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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노 Dec 11. 2024

빈센트 반 고흐의 시선

보다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채화를 배울 때, 처음에 사과 한 개를 그렸다가 6개, 12개로 점점 늘려가면서 그린적이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릴 대상을 뚫어지게 보는, 평소에 하지 않는 경험을 하고 <본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존 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데생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해준다는 것이다. 눈앞에 놓인 것을 우리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데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성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 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 .......... 풍경의 진정한 소유는 그 요소들을 살피고 그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눈만 뜨면 아름다움을 잘 볼 수 있고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의도적으로 파악하느냐에 달려있다. 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무리 솜씨가 형편없다 하더라도 행위를 통해서 대상의 생김새에 대한 선명치 않은 감각으로부터 구성요소와 특색에 대한 정확한 의식으로 빠르게 넘어가게 된다. <여행의 기술, 알랭드보통>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존 러스킨이라는 180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미술학 교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 책, 저 책에  수없이 많은 글이 인용되어 무지한 나를 일깨워 주었다.

 처음 그림을 배우면서 선생님이 과제를 주시면 참으로 난감했다. 난감한 채로 꾸역꾸역 그려나가면 도화지가 채워지고, 열 명정도가 함께 같은 그림을 그려도 다른 결과가 나와 매우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비록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하는 과정이었지만, 그때 정말 그리려는 대상을 뚫어지게 봤다. 그렇다. 나는 수채화를 그리면서 존 러스킨의 <보는 법>을 배웠다. 똑같은 사물을 봐도 우리 모두는 다 다르게 지각한다.   보고, 본 것을 기억하고, 기억한 것을 그렸다. 시선의 시선, 생각의 생각. 사물을 보고 형태를 생각하고 좌절하고 그리고를 반복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 , 스케치를 하면서 채색을 하기 전에는 < 이 그림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늘 되뇌었다. 더뎠지만 아주 조금씩 나아졌다. 달팽이의 꿈이었다.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프랑스 북부에 살다가 남부의 아를이라는 마을로 간 고흐에게 비친 새로운 풍경에 대한 글을 읽고 나는 놀라 자빠졌다. 고흐의 그림들은 세상을 평범하게 보지 않는 비범한 시선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화가의 뇌가 궁금했다.


반 고흐는 동생에게 말했다 "사이프러스가 줄곧 내 생각을 사로잡고 있어. 지금까지 본 방식으로 그린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놀라워. 사이프러스는 그 선이나 비례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만큼이나 아름다워. 그리고 그 녹색에는 아주 독특한 특질이 있어. 마치 해가 내리쬐는 풍경에 검정을 흩뿌려놓은 것 같은데 아주 흥미로운 검은 색조라고 할 수 있어. 정확하게 그려내기가 아주 어렵지."

......반 고흐는 누이에게 편지를 보냈다."이곳의 색깔은 미묘해. 녹색 잎이 싱싱할 때는 선명한 녹색이야. 북부에서는 보기 힘든 녹색이지. 잎이 타들어가고 먼지가 끼었을 때도 풍경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아. 그때는 또 다양한 색조의 황금빛, 분홍색을 띤 황금빛....., 그리고 이 황금빛은 파란색과 결합되는데, 이 파란색을 또 물의 짙은 진보라색으로부터 물망초의 파란색, 코발트색, 특별히 맑고 밝은 파란색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채로워."

......"밤은 낮보다 색깔이 훨씬 더 풍부해....., 잘 보면 어떤 별들은 레몬빛 노란색이고, 이떤 별들은 분홍색, 또는 녹색, 파란색, 물망초색으로 빛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내가 굳이 나서지 않는다 해도, 그냥 짙은 남색 표면 위에 하얀 점들만 찍어놓은 것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은 분명하잖아."<여행의 기술, 알랭드보통>


 언젠가 측백나무의 소용돌이치는 것 같은 나무의 형태를 보고 고흐의 사이프러스 그림이 떠올랐고 아하! 한 적이 있다. 알랭드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술가는 우리에게 그냥 지나칠 것들을 새롭게 보게 하는 눈을 갖게 한다. 연꽃은 어떤가. 그 기하학적 무늬에 감탄한다. 오래전 읽었던 이 책은 <말 그림(스케치를 말로 표현하기)>, <내 방 여행하기> 등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게 하고, 새로운 표현방식을 제시해 주어 가까이 두고 반복적으로 읽는 나의 인생 책이다.


 형편없는 그림이었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물감이 파브리아노지에 닿는 느낌이 좋았고 형태가 만들어지는 게 신기했다. 무엇보다 그림 그리는 시간은  <몰입>의 시간이었다. 존 러스킨의 말처럼 잘 그리는 능력보다 그 모든 과정으로부터 내가 사물을 보는 방식을 조금씩 터득했던 것 같다.


알랭드 보통의 날카로운 시선이 존 러스킨의 생각과 반 고흐의 시선을 불러왔고 그들로부터 나의 시선도 확장되었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예술을 접해야 하는 이유다.


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보라, 본다는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내이름은 빨강,오르한 파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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