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어떤 사람과 나누었던 추억을 다른 장면과 섞인 상태로 기억하기도 하고, 다녀왔던 여행지도 다시 찾아가서 마주하기 전까지 처음 간다는 설렘을 갖기도 한다. 그럼에도 예전의 일상의 단편들이 짧은 장면으로 문득 떠오르곤 한다.
초등학교 때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는 '알림장'을 쓰던 일이다. 담임선생님께서 점심시간이나 종례시간에 커다란 TV 화면을 통해 '00년 0월 0일'로 시작해서 시간표와 준비물 등 잊지 않아야 하는 일들을 띄워주시면, 한 자 한 자 글씨 연습하듯 받아 적던 장면이다. 떠오른 이 장면이 몇 학년 때의 기억인지, 그때 담임선생님이나 짝꿍은 누구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열심히 받아 적어 책가방에 넣어놓고는 당부하신 준비물을 두고 오는 일이 많았던 건 기억난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알림장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은 (알람이랑 알림을 섞어 쓰시는 몇 분 덕분에 '알림'이란 단어는 어색하지 않다) 그때의 나와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연속적인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는 건, 아직도 나는 손으로 적어놓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선생님께서 적어주시는 내용을 알림장에 받아 적었지만 지금은 누가 알려주는 내용이 아닌 내 생각과 다짐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적어낸다는 정도다.
적을 수 있는 수단은 점점 다양해져서 일기나 서평처럼 종이 위에 적어낼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통해 표현하기도 하고 SNS, 브런치 게시글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서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글들이 알림장보다 능동적으로 내가 적어내는 '다짐장'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나는 여전히 알림장이나 다짐장에 약속한 내용을 잊은 철없는 아이처럼 행동하고 있다. 나와 달리 가까운 동기들의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심지가 느껴지는 '다짐'들을 SNS를 통해 엿보다 보면, 물렁한 내 모습이 초라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지막 장에 가까워진 일기장을 보고, 예전에 썼던 일기들을 되돌아봤다. 거기에는 나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성숙한 내가 겪은 고민과 그 문답이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 문답들을 따라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날의 페이지까지 이어졌다. 일기를 읽으면서 그날의 나는 예전의 나를 위로하고 있었고, 일기 속 예전의 나는 그날의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나를 공유하는 서로 다른 의식들이 서로의 흔적을 찾고 반가움을 느끼는 듯한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래서일까, 물렁하고 초라한 오늘의 내 모습이라도 다짐만은 단단히 적어내자고 생각했다. 사소한 노랫말에 뭉그러져 하루 종일 싱숭생숭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초연한 장부가 되어 두 발로 굳게 삶을 걸어 나가리라 써 놓은 글과 부끄러울 만큼 대비되지만, 그럼에도 이 찌질한 다짐장을 오늘도 선언하듯 써내며 그 간극을 넓히는 이유는 겨우 다짐만이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다짐하는 내가 나중의 나를 응원하고, 나중의 내가 오늘의 다짐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어느 다짐장에라도 오늘 나의 다짐을 기록해야 한다. 지금 여기에는 오늘이 있고, 내일이 거기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사과나무를 심는 의지처럼 다짐장에 글씨를 뿌려야 한다. 내 삶을 내 보폭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지금에 집중하고 정리하는 나의 다짐은 오늘 아무런 결과를 이끌지 못한 의미 없는 과정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결과 없음'으로 성급히 괄시하지 않고 '과정 진행 중'으로 느긋하게 바라보는 여유를 통해 찌질한 오늘의 나를 언젠가의 내가 용서할 여지를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