태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바, 누가 하겠다는 건지 시키겠다는 건지 불분명하다. 때로는 정부가 오히려 이런 모호함을 놔둠으로써 민간기업이 할 일인데, 마치 정부가 하는 것인양 성과를 가로채는 발표가 되기도 한다. 이준웅 교수도 개조식 글쓰기에서 주어가 명확치 않은 것을 첫번째 문제로 지적한다. 문장을 명사구로 대체하면서 주술관계가 모호해져, 누가 한다는 건지, 못했다는 건지, 무엇이 수단인지도 불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애써 읽으면 유추는 할 수 있지만 "정부 문서에서 이런 모호함은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며, 때로 심각한 책임회피의 방편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시 위 산업부의 보고서를 보자. 보고서에서 7번 과제. “전량수입 가스터빈 국산화 ->향후 15조원 시장진입” .. 이를 문장으로 쓰면 “전량수입에 의존하던 가스터빈을 국산화하여 향후 15조원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주어가 빠졌다. 가스터빈 국산화를 누가 한단 말인가? 가스터빈을 쓰는게 기업일텐데 기업이 국산화를 한다는 말인가? 이 보고서는 산업부라는 정부의 보고서인데, 그러면 기업이 가스터빈을 국산화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기업이 국산 가스터빈을 쓰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직접 국산 가스터빈을 개발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문장의 주어 찾기 게임이 아니다. 각각의 경우에 행위주체가 달라질 수록 정부예산 투입 여부가 달라지며 규모가 달라진다. 수혜자가 달라지며, 사업의 추진형태가 달라진다. 정부의 책임인지, 민간기업의 책임인지 불분명하다. 사실은 어마어마한 문제와 계획을 담고있는 것인데, 지나치게 요약되어있다. 


네모, 동그라미, 찍

넷째, 보고서가 요약식이다 보니 형식이 제각각이다. 색깔, 글자크기, 폰트, 별표 첨언 등 양식이 제각각이다. 정부보고서는 개조식으로 짧게 내려다보니 주석을 따로 안하니까 중요한 참고문헌이 빠지기 일쑤이고, 참고자료는 뒤에, 옆에, 심지어 날개까지 등장한다. 네모, 동그라미, 찍으로 내려가는 문장간 구조가 역접인지, 순접인지도 모른채, 읽어내려가야 한다. 개조식 짧은 보고서를 장려하고 더 짧게 하는 사람이 우수한 사람으로 인정받다 보니, 내용이 아니라 글자의 모양, 크기, 색깔에서 승부를 보려고 화려한 기법이 등장한다. 신입일 수록 1장짜리 보고서로 승부를 보려고 화려한 기법과 글자 모양, 자기만의 반칸 짜리 글자 등 다양한 기법을 배워야한다.   



한국 개조식 보고서의 기원


그런데 이는 한국의 고유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의 고유 문제나 한국의 언어습관에 고유한 것이 아니다. 한국 국회의 희의록, 상임위 검토보고서, 예산 보고서, 예정처의 검토보고서 등 어떤 보고서도 모두 서술형이다. 학교에서도 과제나 보고서, 독후감 모두 서술형이다. 학계에서도 논문도 모두 문장식 서술 형태의 글쓰기이다.


개조식 보고서는 한국에서도 유독 정부기관, 관공서의 고유문제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유독 정부, 관공서에서만 이런 개조식 보고서를 사용하고 장려하며, 심지어 강제하고 있을까? 사실 한국 관공서의 개조식 보고서는 일제시대의 잔재라는 설이 유력하다. 다음번엔 이 기원에서부터 상세히 얘기하기로 하자.



참고

- 이준웅, 2017, "소통과 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 [미디어 세상]소통과 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 경향신문 (khan.co.kr)

- 소준섭, 2024, 공문서 문장을 바꿔야 공직사회가 바뀐다 < 민들레 들판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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