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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든 Jan 13. 2024

30대, 다시 백수가 되어버렸다.

서른 살,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코로나가 끝나기도 전이던, 21년도에 다시 백수가 되었다.

꿈 많은 백수라는 변명을 붙여보지만,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다.


초조해진다.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도,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를 먹여 살려주던 직업을 포기했으니, 무언가 다른 수단이 있어야 했다.


공무원을 그만 둘 당시 나에게 남은 것은, '서울 중상위권 대학 경영학과 졸업과 공무원 약 3년 재직', 두 가지밖에 없었다. 나이 서른에 신규로 일반 사기업에 들어가기엔, 말 그대로 곤란한 스펙이었다.


물론, 나도 생각 없이 공무원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석사 과정에 진학해서, 전문성을 갖추고, 그 전문성을 토대로 더 나은 경력을 이어가겠다는 것이 본래 꿈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영향으로 계획이 조금 틀어지면서, 내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이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다시 한번 찬찬히 돌아보니, 내가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될 것 같지가 않다. MBA 과정에 진학하면, 내가 원하던 전문성과 나만의 커리어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여유를 가지고 이것저것 따져보니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나는 공무원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뭐든 부여잡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고민 끝에, 계획을 전반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생겨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허술한 준비성을 원망할 수밖에 없으니까.


출처: Unsplash


나는 이미 늦은 나이니까. 이미 한 번 다른 길을 다녀온 사람으로서, 또다시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은 정말 치명적인 선택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했다. 운 좋게 한 번 더 주어진 기회라 생각하고, 여러 진로를 놓고, 하나하나 찬찬히 비교해 가며 고민해 봤다.


'그런데, 내가 무언가를 할 수는 있을까?'


매일을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뭘 해도 나보다 어리고, 더 능력 많은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내가 지금부터 노력해도 1, 2년 안에는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나의 다른 경쟁자들은 이미 학생 때부터 수년간 열심히 해오지 않았을까.


이런 불안함이 가득해지면, 그날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내가 지금 하는 노력이, 또는 앞으로 해보려는 것들이, 나의 마지막 발악이 될 것만 같아서 해야 할 일들을 외면하고 싶어졌다. 현실을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달려가야 할 방향을 모르겠다.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라고 고민했다.


매일 같은 고민 속에,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한 가지는 명확했다. 공무원을 그만둘 때도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부분이고, 앞으로 최소 5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단순하게 직장에 다니는 것만으로는 내 인생을 전부 책임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인정받고 싶었고, 무언가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전문성,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내가 즐기고,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우선은 컴퓨터를 쓰는 일이기를 바랐고, 그와 관련된 어떤 기술을 통해 내가 전문성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랐다.


이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코딩이었지만, 중학교 때까지 코딩을 했던 나로서는, 지금 와서 다시 시작하기엔 그 벽이 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나에게, '코딩'은 정말 딱 맞는 일처럼 보였으나, 해당 분야에서 내가 살아남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코딩 분야를 포기했던 것도, 내 능력의 한계를 느껴서였기에, 더 쉽지 않았다.


많이 초조했다. 퇴사 후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누군가 퇴사 후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어볼까 겁이 났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래서 나는 해외로 도망쳤다. 처음 떠날 때는 본래 계획에서 90도 정도 틀어진 계획이지만, 곧 정상 궤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해외살이에서 고민이 많아지고, 처음 계획했던 진로를 완전히 포기하게 되면서, 점점 우울해지고, 내가 설 자리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럽의 일상


그렇게 우울할 때는 차라리 내가 해외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해 줬다. 만약 내가 한국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까지 버텨야 했다면 정말 우울해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나를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때때로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특별히 나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유럽의 시간들이, 다행이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망쳤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하도 동기부여 영상을 많이 봐서, 어디서 들었던 말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포기하기 전까지 실패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내가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계속 도전 중인 것이며, 그 안에서 내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고 싶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고, 내가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길은 명확했지만, 그 길을 도전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데이터 분석가 및 과학자'였는데, 문과 출신에, 서른이라는 나이가 나에게 너무 겁을 주었다.


수학에서 손을 뗀 지도 오래됐는데, 배우지도 않았던 기하와 벡터, 다 까먹어버린 통계학까지 다시 공부하는 것도 겁이 났고, 내 머리가 따라줄지 자신도 없었다. 게다가 프로그래밍 등 기술적인 부분도 다시 배워야 하니 막막하기 이를 데가 없더라.


그런데 유럽에서 지내면서, 정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내가 아직 늦지 않았다는 용기를 받으면서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길이 막막하고 어려울지라도, 내가 쉽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목적지인 사회과학적 이론과 논리에 근거해 나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실 이 도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나는 이 도전을 나만의 길을 통해 이뤄내려고 하고 있다. 세상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속에서도 나 스스로가, ‘내가 독특하고 나만의 길을 걷고 있다.’ 자부할 수 있을 만큼, 내 길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가고 있는 길을 브런치를 통해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내가 더 배울 점이 있으면 배워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주거나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한 글이 아닌, 내가 배우기 위해 글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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