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스카이 Dec 20. 2022

나의 Ex-스페인 시어머니 5

이젠 외롭지 않아?

원래 남녀 사이라는 게 그렇죠.  한창 좋았다가 싸우기도 하고 헤어질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럴 때가 있어요.  아니라는 거 아는데 멈출 수 없고 진짜 멈추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그런 때가… 살다 보니 있더라고요.  우리 연애를 돌이켜 보면 여기저기 ‘유턴하십시오’라는 사인이 곳곳에 있었는데 저는 그 사인을 무시했고 행복하다고 굳게 믿었고, 이게 바로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두 번 헤어지려고 시도는 했었답니다.


하얏트 호텔 로비에서 크게 다투고 제가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 때 그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그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쌀쌀한 날씨였는데 다투느라 열이 나서 그런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속으론 ‘이 남자 내가 젤 싫어하는 룸살롱에 가서 난잡하게 노는 사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면서도 좋아하는 마음이 헤어지고 싶은 마음보다 훨씬 컸기에 그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다 믿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그의 행실이 어쨌든 간에 모든 게 피할 수 없었던 운명같이 느껴지네요.


그는 모든 걸 해결해 주었고 세상의 방패가 되어주었습니다.  뭔가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맘이 따뜻했어요. 밖은 쌀쌀한 12월인데 마음은 마치 4,5월 같은 느낌으로 시간을 보냈던 걸 보니, 저 연애 제대로 했었네요. 사실 알고 보면 짧은 기간 동안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 여러 편 찍으며 연애했답니다.  매일 밤늦게 들어오는 딸이 이상했던 엄마는 어느 날 절 부르시더니 조용히 목소리를 깔고 물어보셨어요.  “너 혹시 마약 하니?”라고.  저희 엄마는 예전에 중학교 수학선생님이셨었는데, 선생님의 이미지에 맞게 엄하게 귀가시간을 지키라고 종용하시곤 했답니다.  심지어는 미국 유학시절에도 제가 주말에 늦게 나가서 놀지는 않을까 걱정하시면서 전화로 계속 확인하시는 스타일이셨어요. 그러니 회사 다니는 딸이 계속 밤 12시, 1시에 들어오니 고민하시다가 결론을 내리신 게 바로 ‘마약’이었던 거죠. 극보수 부모님과 미국 물 좀 먹은 자유로운 딸이라… 마찰이 없을 수가 없었죠.


저희 엄마는 제가 말을 안들을 때마다 ‘너 이러면 용돈 안 준다’라는 말로 제 자유를 제약하셨는데, 이젠 제가 돈을 버는 회사원이 되어서 더 이상 제 삶에 ‘브레이크’를 거실 수가 없게 되신 거예요.  늦게 돌아다니는 딸이 걱정이 되는데 막을 수는 없으니 그냥 포기하고 물어보신 거죠.  제가 아니라고 하자 “그럼 너 연애하니? 혹시 상대가 회사에 있는 그 외국인이니?”라고 바로 물으시더라고요.  역시 부모님의 촉이라는 건 무시할 수가 없었네요.  전 집에 와서 회사 얘길 별로 안 하고 그냥 ‘사장, 부사장이 외국인이다’ 정도만 얘기했는데, 저희 엄마는 부모랑 같이 사는 저를 계속 늦게 귀가시키는 남자면 외국인일 거고, 그렇다면 제가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은 회사 밖에 없다고 생각하셨대요.  네… 저도 제가 ‘셜록홈즈’를 엄마로 두고 있는지 몰랐었답니다.  그렇게 저희 연애는 들통이 났고, 저희 부모님은 ‘외국인은 절대 안 된다’며 으름짱을 놓으셨어요.  연애에 폭 빠진 저는 엄마, 아빠가 반대하시면 집을 나가겠다고 맞섰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부사장에게 제가 처한 상황을 얘기하니 그는 걱정할 거 없다면서 갑자기 백화점 안으로 절 데리고 들어가 티파니 샵에 가서 커플링을 주문합니다.  아니 인생이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무 살 첫사랑도 아닌데 저희가 너무 오버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왕 시작된 드라마 계속 찍는 걸로 결심한 저는 그 날밤 바로 여행가방 하나에 짐을 싸서, 태어나서 첨으로, 사랑을 핑계 삼아 무식하고 용감하게 ‘가출’이라는 걸 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