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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 Feb 24. 2024

단칸 월세방

부부싸움

와장창!! 그 작은집에서 깨질 물건은 뭐가 그렇게 많은지.... 동생과 나는 무서워서 장롱 속에 숨어서 숨죽였다. 어린 나이였다. 아빠를 말릴 수도 엄마를 말릴 수도 없었다. 우린 옆집으로 도망을 가거나, 날아오는 물건을 피하기 위해서 구석진 곳으로 숨어야 했다. 한날은 엄마가 아빠에게 마지에서 눈에 멍이 생겼었다. 그 뒤로 아빠는 엄마를 때리진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물건이 밖으로 날아갔다. 접시 깨지는 소리, 상이 날아가는 소리, 화분이 깨지는 소리. 다양했다. 물건들이 집 앞에 있는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었다. 엄마가 넘어지면서 깨진 화분 선인장 가시에 찔려서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찔하다.


이사를 오고 나서 무슨 이유 때문인지 부모님은 싸우는 일이 잦았다. 아마도 돈 문제였을 것이다. 돈 때문에 이사를 해서 나를 힘들게 하고 돈 때문에 부모님은 매일매일 싸우니 '돈은 참 무서운 힘을 가졌구나. 나는 커서 부자 돼야지.'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꿈은 성인이 될 때까지 부자가 되는 거였다. 나는 첫째로서 가장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이 글을 부모님이 보면 많이 슬플 것 같다. 부모님을 욕보이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고 바라보셨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부부싸움은 계속되었었다. 내가 좀 커서 엄마가 이야기했다."엄마가 도저히 못살겠어서 짐 싸서 친구네 갔는데 너희 둘 울음소리가 계속 귓가에 들려서 다시 돌아왔다 아이가. 내가 안 돌아왔으면 내 새끼들 어찌 됐을꼬" 난  나이가 40세가 됐지만 엄마에게는 아직도 내 새끼라고 부릴 때가 있다. 지나간 이야기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하셨다. 부부싸움 때문이 아니라 자식새끼를 나 두고 집을 나간 매정한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미안했단다. 집안 환경이 좋아 지진 않았지만 우리가 크고 성장을 하면서 두 분은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 


빨간 벽돌로 지은 집들이 골목마다 낮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마을을 모르는 사람이 온다면 이 집이 저 집이고 저 접이 이 집 같았을 것이다. 골목마다 비슷한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그중 한집이 우리 집이었다. 좁은 골목길에 많은 집들이 있다 보니 옆집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밥그릇 국그룻이 몇 개인지 알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사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부부싸움을 하는 집이 많았다. 옆집 아줌마가 싸우면 엄마가 가서 말렸고, 우리 집이 싸우면 옆집 아줌마가 와서 말렸었다. 옆집이 안 싸우면 맞은편 집에 싸움이 났었다. 아이들은 싸움이 났다고 하면 싸움구경을 하러 나갔었다. 다들 힘든 시기였다. 마음은 너무 힘들었지만, 마냥 불만을 이야기하고 투정만 부릴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장녀의 무게를 일찍 느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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