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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un 26. 2023

현실은 마음의 조작

마그리트의 이미지는 충격이 내재된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포장되었고 어떤 개성도 갖지 않았다. 무미건조할 정도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마그리트의 소재는 눈길을 끌만한 무엇도 갖지 않았다. 묘사는 사실적이고 평범하고 신사처럼 예의 바른데 이들이 우리를 기만할 작정인지 엉뚱한 곳에 놓이거나 불합리한 관계를 조성하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다. 문제는 배치와 관계에서 일어난 거였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5, 캔버스, 오일, 100x81cm.



<인간의 조건>에는 이젤 위에 올려진 캔버스의 경치가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경치와 일치된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마그리트는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 조성된 애매한 관계를 통하여 현실이란 마음의 조작에 의하여 감지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림 안의 그림은 현실을 보는 창문이다.  


그는 우리가 방 안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풍경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창 밖의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인 묻는다. 그는 창문이나 아치형 통로를 장착하여 내부와 외부라는 정신적 현상을 지적하며 방향을 묻고, 사고의 출처를 묻는다. 마그리트는 이러한 질문을 은유를 통하여 은밀하게 진행한다. 그가 말하려는 건 인간의 조건, 바로 사고에 있다. 이렇게 그는 인간이 지닌 모든 게 머릿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림이 놓인 이젤을 옮겨 놓으며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경치와 '그림 속의 그림'이 똑같을 거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의 전체구도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이젤을 옮겼을 때 과연 두 풍경이 일치할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지와 대상 간에 존재하는 이러한 애매한 관계는 불안한 심경에 불을 지핀다. 실제와 그림을 사이를 오가는 분기점은 모호하다. 의혹은 마그리트의 전매특허인지 끊임없이 분명한 건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미지가 무엇인지, 회화에서 이미지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지, 말과 이미지는 어떤 관계인지, 말의 개입으로 이미지는 어떻게 변하는지, 회화에서 재현과 유사는 어떤 관계인지 등등 그는 근본을 되새김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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