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삶
결혼 직전부터 남편이 변했다고 앞에서 서술했지만, 사실을 말하면 변했다기보다 자신의 ’ 나쁜 성격‘을 숨기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그 누구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성질이 나더라도 꾹꾹 눌러왔던 거였죠. 그의 성격은 한마디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 (Dr. Jekyll & Mr. Hyde)’의 주인공처럼 이중적이었습니다. 보통 땐 유머 있고, 자상하고, 세심한 남편이었지만, 화가 나면 엄청난 욕과 짜증을 부렸습니다. 서너 달에 한 번쯤 누군가에게 엄청난 폭언을 퍼붓곤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 대상이 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적어도 결혼 후 3년 동안은 전 그의 언어폭력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3년이 바로 사랑의 유효기간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물론 유효기간이 만료된 사랑의 끝은 잔인했지만, 그 잘난 사랑이 유효했던 동안엔 그나마 그 폭언의 대상은 주로 모르는 남이거나 가끔은 아주 가까운 스페인 가족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성격적 결함은 결혼 초기부터 보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죠. 전 그의 스트레스 요소를 줄이려고 계속 노력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그가 화내고, 짜증 부리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유 없이 발작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라니… 아마 직접 당해보시지 않고서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으실 거예요. 예를 들면, 그는 출근 시 운전하면서 절대 끼어들기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차가 끼어들려고 하면 그 차와 속도를 맞춰서 나란히 달렸어요. 그렇게 하다가 우린 몇 번씩이나 욕을 먹었고 그럼 그는 창문을 열고 ‘Fuxx you!’를 연발했습니다. 그게 매일 아침마다 그러는데 조수석에 앉은 저는 이마에 식은땀이 나고, 출근하기도 전에 기가 다 빠져버렸었네요. 선생님이셨던 엄마 때문에, 자라면서 욕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던 저로선 다른 운전자들에게 욕과 손가락질을 마구 해대는 남편의 행동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는 물건을 살 때도, 레스토랑에서도 자주 ‘진상손님’이 되었습니다. 특히 비싼 걸 살 때나 좋은 음식을 먹을 때면 더 심했어요. 한 번은 하얏트 호텔 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저희가 밥 먹고 얘기하는 도중에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져와서 곧 문을 닫는다고 말하자, 그가 난리를 쳤습니다. 그는 ‘소위 Five star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이면서 기본도 모른다고, 어디 손님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계산서를 들고 왔냐’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안 나가고 계속 버텼어요. 그는 하얏트나 조선호텔 같은 곳에선 좀 직책 있어 보이는 외국인 비지니스맨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다는 것을 잘 알고 그걸 악용했습니다. 하지만, 전 외국인도 아니었고, 문 닫는 레스토랑에서 굳이 버티고 싶지도 않았기에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던 걸로 기억합니다. 네, 이렇게 남에게 욕하고 화내고 짜증 부리는 일들이 비일 비재했죠. 하루하루가 계속 긴장의 연속이고 힘들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그는 자상할 땐 둘도 없이 자상한 사람이어서 이런 현실이 더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일단 여행을 가기로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준비해 줬습니다. 비행기표, 호텔 예약은 기본이고 비행기 안에서 작성하는 입국서류까지 다 대신 써줬습니다. 그리고 비행이 서너 시간보다 더 걸리면 늘 비지니스석을 예매했고 한 번은 파리 갈 때 비지니스석에 자리가 없다고 하니 제 좌석을 퍼스트 클래스로 업그레이드시켜 주면서 ‘와이프한테 자기처럼 잘하는 사람이 어딨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었죠.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 마음은 불편해도 몸은 편한 결혼 생활이었던 것 같네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상주하는 필리핀 아주머니를 고용하고 아기 기저귀도 웬만하면 본인이 다 처리해서 애를 키우면서 몸이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이었죠. 마음이 편하질 못 했네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혹시 오늘이 그날인가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변하는 날)?’ 싶어서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 제가 ‘이혼’하고 싶다고 아빠한테 말씀드렸을 때, 모든 일은 노력하면 된다고 믿으셨던 저희 아빠는 제게 ‘불평거리를 하나도 만들지 못하게 최선을 다해. 입안의 사탕처럼 굴라고.’라는 구시대적인 충고를 하셨고, 전 그때 ‘아빠, 나같이 겁 없는 애가 아침에 일어나는 게 무서워. 오늘은 또 무슨 핑계로 화를 내려나 싶어서 너무 힘들고 무섭다구. 나 이렇게 안 살면 안 돼?’라고 말했고, 아빠는 낮은 목소리로 ‘같이 사는 게 무서우면 안 되지…’라고 독백처럼 되뇌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