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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스카이 Jan 11. 2023

나의 Ex-스페인 시어머니 6

 너무 서두른 인생 제2막의 시작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렇게 철이 없었는지 모르겠네요. 어렸다면 나이 핑계라도 대련만 무엇에 홀려서 전 그렇게 ‘가출’을 해 가면서 까지 한 사람과 함께하려고 했었는지…  마치 뭐가 씌운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엔 모든 게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라고 굳게 믿었네요.  아마도 사람들이 그걸 ‘사랑’이라 부르지 않을까 합니다. 부사장 남자 친구는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줬어요.  어떤 어려움도 해결해 줬고 유머 넘치고 애교 있는 키 큰 스페니쉬 남자 친구가 되어 그냥 동거만 하면 회사사람들이 저를 무시할 거라면서 결혼식장까지 떡하니 예약을 해 버렸답니다.


드디어 우리의 결혼을 회사사람들에게 발표하기로 한 날이 왔습니다.  부사장은 사무실에 있는 모든 직원들을 중앙회의실에 모이도록 했습니다.  다들 무슨 일인가 하며 모였고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회사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잘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연애를 하게 되었어요.  이제 그 사람과 결혼하려고 합니다. 다들 축하해 주실 거죠?” 그때 누군가 뒤에서 ‘상대가 누군데요?’라고 물었고, 그는 웃으며 “수출팀 이 대리예요”라고 말하며 저를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다들 웃기 시작했어요.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근데 제가 안 웃자… IT팀 양 차장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거의 의자에서 떨어질 뻔하시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분은 조용하시지만 순진한 척하시면서 느끼한 농담을 은근히 즐기는 분이셨고, 저도 예외 없이 몇 번 그 농담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거든요.  근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IT팀은 부사장 직속의 부서라 엄청 놀라신 듯했습니다.  전 양 차장님 표정만 보고 심장마비라도 일으키신 줄 알았네요.  어쨌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우린 회사에서 결혼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이때까지도 저희 부모님의 반대는 계속되고 있었죠.  전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닌 일방적인 통보를 했습니다. ‘엄마, 아빠 우리 3월 25일에 플라자 호텔에서 결혼하기로 했어요.  두 분 오셨으면 너무 좋겠지만, 오셔서 화내시거나 우실 거면 오지 마세요.’라고 사랑에 빠진 이기적인 외동딸은 함부로 지껄이고 있었죠. 이렇게 쓰면서 다시 생각하니 너무 죄송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네요.  있는 거, 없는 거 다 해주시고 애지중지 키워주셨는데 정말 자식인지 원수인지… 제가 사랑을 핑계로 못할 짓을 했었네요.  그렇게 제 멋대로 살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하셨어요.  ‘아빠가 너 좀 보자고 하셔. 오늘 퇴근 후에 바로 집으로 와.’라고 하시는 말을 듣고 이 생각 저 생각  많은 고민을 하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아빠는 결혼을 몇 달 미루라고 하셨어요.  좀 더 생각해 보라고….  활활 타는 불같던 저희 관계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셔서 하신 말씀이신 듯했습니다.  이미 집까진 나간 딸에게 차라리 결혼 말고 ‘동거’를 하라고 권하시는 거였죠.  저희 부모님은 보수적인 분들이시라 이 결정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상상이 갑니다.  제가 예전에 지나는 말로 ‘엄마, 나 결혼 전에 동거해 볼까 봐.’라고 했을 때 엄마는 ‘그런 건 나 죽으면 해.’라고 강경하게 말씀하셨었거든요. 하지만, 회사에서 결혼 발표까지 한 저는 뒤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고, 설사 물러서고 싶었더라도 이미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었죠.



‘미안해, 엄마. 나 몇 달씩 결혼을 미룰 수가 없어. 나… 사실 임신했어…’  전 또 그렇게 부모님 마음에 원폭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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