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들은 사람을 찢어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서의 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심심풀이 땅콩으로 먹듯이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해를 지나서 내가 지금 나이까지 오면서 내 고향에서 봤던 여러 동물에 대해 이야기해볼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동물원에 가서 기린이나 코알라도 보고 자랐고 말이나 낙타도 타봤지만, 그런 동물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살던 고장의 짐승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멧돼지, 산토끼, 뱀, 산돼지, 그리고 이름도 목소리(거의 비명)도 유명한 고라니 등등.
사실 멧돼지나 뱀 같은 경우는 질리도록 많이 봤었다. 특히 뱀은 정말 때 되면 지천에 널려있기 때문에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일도 많았다. 그게 독이 있는 뱀인지 독이 없는 뱀인지는 상관없이, 간혹 가다 뱀이 어디에 있다고 알려주기만 하면 그것을 잡아다가 뱀술을 담가먹는다며 좋아하시는 어르신을 보면 그것이 꼭 기행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 어린 산짐승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다. 본래 산에서 사는 짐승은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며 신신당부하시던 삼촌이 생각났으나, 뭐 내 일이겠냐 싶어 그냥저냥 넘어간 적도 많았고. 밭일하다가 나타나면 금방에 들고 있던 말뚝으로 꼬챙이라도 되는 양 집어 저 멀리 계곡 쪽으로 던져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겁도 더럽게 없었다 싶지만.
하지만 하루 종일 산에 살지 않는 이상(물론 집이 산속에 있었으나 그것과는 다르다.) 멧돼지를 두 눈으로 목격하기는 굉장히 어려운데, 유독 겁들이 많은지 눈에 보이기 싫은 건지 밤에 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할 무렵에 우리 집은 피망 농사를 접고 사과농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자주 마주쳤던 것이 멧돼지라는 존재였기 때문에 잘 알았다. 사실 그것은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마주친 적은 없었고, 대학교를 들어갔다가 방학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겪었던 일이었다. 때는 대학교 1년생인 내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일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벌써 사과농업 3~4년 차 정도 되었기 때문에 이미 그 밭에는 하룻밤 자고 올 수 있는 오두막이 있었고, 아버지는 종종 거기에서 잠을 주무신다고 하시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부지: 오랜만에 왔으니까 아빠랑 보초 좀 서자.
타인: 밤새 하는 그거? 어디서?
아부지: 사과밭.
타인: 엥. 누가 사과 서리라도 하나. 굳이 그 밤에 그 굽이굽이 산골을 들어가서?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 오밤중에 그 굽이굽이 산골 속으로 들어가는 미친 인간이 다 있담. 밤에 산길을 걷는다는 건 사실 거진 목숨 건다고 보는 내게 그것은 기행이었다. 고작 사과 하나 따 먹으려고? 그것도 다 익지도 않아 쌉쌀한 그것을? 별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대상을 듣고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부지: 아 그거 사람 아니야.
하하, 그거 멧돼지야.
멧돼지야…
멧돼지야… …
멧돼지야… … …
메아리처럼 집안을 울리는 말에 아버지를 쳐다봤다. 가족 중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미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 익숙하게 점심을 먹으며 철저히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을 보니 일순 배신감도 들었으나, 그것이 위험한 일이면 아버지가 날 끌어들였겠느냐 싶어 저녁을 먹기 전 찬거리를 들고서 차를 타고 오두막으로 갔다. 오두막으로 들어섰을 때는 꽤 이상한 것이 있었는데, 무슨 설렁줄처럼 생긴 것이 바깥에서 시작해 안에 들어선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긋이 그것을 바라보다가 대충 궁금한 나머지 그것을 세게 당겼고, 순간 들린 소리에 몸이 돌처럼 굳었다.
핸드폰 진동소리가 아니다. 진짜 산에서 들리는 징 소리였다. 그것을 당겨 징을 친 나도 그렇고, 징을 친 나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도 그렇고. 우리는 서로를 말없이 쳐다봤다. 몇 초간 정적이 흘렀고, 나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타인: 이런 ㅆ
나 지금 엿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