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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동 Apr 05.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길을 가다가

이야기 둘

         길을 가다가

             고재동(택시기사.시인)



  "쟤들 뭐죠?"

  "안 그래도 유심히 살피던 참이었습니다. 고양이 같지가 않아서요."

  택시의 전조등과 방범등이 교차하는 도심의 이면 도로를 가로질러 좀은 여유를 부리며 깡충깡충 뛰는 동물이 있었다. 차 속도를 줄이고 손님과 나는 그 동물의 뒷모습에 동공을 키워 바라보았다. 분명한 건 흔하디흔한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강아지 모습을 유추하기는 더욱이 힘들었고.

  "토끼 맞죠?"

  "그렇군요. 토끼가 맞네요. 이 도심에 왠  토끼일까요?"

  옆에 탄 손님이 먼저 토끼를 알아봤다. 두 마리였다.

  "야생 토끼는 아닌 것 같아요."

  "산토끼는 색깔도 잿빛이고 도심에 나타날 이유도 없으니까요. 아마 애완 묘로 키우다가 버린 것 같아요. 물론 토끼장을 탈출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요."

  내가 귀촌한 다음 해 농업기술센터에서 토끼 세 마리를 데려다 키운 적이 있었다. 두 마리 수컷과 한 마리 암컷 토끼한테서 네 마리 새끼 토끼가 탄생했다. 얼마나 귀엽던지 눈길은 어미 토끼한테서 아기 토끼에게로 옮겨갔다. 고만고만하게 자라던 아기 토끼들도 제 어미를 따라 울타리를 넘나들더니 끝내 돌아오지는 않았다. 산으로 갔을 텐데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후 지금까지 산 토끼든 그의 흔적이든 확인한 바 없다.

  그때 우리 집에서 제 울타리를 탈출했던 그 토끼가 환생한 게 아닐까 잠시 환상에 젖었다. 그 토끼 가족이 떠나고 오래 그 새끼 토끼가 눈에 밟혔다.  가끔 사진이 보이면 확대해서 한참 보곤 한다.

  집토끼가 산에 가서 적응하여 살기란 극히 어렵다. 그의 적은 너무나 많다. 고양이, 오소리, 너구리, 매, 독수리, 부엉이, 들개... 정상적인 먹이사슬에 의해 생태기가 움직인다면 토끼의 설자리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무너진 생태계에 하등 동물인 토끼의 설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것도 들과 산에 길들이지 않은 집토끼가 산에 올라 적응하기란 예사 힘든 게 아닐 것이다. 집에서 보호받으며 자란 요즘 아이들이 험난한 파고를 넘기가 힘 드는 현실과 조금은 닮아있다.

  산토끼마저 보기 힘들다. 예전엔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산토끼의 가장 큰 먹이사슬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토끼는 깊은 산속보다는 인가의 농토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했으므로 사람 손에 낚이는 경우도 흔해 적정한 개체 수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줄 알았던 산토끼가 서서히 등장한다. 집토끼가 탈출하여 산토끼로 털을 바꿔 입은 것은 아마 아닐 듯싶다. 일 년 전과 몇 달 전에 밤늦게 이하 2리 왕상골길을 지나다가 각각 산토끼와 맞닥뜨린 적이 있다.

  내가 집토끼  산토끼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장황하게 늘어졌다. 오늘 생각지도 않은 토끼를 도심에서 본 게 신기하여 주절주절하다 보니 이야기가 반쯤 와버렸다.

  코로나19, 4차 유행기를 맞아 지방에까지 3단계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있는 시점이고 보니 밤에 손님 한 명 모시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 저녁 먹고 일터에 나서 새벽까지 일하는 나에겐 큰 타격이다. 밤 10시 이후엔 길거리가 조용하다. 골목을 누벼도 사람 흔적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구경하기가 힘들다. 시내를 열 바퀴 돌아 손님 한 명 모시면 횡재한 날이다.

  사나흘 전, 그날은 엄청 운수 좋은 날이었다. 옥동에서 용상으로 손님을 모시고 갔다가 나오는 길에 또 손님을 태웠다. 구 역전 주변을 지나는데 고양이가 길을 막았다. 어미 고양이인 듯한 큰 녀석은 차가 다가가자 자리를 피했으나 조막만 한 새끼 고양이는 꿈적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기껏 해 봤자 태어난 지 열흘도 안 된 고양이로 보였다. 그 새끼 고양이가 떠나지 못한 사연은 바로 앞에서 차를 정차한 후 파악이 되었다. 저만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의 사체가 앞에 놓여 있었다. 아마 조금 전 다른 차량에 변고를 당한 형이나 동생 사체 앞이라 떠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미 뱃속에서 같이 자란 우애와 세상에 나와서 함께 가지 못하는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고 있었을까? 정작 어미 고양이는 자리를 떠나는 데도 새끼 고양이는 자리를 보전하는 이유는 하룻고양이 차 무서운 줄 몰라서였을까?  아마 어미 고양이는 현실을 일찍 파악하고 남은 새끼와 후일을 기약한 게 틀림없다. 일단 현장을 떠나 살아남은  새끼 고양이를 불러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래서 모성애와 형제애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손님이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자리를 피한다. 너무나 짠한 풍경이었다.

  이즈음 길고양이의 개체 수가 너무 늘어 사회 문제까지 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루 저녁에 로드킬 당한 고양이 여럿을 목격한다. 갑자기 뛰어드는 고양이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물론 사고를 유발할까 걱정이다.

  거리 단계 강화에 묶여 사람이 사라진 골목길에 고양이들이 활개 친다. 로드킬 당해 죽은 고양이 사체가 2중 3중 자동차 바퀴에 깔려 처참한 모습을 보는 맘 아리다. 거리의 길고양이들... 죽어가는 고양이들...



비 오는 날,

시가 떠오르지 않아

밤중에 강가에 선다.

도로엔 물 만난 개구리가

무모하게 길을 가로지른다.

뜀박질이 서툴다. 나를 닮았다.


빗줄기가 세차다.

우산을 받쳐 들었다.

시가 같이 쓰자며

우산 속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머릿속은

오히려 비어간다.

쟁여뒀던 시어들이

모두 사라졌다

시와 앉았던 벤치도 비었다.

비만 처연하게 내린다.


물소리보다

개구리 소리 드높다.

세련미는 없어도

다듬은 듯

목소리에 격조가 있다.

옆에 있을지도 모를

짝에는 관심 두지 않고

이 밤, 강가의 개구리

다 불러 모을 태세다.


머리 위로 왜가리인가

비를 맞으며 새 한 마리 난다.

그도 시를 찾아 나섰는가?

어쩜 저 새가

숙제 하나 풀 것 같다.

새 꽁무니를 따라

나도 날아올랐다.

          --<강가에서ㆍ5>



  소나기 한줄기 세차게 때린다. 아까 본 하얀 남매 토끼가 눈에 아른거린다. 토끼는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 비를 피하기나 했을까? 도심에도 풀이 자라기는 하지만 뜯어먹을 줄이나 알까? 입추. 곧 입동도 닥칠 텐데 겨울을 도심 한가운데서 날 채비를 하고나 있을까? 그 토끼, 혹독한 겨울을 알기나 할까?

  오늘도 허망하게 집으로 돌아서는 길. 시골길 위에 개구리 몇 마리가 뛴다. 빗줄기를 등에 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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