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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혁 Mar 26. 2022

판단에 관하여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관점을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정보나 이론을 통하거나, 인물과 사건의 서술을 통하거나, 단어나 구의 함축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는 관점을 우리는 읽게 된다. 책의 관점이 나의 관점과 같아서 책이 좋을 수도 있고, 책의 관점이 나의 관점과 완전히 달라서 책이 좋을 수도 있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입부에서는 세상의 진리는 혼란뿐이고, 엔트로피는 끝없이 증식하며 우리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 혼란의 폭풍과 무관한 듯 자신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발견한다.


    조던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지도를 그리고, 별자리를 공부하고, 식물의 종을 구분하는 일이 그의 관심사였지만 청교도인 부모님과 주변 학우들은 그런 그를 이상하게만 바라보았다. 페니키스 섬에서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를 통해 자연에 대한 순수한 관심을 또렷한 목표의식으로 전환한다. 그 지향점은 물고기 종의 구분을 통해 더 선하고 도덕적인 인간을 범주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조던은 뚜렷한 목표의식으로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극복한다. 그가 미친 듯이 몰두하던 어종의 분류를 위해 보관한 샘플들을 1883년 화재로 모두 잃기도 하고, 다시 천연덕스럽게 시작한 분류와 수집본도 1885년 소실되는 역경을 겪는다. 페니키스 섬에서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결혼한 아내 '수잔 보웬'과 그 사이에서 얻은 셋째 딸 '소라'를 모두 잃는 아픔도 있었고, 이후에 재혼한 '제시 나이트'와 가진 매우 아끼던 '바버라'를 잃는 아픔도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 총장을 지내면서 겪은 '제인 스탠퍼드'와의 날 선 갈등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그의 집념을 막을 수 없었다.


    작가는 가족들의 언행과 '곱슬머리 사내'와의 이별이 가져온 자기 삶의 혼란을 이겨내기 위해서 조던을 롤모델로 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낙천성의 방패'의 근원이 어디인지 찾기 위해 그의 생애를 더욱 깊게 파헤친다. 그러다 그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어종의 분류를 통해 윤리적 인간상을 분류하고자 했던 조던의 연구는 '우생학(eugenics)'으로 진화한다. 우생학은 능력과 품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도태되었기 때문에 '그른' 사람들이라고 단정 짓고, 더 '옳은' 사회와 집단으로 나아가기 위한 극단적인 대책을 제시한다. '그른' 사람들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과 시설로의 수용을 통해 부도덕한 유전자를 역사에서 차단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이 사고방식이 당시에는 배운 사람들의 마땅히 옳은 말이었고, 일반 대중들의 사회에 만연하기도 했다. 조던을 희망의 동아줄로 생각하던 작가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작가를 구해준 건 조던이 그렇게도 몰두하던 물고기였다.


    최근에 밝혀진 연구에 따르면 물고기, 즉 어류라는 종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높은 산에 사는 산양과 토끼가 보기에 비슷한 흰 털이 있다고 해서 같은 종으로 분류할 수 없듯, 우리가 물고기라고 부르던 종은 물이라는 환경에 비슷하게 적응하고 진화한 결과가 외관상 비슷할 뿐이지, 실제로는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것이 점점 학계의 헤게모니가 되고 있다. 조던이 모든 걸 바쳐 바라보던 목표는 전제부터 어긋나 있었다.


    작가는 물고기를 통해 자연의 섭리는 우리가 익숙하고 친근한 직관이나 경험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조던이 오르던 곧은 사다리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고, 조던은 그 사다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뒀기에 종국에는 잔혹한 이론의 주창자가 된 것이다. 작가는 우리는 늘 틀려왔고, 앞으로도 틀릴 것이라 이야기한다. 절망도 희망도 우리는 아무것도 판단하고 확언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무교인이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 세상은 우연의 산물이고, 나 역시 표현된 가능성일 뿐이라는 사실은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 가능성의 표현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더 선할 것도, 나을 것도 없다는 명제는 실로 자연스럽다. 더 좁게는 사람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는 행위가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고 평가하여 행동하는 것을 논리적이라고 느끼고, 사뭇 '올바른' 사고 과정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의 직관과 경험은 이 확신이 더욱 진해지도록 달여준다. 이 확신에 담겨 절여진 우리의 뇌에 가장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관점이 파괴적으로 다가온다. 바로 '우리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라는 관점이다.


    이 책의 이러한 관점은 염세적이거나 회의적인 세계관으로 전도될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작가는 무의미함을 무가치함으로 넘겨짚지 않았다. 혼란의 폭풍 속에서 곧게 오르는 조던이 빛났던 이유는 그의 사다리 때문이 아니라, 굳세게 오르는 그의 생동감에 있었다. 우리는 부족하기에, 무언가에 기대어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기대는 대상이 어쩌면, 아니 다분히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채 그저 손짓을 더욱 힘차게 할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놓친다는 느낌보다, "아직 내가 이름도 모르는 존재들"이 너무 많음을 새길 수 있었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관점과 모른다는 것들이 주는 두려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고 남이 가진 것과 공통된 무의미함을 기조로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듯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작가는 그 뜻을 이 문장에 담아냈다.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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