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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스카이 Apr 12. 2024

나의 Ex-스페인 시어머니 17

무엇이 우릴 견디게 했던가…

나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저희 가족은 파리에서 홍콩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애기아빠는 마무리할 일이 좀 있어서 파리에 남았고, 저는 제 커리어를 포기하고 어린 딸과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았기에 두 달 먼저 홍콩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홍콩은 외국인이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도시였습니다.  특히 홍콩섬 쪽에선 영어만 쓰면서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주재원이 되어서 저희 집은 훨씬 넓어졌고, 급여는 올랐으며 차량부터 1년에 한 번 스페인으로의 (애기아빠가 스페인 사람이었기 때문) 여행까지 모두 회사에서 제공되는 호사스러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홍콩의 부촌이라는 남쪽 스탠리 바닷가의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했고, 상주하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전 집안일을 할 필요도 없는 팔자 좋은(?) 사모님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전 그즈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 발 밑이 마치 블랙홀 같다는 생각이 들고, 뭔가 아주 중요한 걸 잊은 듯한 느낌이 들어 많이 불안했습니다.  전 그게 일을 하다가 그만두면서 그다지 달갑지도 않은 남편이라는 존재에게 100프로 의지해야 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는데, 맘 속 깊은 곳에선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무 일 없는 척 살고 있었고 때마침 한국에서 저희가 홍콩으로 이사 온 걸 축하하러 저희 부모님께서 놀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저희 아빠가 결혼 때 뭐 제대로 해준 게 없다시며 가구쇼핑을 가자고 하신 날이었습니다.  우린 ‘호라이즌 플라자(주재원들이 많이 사는 대형가구를 파는 쇼핑몰)’ 가서 이것저것 가구쇼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식사 전에 전 부모님 비행기표를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컴퓨터를 켰는데, 그것이 이 모든 것은 끝이고 또 시작이 될 줄 그땐 누구도 몰랐었죠.  제가 컴퓨터를 보고 있는데 메신저가 갑자기 떴습니다 (iPhone 이 나오기 전이었답니다 ㅎㅎ). 그 메시지는 ‘Hello, how are you?’라고 쓰여있었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포르투갈어로 메시지를 보내더군요.  전 ’I don’t understand Portuguese. (전 포르투갈어를 이해 못 해요)‘라고 답을 했고, 그녀는 ’ 지난번엔 꽤 잘하셨으면서…‘라고 영어로 대답했는데, 전 그 어투에서 느껴지는 느끼함에 머리까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Last time? Are you      talking about my husband? (지난번이라고? 지금 제 남편 얘기를 하시는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갑자기 ’I’m sorry!’하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방금 이거 뭐였지?’하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한 그때 그 찝찝한 느낌은 정말이지 평생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네요.  그래서 메신저를 다시 봤네요.  그랬더니 맨 위쪽에 편지봉투 아이콘이 있고 그 옆에 (7)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습니다.  7통의 안 읽은 이메일이라… 전 이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메신저를 열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은 벌벌 떨면서 그 7이라는 숫자를 클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가 모르는 또 다른 ‘그’를 발견했습니다. 애기아빠는 ’John Louise‘라는 가명으로 섹스사이트에 가입해 있었는데, 그 메신저는 그 사이트 전용 이메일과 연동되어 있는 것이었죠.  정말 손을 벌벌 떨면서 이메일 하나를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굳이 해석도 문법도 없이 ’I want (to) fuck!’이라고 적혀있더군요.  그 이메일은 차마 읽을 수 조차 없을 만큼 저속했어요.  애기아빠가 메시지를 보낸 여자들은 다 루마니아, 필리핀, 중국, 멕시코와 같은 나라의 여자들로 잘 보일 필요도 없이 쉽게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취할 수 있는 여자들이었네요.  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너무 놀란 그 순간 생각했어요.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라고.  이 지겨운 책임감으로 억눌린 내 불행을 여기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 잠깐 생각을 하고는 그중 한 이메일에 답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른 그녀는 홍콩여자였고 남편은 불행한 결혼생활이 힘들어서 여자친구를 찾고 있다는 썰을 풀고 있었죠.  그 좁디좁은 홍콩에서 말이죠.  



안녕하세요.  전 이 불행한 결혼의 원인인 알론소(가명)의 아내입니다.  제 남편이 이렇게 열심히 인터넷에서 여자친구를 찾고 있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제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더니 사람 속은 참 알 수가 없네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어서, 이제 맘 편히 이혼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두 분 편히 만나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Sincerely,

J


ps. 알론소, 이 이메일을 같이 읽고 있을 텐데, 출장 끝나면 집으로 바로 오지 말고 호텔에서 1박 더하고 오는 게 좋을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부모님이 그 잘난 네 얼굴을 평생 안 보셨으면 좋겠으니까.  그리고, 아무 걱정 마.  이혼 준비는 내가 알아서 잘할게.  네가 감사하게도 열어두고 간 메신저 덕택에 모든 게 간단해질 듯하네.  고마워.



네.  저는 이렇게 남편의 섹스데이트 상대에게 답장을 하면서, 그 이메일을 동시에 알론소에게도 보냈습니다.  ‘네가 이런 짓 하는 거 내가 다 알고 있다.‘ 뭐 대략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맘은 이 메일처럼 냉소적이지 못했고, 제 두 손은 심하게 떨렸습니다.  전 방 밖으로 나가서 조용하게 엄마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홍콩에 살고 있던 친구에게 잠깐 와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엄마는 아빠한테 본인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시며 한국으로 날짜를 변경해서 일찍 돌아가신다고 하셨고,  맘 속엔 회오리가 쳤지만, 전 이제 이혼을 서둘러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처음 한 일 중 하나는… 울면서 그 더러운 이메일들을 하나씩 프린트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이혼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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