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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킹 Apr 14. 2022

로스쿨의 수험생이라는 현실

[로스쿨 생활기 #6] 엄청난 공부량에 힘들지만 사람들이 좋다.


이제 다음 주가 중간고사다. 이번에 결국 한 과목만 남기고 나머지는 중간고사를 보지 않거나 보더라도 성적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남은 한 과목이 형법이다. 보통 로스쿨 1학년 1학기에는 민법 위주로 공부하는데, 민법 과목은 중간고사를 안치고 딱 한 과목인 형법만 시험을 치게 된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누군가 천하제일 형법대전이 될 것 같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이다. 또 다들 형법은 예습이 많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 어쩌다 보니 이번 중간고사는 정말 정정당당한 형법대전이 되게 생겼다.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고 나는 참 부족하구나


나 진짜 법이 어렵다. 정확히는 너무 많다.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 다들 척척 해내는 걸 보면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 초조하다. 멘토라고 내 한 학년 선배와 연결해줘서 따로 밥도 먹고 자료도 받았는데, 정리된 자료를 보고 이건 인간의 작품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운이 좋게도 실력이 좋은 선배를 만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칼 같이 개념과 관련 기출과 모법답안까지 정리해 놓은 자료를 보니 그저 한 학년 선배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심지어 동기들과 비교해봐도 다들 어찌나 그렇게 잘 아는지 내가 부진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암기력이 안 좋은 편이다. 실제로 그래서 고등학생 때 이과를 선택하기도 했고, 수학이 아니었으면 좋은 대학을 가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게 암기 그 자체인 법 공부를 하라니 이런 상황에 놓이게 만든 내 자신이 답답하다. 물론 법 공부 자체는 매력이 있어서 후회가 되지는 않지만 암기할 양이 정말 많아서, 이 정도 암기량을 익숙하게 경험하지 못한 이과생에게는 난관이다. 언젠가 익숙해질 수 있을까. 일단 이번 중간고사만 지나가면 내 공부법을 좀 정리해서 우등생인 내 멘토님한테 이게 효율적인 방식이 맞는지 도움을 구해야겠다.


이 와중에도 친목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로스쿨에 지금 내 학년이 130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친목모임이 형성되고 있다. 대학 동문회, 스터디, 학회 등등의 방식으로 서로 마음 맞는 사람을 찾아간다. 천상 아싸 체질이 나 조차도 인사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니 이 사람들의 단합력은 엄청난 편이다. 애초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서로 돕는 상황이라 더 끈끈한 것도 있지만, 지방이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취를 하는 탓에 모든 끼니를 함께 해결한다. 나는 본가에서 다녀서 그들의 모임에 소홀한 것은 있지만 중간고사가 끝나면 그들과 함께하는 정식 저녁 약속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잘 어울리지 않고 점심을 굶고 항상 집에서 어머니와 저녁을 먹으려고 하지만, 사실 나도 노는 거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다. 일부러 나 자신을 집 좋아하는 사람을 포지셔닝하고 있지만, 지난날 대학 때와 회사 다닐 때 매일 같이 술 마시고 어울려 논 것을 생각하며 지금 자제 중이다. 지금 로스쿨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살아온 배경이 비슷해서인지 이렇게 이야기가 잘 통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하고 친해지기 시작하면 내가 과연 변호사 시험을 잘 준비할 수 있을지 두려워서 친해지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고 노력 중이다.


회사 사람과 다른 학생들의 순수함이 좋다.


로스쿨의 체계를 이해하기 힘들고 학생들이 너무 잘해서 내가 많은 압박을 느끼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가 좋다. 회사를 3년 간 다니면서 나는 많이 힘들었다. 일도 그렇지만 항상 곤두서 있고 스트레스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하려니 나도 심적으로 고통받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 로스쿨은 우선 또래가 많아서 좋고,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게 못돼먹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여기 로스쿨만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협동적이라 일단 내가 보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참 좋다. 물론 교수님들이 다소 어려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 조차도 학생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의미가 있다.




이제 서서히 회사 생활에서 벗어난 즐거움에서 수험생이라는 현실을 알아가고 있다. 내가 많이 부족한 위치에 있는 것도 잘 알겠다. 중간고사라는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은 꺼야겠지만, 그 이후에 3년 뒤 변호사 시험을 위한 방향성과 공부법을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겠다. 치열해야 하는 현실이 체감돼 눈물이 살짝 앞을 가리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이상을 향해 가는 이 과정이 의미가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즐거운 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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