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5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지금
나는 19년부터 21년까지 약 3년 간 지방직 공무원으로 재직했었다.
9급으로 시작했지만, 7급 준비기간까지 포함하면 약 5년이라는 시간을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투자했다. 만 나이 기준으로 30살인데, 5년을 투자했다는 것은 아직 내 인생에서 그 어떤 일보다 오래 했던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공무원을 그만둘 때 심경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나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의구심은 당연히 들었고, 향후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그 무엇보다도 거대했다.
하지만 공무원을 그만두고 2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을 때조차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왜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고도 후회하지 않았을까?'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의 브런치를 시작해보고 싶다.
모든 일에는 적성이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나는 지독하게도 공무원 일에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일을 잘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 인정도 받았고, 적응도 괜찮게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유를 찾았지만, 나 스스로를 설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떨어지고, 책임감보다는 스트레스만 늘어갔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희생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만큼 이타적이고, 신념이 가득 찬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해득실을 따지고자 하니 일에 대한 불만만 생기고, 직업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가 어려웠다.
이 점은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서 했던 대부분의 일과 비교해도 그렇다. 그 간 내가 해왔던 일들은 직업에 대한 대내외적 인식이나 안정성이라는 면에서는 공무원보다 아쉬웠을지 모르나, 직무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았다.
공무원 조직은 성과의 개념이 모호한 조직이다. 업무적 특성도 그러하고, 직업적 특성 또한 그러하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성과를 수치화하여 개인 단위로 평가한다는 일이 참 어렵다.
문제는 이 성과에 대한 측정과 평가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이것이 동기부여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쉽지 않다. 즉, 사명감이나 공익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동기부여의 원천을 만든다는 일 자체가 어려운 셈이다.
물론, 승진과 성과급이라는 수단이 있지만, 성과 평가 기준의 모호함 때문에 상위 5% 혹은 하위 5%만 이 평가에 좌우될 뿐,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영향력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성과에 대한 보상, 즉, 일을 잘한다고 해서 개인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개인의 욕심이 직무에 충실하는 동기로 작용하기가 어렵다.
내가 했던 일반 행정직 공무원은 경력이 되지 않는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중간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와도, 유의미한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10년 동안 지방직 공무원을 하고 퇴직하고, 다른 길을 찾는다면, 지난 10년에 대한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번 시작하면 발을 빼기가 어려운 것이고, 공무원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는 이점이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공무원을 30년이나 할 자신이 없었다. 직무적인 문제는 뒤로 하고서도, 30년이라는 세월을 공익을 위해 헌신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중간에 빠져나갈 수는 없으니,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직무에서 겪은 스트레스, 갖은 민원, 적은 소득 등 다양한 이유도 있지만, 위의 3가지가 가장 큰 이유였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내가 대단한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무원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세상을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공무원을 그만둘 때, 내가 큰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공무원을 그만둔다고 해서, 나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더 힘들고 치열한 세상이 올 수도 있지만, 그게 나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공무원을 그만두는 2,30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퇴직자의 50%가 2,30대라는 뉴스였는데, 솔직히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왜 그만둘 수밖에 없는지는 이해되며, 그들의 선택과 도전에 응원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서, 지난 2년 동안 여러 사유로 총 18개국을 거쳤다. 걔 중에는 단순 여행도 있고, 석사 공부를 위해 유학도 했으며, 현재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유럽도 포함되어 있다.
제일 먼저 했던 일은 휴식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름 많은 고민을 하고 퇴사했다고 생각했으나, 더 시간이 많아지면서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다만,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한 가지는 변함없이 확실했고, 그 도전을 위해 영어를 먼저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어학연수 이후에는 나의 커리어를 위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어리지 않은 나이에 석사 과정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보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던 탓에,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석사 과정을 졸업하기 몇 달 전, 유럽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나는 고민 끝에 도전해 보기로 결정했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2년이 조금 못 된 시점에, 다시 취업의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유럽 생활이다. 2023년도에 유럽에 와서 2024년 새해를 맞이하기도 했으며, 작년 한 해 동안 총 10개국을 방문 또는 거주했었다는 사실이 새롭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이 그립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한국에서의 생활보다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유럽 인접국가들을 여행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만족을 준다. 2023년에는 여행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헝가리를 다녀왔는데, 나라마다 다른 특색을 보이면서도, 유사한 점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다.
이제 서른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계속 발전하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첫 단계로 브런치를 통해 나의 생각과 경험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