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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스카이 Jan 09. 2024

나의 Ex-스페인 시어머니 14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

그렇게 남편과의 폭풍이 한차례 지나간 후, 전 이젠 이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간단하게 짐을 싸서 집을 나가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어린 딸은 스페인 할머니 댁에 가 있어서 저희 둘의 갈등으로 뒤엉킨 추한 다툼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땐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이 인간으로부터 될수록 멀리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미친 듯이 싸우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겨우 기운을 추슬러 짐을 싸고 있는데 누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중국계 말레시아인으로 남편 직장동료의 부인이었는데, 가까운 이웃으로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던 고마운 분이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의 정신 상담을 도와주는 분이기도 했고요.  남편이 전화해서 내가 집을 나가려고 한다며 잡아달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언어폭행도 육체적 폭행과 다를 바가 별로 없어요.  몸에 드는 상처대신 마음에 상처가 난다는 것뿐.  그리고 몸의 상처나 멍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주 오래간답니다.  그리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폭행 후 많은 사람들이 미안한 마음에 배우자에게 더 잘해준답니다.  저희 엄마 친구분은 남편이 때리고 나서 꼭 보석을 선물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집도 예외는 아니라, 그렇게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화가 가라앉으면 사랑한다는 말을 연발하거나 울면서 무릎을 꿇고 ‘너 없이는 못 산다’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내뱉곤 했습니다. 이 번에도 집으로 찾아와 준 친구분께는 제가 별일도 아닌 걸로 다투고 집을 나가려고 하는 것처럼 말해두었더라고요.  전 ‘이 인간이랑은 더 이상 못 살아요.  어디로든 떠나야겠어요’라고 말을 했고, 그녀는 분노로 떨고 있는 제 어깨를 가볍게 잡고 ‘가긴 어딜 가요? 아이는 어쩌고요…‘ 라고 말했고,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전 울면서 ‘지금은 아이고 뭐고 모르겠어요.  아무튼 전 여기서 나가야 살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상담사라는 그녀의 직업을 살려 ‘일단 차를 마시고 진정하고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전 그동안의 일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했고, 그 얘기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녀가 ‘ 누가 딸을 이 사람보다 더 사랑해 주겠어요… 어린 딸을 아빠 없이 혼자 키울 거예요?’ 라며 결혼이라는 게 다 그렇게 맞춰가며 사는 거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사실 그녀의 충고가 귀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어느덧 제 맘은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이 결혼을 벗어나도 별로 바뀌는 건 없고,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라면, 이 결혼이 실수든 아니든 내가 책임을 져야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그날 다짐했어요.  이제부터 그냥 참고 살자고, 그 인간이 뭐라고 나를 볶아대고 긁어도 그냥 무심하게 참고 견디자고 결심했습니다.  사람이 원래 그래요… 애정이 있으면 기대가 생기고 기대가 있으니 실망도 커지고 화도 나고 하는 거죠.  그래서 그냥 애정 없이 무심하게 견뎌내기로 했습니다.  힘들 때마다 딸을 생각하면서 참고 살자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니… 저도 저 자신을 참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파리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린 곧 뒤에 숲길이 있고  5분 거리에 성이 있는 아주 예쁜 아파트를 장만해서 이사를 했고, 때마침 전 직장에서 자리가 있다고 연락이 와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다시 흐르는 물처럼 굽이치며 잘 흘러가는 듯싶었습니다.  대기업의 안정된 직장과 월말이면 빵빵하게 들어오는 급여, 매일 신나게 유치원으로 달려가는 딸…  우리는 겉에서 보면 파리에서 편하게 일하며 휴가땐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는 뭘 더 바랄게 없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행복한 가족이었습니다.  우린 속은 다 썩어버린 고목 같았지만 겉으론 봄날의 만개한 벚꽃처럼 꽤나 멀쩡해서 그렇게 가식적인 윈도 부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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