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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r 10. 2024

나를 수식하는 단어들

평범한 나를 왜 유별나다 말할까

30대, 비혼주의자,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인스타툰 작가. 

그리고 부산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캥거루족. 

이것이 나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몇 년 전 나는 해운대바다에서 청소 노동자로 새벽반에 일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캐릭터 문구 작가의 꿈과 그림의 꿈도 모조리 접은 채, 그저 가족의 생계를 같이 책임지기 위해 돈벌이가 필요했다. 출근 첫날, 나 혼자 이외에는 전부 어머니뻘인 어르신들 사이에 껴서 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젊은 나이 때문에 튀게 되었다. 


첫날, 청소 시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자 어르신들 삼삼오오 내 주변에 모여들어 호구 조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짧은 숏컷 머리 때문인지 나이보다 좀 더 어리게 사람들이 나를 인식하곤 했다. 어르신들은 나를 학생이라 부르며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결혼은 했는지, 어떤 직업이었는지 쏟아지는 질문 속에 솔직히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청소 노동은 끝날 때까지 팀 작업이기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네, 나이는 30대고, 결혼은 안 했고, 저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결혼을 안 했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왜 결혼은 안 했는지, 남자친구는 없는지 등. 나를 유별나다는 식으로 질문이 폭격하기 시작했다. 

"저는 연애에 관심이 없고, 가족과 함께 살아서 괜찮아요." 

결혼을 안 하면 나중에 외로워 힘들다, 여자는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등등. 거짓말하기 싫어서 솔직하게 비혼주의라 밝히면 사람들은 나를 가르치기 위해 훈수두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유별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니 결혼 안 했다고? 그럼 함부로 대해도 괜찮제?"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유별난 사람을 넘어 함부로 대해도 되는 비성숙한 사람이 되곤 한다. 이런 질문하는 사람이 훨씬 비성숙하다는 자각을 못한 것이 늘 안타까울 뿐이다. 주변 어르신들은 껄껄 웃는다. 살짝 야야~ 그러지 마라, 말리는 몇 사람도 그저 즐거워 보인다. 그리고는 남자한테 상처받았나 보다는 저들끼리 이상한 추론을 하며 이 이야기의 결론을 당사자인 내가 아닌 입방아에 올리는 어르신들끼리 마무리하곤 한다. 그러든가 말든가, 이젠 유별나지 않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반박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비혼은 비성숙한 사람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워봐야만 사람이 된다면, 이 말을 똑같이 불임 부부에게도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각자의 경험과 자기 성찰로 인해 성숙하는 것이지, 보편적인 삶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1인 가구가 늘어가고, 결혼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이혼하는 비율이 더 늘고 있음에도 '결혼해서 애 낳는 삶'이 아직까지는 보편적인 삶의 흐름인 것이다.


30대 여성, 비혼주의자인 나는 언제쯤 여야 유별나지 않고 보편적인 사람이 되는 걸까. 나를 수식하는 단어들이 평범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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