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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동 May 12.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까치밥ㆍ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이야기 열다섯

         까치밥ㆍ2

             고재동(시인ㆍ택시 기사)


  참새 몇 마리 난다.

  기웃기웃 우리 부부의 침실을 훔쳤다가 기침 소리에 꽁무니를 빼 소나무로 갔다가 호두나무 꼭대기에 살포시 오른다. 한참 내려다 주위를 살피던 그들은 억이 머리 위 자두나무를 표적 삼는다. 혹시나 억이라도 동무해 줄까  기대했나 보다. 무엇에 심술이 났는지 쳐다보며 멍멍멍, 참새들을 내쫓고 만다. 평상시 같았으면 조곤조곤 참새의 말을 받아 적고 세상 이치를 풀어줬을 텐데. 탁구장에 가기 위해 함께 집 나서는 우리 부부를 향한 원망의 화살이 참새에게로 뻗친 듯하다.

  강아지를 피해 날아간 참새들은 죽단화에 앉아 뭣인가 쫀다. 빨리 꽃눈 뜨라고 속삭이는 듯. 찔끔 아래로 배설물도 남긴다. 노오란 꽃잎에 정열을 입히고 싶은가 보다.

  솔뫼 동산에도 봄이 왔다. 재잘재잘 아이들이 뛰논다. 어린 참새 노는 동산에 늙은 까마귀 한 마리 섞여 논다. 공자 왈 맹자 왈 칠판을 꿰뚫는다.

  시간대로 봐서 좀처럼 울릴 리 없는 다섯째로부터 전화가 진동한다. 가슴이 덜컥했다. '참새들과 수업 중~ 잠시 뒤에 전화할게.' 메모를 남겼다.

  예상은 적중했다. 어머니 상태가 나빠졌단다. 기력이 쇠잔하고 엉뚱한 소리에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주간 보호 센터에서도 거절당하고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장에 가시면 선친은 1박 2일이 다반사였다. 벼 한 가마니 짊어지고 오일장에 가셨다 하면 다음 날, 그것도 새벽녘에 초롱불 켜고 어머니와 주막집까지 마중 가서 모셔와야 했다. 내일 학교 기성회비 낼 돈은 주막에 두고 오셨으니...

  어머니의 폭풍 바가지 긁는 소리가 울을 넘었다. 선친께선 큰 소리를 큰북 소리처럼 내셨고 어머니는 꽹과리 소리로 화답했다.

  그 모습이 죽을 만큼 싫어 누님과 나는, 우리는 결혼하면 절대 부부싸움 말자고 다짐했지만 신혼 초엔 그러질 못했다. 지금은 옛 얘기 하고 살지만 돌아보면 위기의 한때, 긴장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때 그렇게 당당했던 어머니께서 마흔일곱에 지아비를 떠나보내고 8남매 키우느라 갖은 고생 다 했다. 왜 회한이 없었겠는가? 여든일곱. 100세 시대가 도래했으니 많은 나이도 아니다. 꽤 많은 시간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노인 (치매) 전문 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버지가 이 나이 되어서야 이해를 하게 되네요. 선친께서도 A 군에서 택시 운전을 하셨는데 돈을 많이 벌어오셨어요. 요즘은 매우 힘드시죠?"

  사촌 누님을 만나고 도청으로 돌아간다는 그가 느닷없이 말문을 열었다. 15, 20분의 무료함을 때우기 위해서였을까?

  "그땐 좋았지요. 요즘은 아시다시피 힘들어요. 그러고 보니 택시 운전으로 호의호식하던 시절도 있었네요."

  "그때만 해도 우리 집에만 표준전과와 동아전과가 있었어요. 용돈도 풍족하여 자주 붕어빵을 사 먹곤 했지요."

  "맞아요. 전과 있는 친구가 부러웠어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용돈을 풍족하게 주는 아버지는 좋았는데 폭력적이어서 싫었어요. 새벽 한두 시에 일 마치고 들어오셔서 밥상이 차려져 있지 않으면 벼락이 떨어졌어요. 따뜻한 밥으로 밥상을 차려놓고 어머니께서 바깥으로 마중을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아버지셨어요. 나는 무서워서 이불을 덮어쓰고 울고 있었지요."

  "......"

  "그런 아버지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어요. 저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보면서 맹세했어요. 좋은 남편이,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고요.... 그래도 아버지는 자식들을 키워서 출가까지 다 시키고 10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저희 선친께서도 장에 갔다 오시면 부부싸움을 하곤 했지요."

  "가족과 떨어져 있다가 보니까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져요.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소임을 다 하고 있나 싶네요.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아버지처럼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큰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자체가 벌써 아버지를 따라가고 있다는 징표일 겁니다."

  도에 전보되어 공무원 아파트에 혼자 기거하고 있다는 그는 지난 주말에 고향을 다녀왔다고 했다. 혼자 고향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를 뵙고 아버지 산소에도 다녀왔단다. B 시에 사는 가족도 만나고 온 그  손님은 진정 이 시대의 큰 나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작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줄곧 자신이 못났다고 자세를 낮쳤다.



노란 꽃그늘에 가려

붉은 연지가

촌스러운 그녀

꽃그늘이 노래서 더 섧은


한적한 도로 가로수를

부모로 둔 죄밖에 없는

산수유 열매는

남성의 눈길조차 머물지 못해

긴 겨울보다 아린 봄날

노란 꽃이 원망스런 3월


나무에 목매달고

빛바래고 말라비틀어져

처녀 귀신이 될지언정

노란 꽃에 굴복하기는 싫다

    --<꽃그늘이 노래서 섧은 산수유>



  산수유나무를 벴다. 산수유꽃이 폈다, 로 잘못 읽지 않기를 바란다. 왜 하필 이 시기에 나무를 베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뒤꼍 본체에서 70여 c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보금자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어린나무일 때야 집을 멀리 떠나기 싫었겠지만, 다 큰 어른 나무는 집에 기대어 살기 어렵다. 키가 지붕을 내려다보고, 덩치가 집 반을 가린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창문까지 가리는 바람에 아내로부터 밉상을 샀다. 울창한 나무는 모기 서식지가 되었고, 아내는 산수유 한 알 맛에 길들지 못했으니까. 재작년부터 베 버리라고 성화였다. 꽃으로 유혹해 오기 전에 새 톱을 구매, 그를 벴다. 10년 앞을 못 내다본 내 손이 심고 내 손이 제거했다.

  감나무 가지도 쳤다. 필요치 않은 가지가 전정가위에 무참히 잘려 나갔다. 늦가을, 까치가 와서 편안하게 앉아 까치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다듬었다.

  까치는 그가 앉아 쉴 나뭇가지를 먼저 다듬지 않는다. 단, 시간을 추스를 따름이다.

  어머니와는 열아홉 살 나이 차이가 난다. 19년이란 시간을 나는 다듬고 있다.  거추장스러운 가지는 치고 올곧은 가지만 남긴다. 그러나 내가 다듬은 가지가 누구에게도 올곧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이 의심스럽다.

  까치밥 감은 거룩하게 까치에게 온몸을 바치고 장렬하게 산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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