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배우는 삶
“그래, 하고 싶은 거 다 해.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지. 농사라.. 와.. 생각만 해도 너무 낭만적이잖아.”라고 말하던 콩깍지 제대로 낀 철부지 도시 아가씨는 해맑게 그와의 결혼생활을 꿈꾸었다.
전원생활 좋다. 텃밭 가꾸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거 남들은 일부러 하는 거잖아. 난 그런 곳으로 시집을 간다니 마냥 신났다. 농사를 짓는다고 했지 전원생활의 낭만을 말한 적 없는 그인데, 난 그저 내 좋은 대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렸다. 농사 곧 전원생활이라고 누가 그랬어? 그땐 어쩜 그리 몰랐는지 이렇게까지 좋아해야 그 사람과 결혼을 하나보다.
예전에 싸이월드가 유행일 때 잠시 주말 농장을 다녔었다. 물론 내가 하는 일 때문에 다녔던 거지만 오이와 가지, 방울토마토까지 심어 놓고는 주말마다 가서 돌보고 쉬다 오던 것이 참 좋아 사진을 찍어 올리고, 나중에 콩농사지으며 살아야지라고 글을 썼던 것이 말이 씨가 되었나? 여행 말고는 청주 밑으로는 갈 일도 지인도 없는 나는 군산에 농사를 짓겠다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것도 인천 섬에 위치한 직장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그때 나는 근무 연차가 좀 되어 쉬고 싶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사직서는 반려되었고, 남편은 그 시점에 신입직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생활시설이다 보니 이용자분들이 생활하는 곳 곧 우리에게는 근무지가 군데군데 있었는데 바로 옆 가정에 그 사람이 배치되었다. 잘 어울린다며 만나보라는 직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웃고 넘겼는데, 자꾸 마주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 보니 정이 들었나? 원 전체에서 휴무가 같은 직원은 우리 둘 뿐. 같이 나갔다 따로 들어오긴 했지만 쉬고 싶었던 선배직원과 마음을 잡지 못했던 신입직원은 그렇게 서로가 의지가 되었다.
직원 교육 차 뭍에 나갔다가 강풍으로 배를 타지 못해서 원에 들어오지 못하고 다음날 들어갔더니 “아니, 외박을 하고 그래요?”라고 묻는 그의 말이 너무 웃겼다. 안 그래도 잘 웃는 나의 모습을 참 좋아하는 그 사람. 우리의 사내비밀연애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사귄다는 소식을 생략하고 결혼을 먼저 알렸다. 긴가민가하던 동료들은 기뻐하고 축하해 주면서도 놀란 반응이었다. 아니, 왜? 농사짓는다고 내려간다는 사람하고 결혼을? 하면서 속도위반일 거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냈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제주도.”“그 거봐! 수상하다니까.”
우리 직장은 섬에 있는 장애인생활시설로 그 당시 2주에 한번 휴무를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일하느라 피곤해서 휴무를 나오면 잠자기 바빴던 그때 결혼준비까지 하느라 신혼여행은 멀리 갈 생각을 못한 것뿐이었다. 난 갑자기 속도위반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는 뭐 그런 사람처럼 만들어져 버렸지만, 내가 아니면 그만이니까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휴무 때 농번기 시기이면 남편은 농사일을 돕고 오느라 까칠한 수염을 달고 피곤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남자의 수염이 저렇게 멋있었나? 연애경험이 별로 없는 순진한 나였다.
“엄마, 그 사람은 수염도 참 멋있더라.”했다가 기가 막힌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시선이 따가웠다. “개도 무서워하는 애가 시골 농사짓는 대로 시집을 간다고?”시골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뭐 그렇게 다를까. 주변의 우려와 걱정은 계속되었다.
그가 무슨 일을 하든 돈이 있던 없던 그의 성실함을 포함해 모든 것이 좋았던 나는 그때 청각의 기능을 상실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살면 참 좋을 텐데 우리 부부는 가끔 결혼 전을 떠올리며 웃곤 한다. 그런 때가 있었지. 너무나도 과거형이지만 그래도 행복한 기억이 나쁜 기억보다는 나으니까 그렇다 치자.
선배직원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농사는 힘들고, 돈도 안 되는 거 알고 결정한 거야? 농사짓는다는 거 연애할 때 미리 말했어? 아니면 결혼 결정하고 말한 거야? 아이고..”
난 알아도 진작에 알았다. 돈은 벌면 되지 뭐가 문제지? 월급 받는 것에 완전히 익숙한 나는 적금도 꼬박꼬박 넣었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내가 쓸 만큼은 쓰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거의 없이 살았다. 결혼을 하면 직장 생활을 할지 어떨지 계획도 없는 채로 내가 살아온 대로 여유 있게 살 거라는 너무 앞뒤가 안 맞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혼 5개월 후 남편은 가을 일을 시작으로 농사를 도우면서 배우려고 퇴사를 했다. 그때 나는 임신 3개월이었다. 직장 상사는 주말 부부도 괜찮다며 퇴사를 말렸다. 아마 직장이 섬이어서 직원이 귀해서 그렇게 말씀하셨겠지만, 나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휴무 때마다 시댁에 가면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가을에는 노랗게 익은 벼들이 가득했고, 겨울에는 벼를 다 베고 보리를 간 논이 푸르고 예뻤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농사도 시골도 사랑하는 그런 새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