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뜨겁다. 특히 그가 마틴 스콜세이지를 극찬하며 언급한 스콜세이지 감독의 명언("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은 봉감독이 수상소감을 위해 만들어 낸 소감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나온 진심임이 들어나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봉감독의 수상소감은 단순히 따뜻한 마음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 고도의 화법이라는 생각을 한다. "봉준호의 big picture" 라는 말이 일종의 관용구가 되어 버린 것 같이 이 철저한 계산에 의한 노장 감독에 대한 극찬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화법은 어쩌면 그가 평생을 살아 온 삶과 영화와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를 담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준비된 감독일지도 모른다. 그의 화법이 어떤 현상과 맞물려 있는지 사족을 달아 본다.
"마블은 시네마가 아니다"
사실 스콜세이지 감독은 최근 아이리쉬맨 시사회에서 언급한 이 말 한 마디로 헐리우드 세계에 꼰대가 되어 버린 상황이다. 세월의 변화가 감당이 안 되는 것일까... 헐리우드의 흥행과 예술성을 담보해 온 마틴 스콜세이지는 그의 영화 "아이리쉬 맨" 제작 스폰서를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영화 "사일런스"가 흥행에 실패하면서(실패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이제 더 이상 어쩌면 스콜세이지식의 영화 스토리텔링이 마블에 마음을 빼앗긴 관객들에게 구태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일지도) 기성 제작사들로부터 사실상 외면 당한 것이다. 노장으로서 이에 발끈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블이라는 먹이감이 충분한 헐리우드 제작사들.... 그들에 대해 스콜세이지 감독은 "감히 나를 외면해! 그깟 마블을 가지고!" 라는 사적인 감정을 품었을 수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 후 반 부터 2000년대로 넘어 오면서 헐리우드는 상업영화만 제작한다는 오명을 씻겨내고 흥행 뿐 아닌 예술성을 끌어 올리려는 노력을 해 왔다. 스콜세이지 감독을 포함하여 많은 영화인들의 영화제작환경의 변화를 가져 온 노력이 있었는데 마블시리즈가 상업적 논리에 천착하는 제작환경을 도래시키는 것은 아닌지 사실 우려가 깊어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것에 대한 노장 감독의 따끔한 비판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마블은 시네마가 아니다" 라는 발언을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암튼... 헐리우드 영화제작산업 scene에서 스콜세이지는 원치않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부당하기까지 하게 그는 꼰대로 비판을 받았다. 이는 헐리우드가 지금 세대간 긴장이 높아진 상황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헐리우드의 분위기에 봉준호가 기름을 끼얹듯 캠패인 기간동안 여러 인터뷰 중에서 "아카데미는 로컬"이라는 발언을 했고 이는 아카데미의 변화를 희망하는 이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배경에 의하면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한 주요상을 휩쓴 것에 영화 그 자체 이상으로 "헐리우드는 로컬"이라는 수사가 어느정도 상당부분에 있어서 표심을 흔든 것은 사실로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약에 봉감독이 수상소감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을 알리게 되어 기쁘다느니, 모든 영화제 '도장깨기'를 이루어 우리는 최배달의 정신을 가진 영화인이라는 식의 수상소감을 말했다면 그의 업적에 대한 박수는 받았겠지만 수상소감을 인해 기생충과 한국영화는 "외부의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상의 명칭을 바꾼 의도에 맞추어 봉감독은 수상소감을 통해 영화인으로서 봉준호 자신과 한국영화를 헐리우드 영화제작 공동체 안으로 끌어 드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봉준호의 스콜세이지 언급은 앞서서 언급한대로 헐리우드의 험악한 상황에 화해자를 자처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봉감독은 스콜세이지 감독의 영화감독 한 개인으로서 작품활동의 기력을 펼치고 풍미해 온 시절과 그의 영화와 스토리가 현 마블 시리즈의 상업성에 밀려(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아서가 아닌 균형의 취지에서) 삭제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또한 그런 심정의 표현으로 우직하게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자신의 뮤즈인 배우들을 총동원시켜 제작한 스콜세이지의 "아이리쉬 맨"의 영화사적 의미를 들추어내 준 것이다.
스콜세이지는 늘 파격적인 주제를 작품을 통해 다루어 온 변혁의 정신이 충만하면서 영혼이 맑은 감독이다. 그는 영화계의 진보를 막아 세우려는 것이 아닌 진정성 있는 변화와 진보를 요청했던 것이라고 본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영화 "아이리쉬 맨"의 제작지원을 넷플릭스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그가 만약 수구적인 의식의 사람이라면 결코 넷플릭스 제작지원을 요청하거나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칸에서 넷플릭스의 제작지원으로 제작된 봉감독의 "옥자"는 제작과 상영의 새로운 모드를 인하여 칸에서 어려움을 겪었었다. 두 사람에게는 뭔지 모를 동병상련 또는 전우애의 감성이 교감했을 듯하다). 봉감독이 말한대로 원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서려는 헐리우드 영화계의 시도와 요구는 이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봉감독의 평화의 화법과 의미있는 소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헐리우드의 중심주제로 봉감독은 "평화의 침입자" 또는 "불편하지만 환대할 수밖에 없는 귀인"이 된 것이다.
평화의 화법이 이긴다.
봉준호의 영화 뿐 아니라 캠패인 기간동안 그의 인터뷰 내용이 문화를 초월한 어록이 된 것에는 영화계라는 지엽적인 세계의 현상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모든 영역에서는 헐리우드가 가지고 있는 긴장과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긴장과 분열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과도기적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종착지가 있는 여정에 불구하다.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혐오"라는 증상이다. 긴장과 분열로 혐오와 다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현실직시와 정직한 평가등등... 그런데 이런 성찰적인 증상이 아닌 혐오라는 증상이 나타나기가 훨씬 쉬운 것이 인간이다.
봉준호의 어록 중에서 수상소감에 스콜세이지 감독을 언급한 그 내용은 그의 캠패인 기간 중에 남긴 모든 말의 종착지인 샘이다. 이와같이 모든 영역에서 "평화의 침입자"가 나타나 평화의 화법으로 혐오라는 전염병을 치유해 주길 소원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의지이다. 헐리우드 스스로가 이미 가지고 있었던 변화에 대한 의지와 소망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