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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예연 Mar 22. 2022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서술해주세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화제의 드라마 ‘그 해 우리는’에는 상반된 커리어 패스를 가진 두 인물이 나온다. 여자 주인공인 연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그야말로 전력 질주한다. 고등학교 전교 1등에, 대학생 때는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수재로. 그녀는 결국 취업에 성공해 회사에서 인정받는 팀장으로 살아간다.



반면 남자 주인공인 웅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걱정도 딱히 없는 인물이다. 고등학교 전교 꼴등에, 그저 햇빛 아래, 그늘에 누워있는 것이 제일 좋은 인물. 이런 그에게 다행히도 재능이 있었으니, 바로 그림실력. 웅이는 타고난 그림 실력을 갈고닦아 성공한 그림작가가 된다.



겉으로 보기엔 매우 다른 것 같은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그들의 커리어 패스가 꽤 외길이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목표를 보며 달려가는 연수와, 큰 고민은 없었지만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아 성공한 웅이. 그들을 보며, 나의 진로 선택 과정도 이랬다면 좀 덜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피아노를 좋아하니까 피아니스트. 책을 좋아하니까 작가. 좋아하는 ,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하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 꿈들은 논외로 하고, 진지하게 어떤 직업을 가질까? 하는 고민의 시작은 20 무렵이었다. 지원한 대학에 모두 떨어졌고, 독학 재수를 결심했다. 혼자서도 잘하는 학생이어서가 아니라, 재수 종합반이나 학원비는 너무 비쌌고, 혼자 열심히 해본 적이 없다는 것에 대한 후회가 남았다. 의지만 있다면  되는  없다고 생각했던 20살의 나는 그렇게 1년간 인터넷 강의를 듣고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했다.



그렇게 1년간 공부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는데, 바로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입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성인으로서 첫출발을 하는 20살, 그 첫 성취를 얻는 과정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처럼 외롭게 공부할 학생들, 혹은 나보다 더 힘들게 공부할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대학에 가면 어린 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그 힘듦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래서 나의 진로는 ‘교육봉사’로 시작되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는 이 행위를 사람들이 왜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수업을 매번 준비해 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문득 부담으로 다가오다가도, 잘 따라와 주는 아이들을 보면 더 열심히 준비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졌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지만, 비단 성적이 늘지 않아도 그저 조건 없이 나를 반겨주고 좋아해 주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웠다. 봉사의 수혜자는 아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그렇게 한 학기의 봉사가 끝날 무렵, 어느새 난 다음 학기의 봉사도 신청하고 있었다.



그렇게 봉사로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열정이 있었기에 할 때마다 설레었고, 해도 해도 재밌기에 이것이라면 업으로 삼아도 되겠다 생각했던 날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난 다시 한번 경로를 수정하게 되었다.






이것이 마지막 항로가 될지, 아니면 잠시 쉬다 가는 항구가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현재로서는 꽤 긴 항해가 될 것 같은 이 여정을 기록하고자 글을 쓴다.


이것이 내 마지막 항로 수정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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