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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

산티아고 순례길 / 포르투갈길(해안길) / 비행기. 숙소 예약 / 준비물

by 지랩

순례길을 떠난 이유?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독일에 온 지 2주 정도가 지났다. 오자마자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걸리는 바람에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때 되면 밥 해 먹고 청소하는 지루한(사실 나는 집순이라 그렇게 지루하진 않았다ㅎ)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몸 컨디션도 슬슬 돌아오는 것 같고, 머물고 있는 동네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밖에 돌아다니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마음 편히 돌아다니기엔 너무나 춥고 흐린 독일 날씨..


'어디 따뜻한 곳 없나?'하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정열의 나라 스페인!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인 메밍엔(Memmingen) 공항에서 스페인 가는 비행기를 검색해 보니 두 가지 선택지가 나왔다. '마요르카'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마요르카는 유럽사람들이 많이 가는 휴양지이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순례길의 최종 도착지가 있는 도시였다.


따뜻한 날씨를 즐기기엔 마요르카가 더 적합했겠지만 나는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바로 혼자 여행이라는 것... 휴양지라면 어느 나라가 그렇듯 커플끼리, 친구끼리 올 텐데 혼자 가서 재밌게 놀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시끌시끌한 바에서 커플들 사이에 껴서 미어캣처럼 주변 눈치를 살피며 밥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자연스럽게 마음은 순례길로 기울었다. 게다가 하루종일 마음 놓고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다니, 평소 잡생각이 많은 나한테 딱이다 싶었다.


그리하여 출발 5일 전에 결정 된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 시작!



순례길 코스 선택!


유튜브와 네이버 블로그에서 순례길에 대해 공부를 좀 해봤다. 알고 보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페인 하숙에서 봤던) 순례길은 여러 순례길 중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길이었고 그 외에도 포르투갈길, 영국길 등 엄청나게 많은 길들이 있었다. 내 체력을 고려했을 때 30~40일 걷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길은 자연스럽게 제외시켰고, 2주 정도면 걸을 수 있는 루트를 찾아보다가 최종적으로 포르투갈길을 선택했다.


포르투갈길에 끌렸던 이유는, 바닷가를 따라 걸을 수 있는 해안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포루투갈길은 포르투(Porto)에서 내륙길과 해안길로 나뉘게 되고 중간지점에서 다시 합쳐진다. 사실 더 짧은 코스가 있는지 찾아보긴 했지만, 바다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고 따듯한 날씨에 포트와인과 에그타르트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마음은 포르투갈길로... 그리하여 포르투에서 시작해서 해안길을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The Portuguese Camino Coastal Route (약 290km)로 결정!!


+ 순례길 공부를 하다 보니 알게 된 상식 하나! Camino(까미노)는 '길'을 의미하는 말로 Camino de Santiago는 '산티아고를 향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순례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끼리 Buen Camino!(부엔 까미노, 직역하면 좋은 길..?)하고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비행기 & 숙소예약


우선 비행기부터 이야기하자면,

메밍엔-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비행기만 보고 순례길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메밍엔 공항에선 순례길 시작점인 Porto로 가는 비행기가 없었다...! 다음으로 가까운 공항인 슈투트가르트 공항에 검색해 보니 훨씬 비싸긴 했지만 다행히 Porto로 가는 비행기가 있었다. 메밍엔은 작은 공항이라 저가항공사만 운항을 해서 20~30유로면 예약을 할 수 있었으나 Porto는 대도시라 비행기가 없었고 최소 60~70유로는 내야 했다. 배보다 배꼽이 커진 느낌이긴 했으나 비행기 하나로 포기할 순 없지! 그리하여 아래와 같이 예약완료!


갈 때: 슈투트가르트(독일) → 포르투(포르투갈)

올 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스페인) → 메밍엔(독일)


+ 근데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포르투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걸어갈 때 2주 걸리는 거지 차로 가면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이다. 역시나 찾아보니 Flix bus로 14~35유로 정도면 갈 수 있긴 했다.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그래도 시작점에서 도착하는 게 더 의미 있으니깐(?) 저렇게 갔다 오길 잘한 것 같다.


비행기도 예약했겠다, 이젠 숙소를 예약할 차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알베르게(Albergue)라고 부르는데, 알베르게는 공립과 사립으로 나뉜다. 간단하게 비교하자면, 공립 알베르게는 10유로 정도로 저렴하지만 예약이 안되고(중요!), 침구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립 알베르게는 15~30유로 정도로 가격대가 다양하고 가격에 따라 조식, 침구, 세탁 여부가 달라진다. 나는 침낭을 챙기지 않을 예정이었고 도착해서 침대가 없는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사립 알베르게로 예약했다.


알베르게 정보는 'Buen Camino' 어플에서 참고했다. 어플에 들어가면 각 도착지의 알베르게를 확인할 수 있고 가격은 사립이라 해도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최대한 리뷰가 좋은 곳으로 예약했다. 대부분의 사립 알베르게는 booking.com(부킹닷컴)에서 예약이 가능하고 Buen Camino 앱에서 'Reservar en Booking'을 클릭하면 바로 연결되어 예약도 가능하다. 부킹닷컴에 없는 곳은 이메일을 보내서 예약가능하다.


https://apps.apple.com/kr/app/way-of-st-james-buen-camino/id858222947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editorialbuencamino.buencamino&gl=DE

아, 그리고, 호스텔에만 계속 지내다 보면 불편할 것 같아서 순례길 중간지점에서 에어비앤비를 1박만 예약했다. 공용 공간(거실, 주방)이 있고 방만 따로 쓰는 곳으로 예약했는데, 오랜만의 독방에 엄청나게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묵었던 알베르게, 숙소는 정리해서 다음 편에서..)


+ 사실 나는 처음 3일 정도만 숙소 예약을 하고 걷는 상황을 봐가면서 예약을 하려고 했는데, 5월에 순례자가 많다 보니 일부 숙소가 매진된 것을 보고 패닉이 되어 순례길 2일 차쯤에 남은 숙소를 모두 예약해 버렸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하다 보니 거리, 날짜 계산을 잘못해서 하루에 30km 넘게 걸어야 하는 날도 생겼고, 하루를 통으로 쉬어가는 날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사전에 숙소를 예약하고 간다면 꼭 위치와 날짜를 잘 계산해서 예약하시길..



순례길 준비물


가장 중요한 순례길 가방 싸기!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나는 무거운 가방 메고 하루종일 걸을 자신은 없었고, 그렇다고 돈 주고 동키서비스를 이용하기는 싫었기 때문에, 짐을 최소화해서 가기로 했다. 게다가 출발 5일 전에 순례길을 마음먹었으니 당연히 인터넷으로 주문할 시간도 없었고, 한 번 쓰고 옷장에 처박아둘 물건에 큰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최대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챙겨가되, 꼭 필요한 것은 포르투에 도착해서 구입하기로 했다.


1. 가방

- 메인 가방

- 보조 가방


+ 나는 짐을 최소화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하이킹이나 등산용 가방이 아닌 일반적인 백팩을 가져갔다. 결과적으론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보통은 L로 표시되는 하이킹/등산용 가방을 가지고 가는 것 같다. 다른 순례자들이 가방이 왜 이렇게 작냐고 놀라워했다. 나는 그 어마어마한 가방을 메고 2주 동안 걷는 게 더 놀라운데...)


++ 걷다 보면 가방을 내려놓고 짐을 찾는 게 매우 귀찮기 때문에 이어폰/지갑/핸드폰/여권 등을 보관할 보조 가방은 필수!! 내 건 크로스로 멜 수도 있고 허리에 멜 수도 있는데, 오래 걷다 보면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것이 엄청난 피로감을 주기 때문에 허리에 맬 수 있는 가방을 추천한다.


2. 의류 (무조건 잘 마르는 재질로)

- 긴팔 1ea, 반팔 1ea, 5부 레깅스 1ea, 긴바지 1ea

- 속옷: 스포츠브라 2ea, 팬티 3ea

- 발가락 양말 1ea, 일반 발목양말 3ea

- 무릎보호대 (그냥 있어서 챙겼다)

- 스포츠 타월 2ea (현지 데카트론에서 구매)


+ 현지 도착해서 얇은 긴팔과 하이킹용 발가락 양말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데카트론에 생각보다 물건이 없었다. 다른 스포츠 용품도 돌아다녔으나 결국 못 찾아서 반팔 하나와 요가용 발가락 양말(하이킹용과 다르게 발목이 짧음) 한 개만 구입하고 일반 발목양말 3개 묶음으로 된 것을 추가로 구입했다.


++ 나는 그날 입는 옷과 잘 때 입는 옷(총 2벌)만 챙겨갔기 때문에, 매일 빨래를 해서 입어야 했다. 최대한 잘 마르는 기능성 재질로 선택했으나, 비가 오는 날에는 빨래가 안 말라서 그냥 젖은 채로 입거나 가방에 매단 채로 말리면서 다녔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살면 된다. 어차피 2주뿐이니깐ㅎ)


3. 신발

- 워킹화 (하이킹화 X)

- 크록스


+ 하이킹화가 없어서 신발을 새로 사야 고민했으나 결국 원래 가지고 있던 뉴발란스 워킹화를 가져갔다. 발목이 약한 편인데도 큰 무리 없이 다녀왔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땀이나 비에 젖었을 때 금방 말라서 쾌적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 다른 길은 모르겠지만 포르투갈길은 러닝화/워킹화로도 충분하다.


++ 숙소에서 신거나 도착해서 돌아다닐 때 신을 용도로 슬리퍼/쪼리 형태 신발이 있으면 편하다.


4. 화장품 외 기타

- 포포크림 (립밤용으로, 물집방지용으로 여기저기 바름)

- 화장품샘플/에센스/바디로션 (보습제 하나만 챙겨가도 충분하다)

- 벌레 퇴치제 (숙소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칙칙 뿌려줬다.)

- 마스크팩

- 가루세제 (굳이 안 챙겨도 된다. 대부분 세탁비용에 포함.)

- 선크림 (부족해서 하나 추가로 구매)

- 치약/칫솔

- 샴푸바/얼굴비누/비누 담을 통


+ 뭔가 엄청 챙겨간 것 같지만.. 사실은 집에 굴러다니는 샘플들, 쓰다만 화장품 위주로 챙겼고, 2주 동안 피부는 포기한다는 마음으로 갔다. (얼굴에센스는 중간에 다 떨어져서 나중에는 바디 로션을 얼굴에 그냥 바르고 다녔는데, 반전인 건.. 갔다 와서 오히려 피부가 좋아졌다는 것...)


++ 선크림은 원래 가져간 양이 적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다 써버려서 중간에 선스프레이를 구매했다. 가방 옆에 넣어두고 걷는 중간중간에 칙칙 뿌리면 돼서 매우 편리하게 사용했다. 100ml가 넘어서 공항에서 버리고 온 게 아쉽다..


+++ 러쉬 샴푸바 선물 받은 게 있어서 이걸로 머리 감고 빨래도 했다. 엄청 깨끗하게 잘 빨려서 강추! 액체보다 샐 걱정 없고 가벼워서 고체로 된 샴푸/비누를 추천한다.


5. 상비약 및 영양제

- 메디폼/종이테이프/옷핀

- 글루타치온/비타민C

- 지사제/진통제/알레르기약/근육이완제


+ 물집이 생기면 얼른 터트려서 치료해줘야 하기 때문에 옷핀이나 바늘, 메디폼은 필수이다. 추가하자면, 나는 제대로 소독을 안 했더니 염증이 생겨서 고생을 좀 했다. 알콜 스왑을 챙겨가거나 현지에서 소독약 구매해서 응급처치를 하는 것을 추천한다!


++ 영양제와 상비약은 평소 본인에게 잘 맞는 것을 가져가면 된다. 나는 고함량 비타민C랑 글루타치온 조합이 피로회복에 잘 맞았고, 대자연의 시기가 겹쳤기 때문에 근육이완제와 액상진통제를 챙겼다(평소 먹는 것들로). 또, 먼지 많은 곳이나 기온이 급격하게 바뀌면 장트러블 + 알레르기 반응이 심해져서 필요한 약을 챙겨갔다. 다행히 진통제 외에는 먹을 일은 없었다.


6. 기타

- 선글라스 (무조건)

- 끈 달린 모자 (바람이 세서 꼭 끈 달린 걸로!)

- 가벼운 가방 (비닐 봉지도 OK)

- 애플워치/에어팟

- 보조배터리와 충전 케이블

- 여권 (제일 중요)

- 우비


+ 샤워할 때 옷을 걸어둘 데가 없는 곳이 많아서 옷을 넣어서 걸어두는 용도로 가벼운 가방을 하나 챙기는 것을 추천한다. 장 볼 때도 비닐을 안주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에 구매한 다음 챙겨두면 유용하다.


++ 나는 한국에서 사 온 우비가 있어서 챙겨갔다. 비가 많이 오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추워서 바람막이용으로 챙겨갔다. 시기마다 강수량이 다르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 출발한다면 튼튼한 우비로, 비가 많이 안 오는 시기에 출발한다면 방수되는 바람막이정도로 충분하다.


짐싸기 팁을 덧붙이자면, 나는 모든 짐을 분류 별로 지퍼백/비닐에 나눠서 담아 갔다. 빠르게 물건을 찾을 수 있고 비가 오더라도 젖지 않게 해 준다(레인 커버가 있다면 상관없을 수 있지만 나는 없기도 했고 있어도 매번 꺼내 쓰기 귀찮았을 것 같다).


그리고 웬만한 물건은 현지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그러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무 많은 짐을 챙겨 오지 않아도 된다.


중간에 간식을 사거나 장을 보게 되면 짐이 추가되기 때문에 약간의 빈 공간은 남겨둔 채 출발하는 것이 좋다. 특히, 중간중간 카페나 마트가 없는 곳도 있기 때문에 식량을 미리 구비해 두어야 하는데, 이것도 짐이 꽤 되기 때문이다.


준비는 끝났다.


그리하여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는 끝이 났다. 순례길 짐싸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최대한 적게 가져가는 것이었고 순례길을 마친 지금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가방무게 때문에 고생한 적도 없었고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곤란했던 적도 없다. 어쩌면 순례길에서 가장 필요한 준비물은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 멘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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