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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동 Apr 06.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거미줄 해법

이야기 셋

          거미줄 해법

              고재동(택시 기사ㆍ시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했다지만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이상 그 길이 얼마나 곧고 먼지 알지 못한다.

  우리 고장 밤으로 가는 길은 옥동으로 통한다. 매일 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있으니까 틀림없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이즈음 옥동의 밤 문화는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작아졌다. 밤새 휘황찬란하던 불빛은 밤 10시가 되면 사그라들고 만다. 대로변을 빈번하게 오가며 환하게 밝히던 차량의 불빛들도 하나씩 상멸하고 만다.

  손님 호출을 받고 옥동 이면 도로로 향했다. 주변 교회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제외하면 어둑한 뒷골목을 연상케 하는 멸한 동네이다. 손님은 기침 없고 토끼 한 마리가 느릿느릿 길을 가로지른다. 어미 토끼였다. 한 달 전 이곳에서 만났던 새끼 토끼의 어미쯤으로 보였다. 그 새끼 토끼가 한 달 새 이렇게 자랐을 수는 없고 흰색 토끼인 걸로 봐서 같은 종족임이 틀림없다. 부모 자식간이 아닐까 짐작된다. 그렇다면 가족을 형성하고 이곳 어디쯤 토끼들이 살고 있는 건지, 버려진 토끼 가족 중 어미만 살아남은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땐 분명 새끼 토끼 두 마리가 함께 고단한 길을 가고 있었으니까. 길고양이가 득실거리는 이 거리에서 하등동물인 토끼가 생존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닐 텐데...  그뿐인가? 유기견들도 거리를 누비고 차량과 사람, 모두가 토끼에겐 공공의 적일 테니까. 아무튼 한 달 사이 같은 도심에서 두 번씩이나 산토끼도 아닌 집토끼를 상면한 사실은 기이한 일이다. 뭔가가 미련이 남았는지 뒤를 힐끔힐끔 훔치던 토끼가 사라진 후 예약한 손님이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수고하십니다. 용상동 쪽으로 가 주세요."

  중년 남자 손님은 깍듯하게 예를 갖춘다.

  "이젠 밤공기가 제법 쌀쌀하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덥다고 난리 쳤는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것 같아요. 돌아서면 지나간 계절을 쉬이 잊어버려요. 이젠 반 팔로 밤을 버티기가 버거워요. 사실 저도 춥다는 말이 입가에 뱅뱅 돌아요."

  "그나저나 코로나 때문에 큰일이에요. 혹시 백신 주사 맞으셨습니까? 저는 2차까지 맞고 2주가 지났습니다."

  "저도 2차까지 맞았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요. 매일 통계 발표하기에 급급해요. 추석 때까지 70%를 맞으면 어떻고 70%를 달성 못 하면 어떻습니까? 목표를 달성 못 했다고 누가 정부를 뺏어간답니까?"

  "맞아요. 통계 내어 매일 수치 발표하는 것에 매몰되어 있지 말고 우리나라도 백신 개발과 치료제 개발에나 신경 쓰고 환자 치료에 매진했으면 좋겠어요."

  "백신이 뒤늦게 개발된다고 해도 변이종이 판치는 이 판국에 소용이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어차피 위드 코로나 시대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요. 변이종을 이길 더 강력한 백신이 나오기 전에는 뒤늦게 백신을 개발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가 있어요. 초창기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시설 같은 곳에서는 집단 감염 사례가 나오고 있어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사면초가인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지구가 더워지고 몸살을 앓는 마당에 임시방편으로 코로나19 백신을 주사한다고 크게 달라질까요? 코로나19가 쉽게 끝나지도 않겠지만 종식된다 해도 코로나22나 다른 종의 질병이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어요. 이는 곧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같아요. 기후 문제에 지구인 모두가 발 벗고 나서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지구 온도가 0.5도 높아지는 것에는 둔감한 사람들이 지구를 독차지하고 있어요. 세계의 기후학자들은 물론 지도자들, 지구인 모두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지구를 지키고 몸살 앓는 지구를 보살펴야 해요."

  택시가 강변도로를 질주한 끝에 용상 방면으로 접어들었다. 하루 몇 번도 지나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길이 생경하다. 바람이 뒤따라오며 도로를 쓴다. 장마보다 긴 가을장마가 끝난 강변도로가 을씨년스럽다. 명절을 일주일 앞둔 밤 낙동강변 풍경이 하 수상하다. 겨울로 가는 계절은 고난의 길을 예고하는 듯 차가운 바람만 쌩쌩 분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유익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손님을 내려드리고 시내를 거쳐 다시 옥동까지 가는 동안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불 꺼진 옥동 거리를 몇 바퀴 누볐지만 손님 모시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옥타비아누스도 아우구스투스도 없었다.



세상이 온통 지붕이었다면

비가 이 땅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이 지붕이었고

구름이 지붕이다가

벽이 지붕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만드는 기술을 터득했고

한 계단 한 계단 꼭대기로의

질주 본능이 되살아났다


그제야 때가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헐거워진 욕망은

서서히 사다리를 내려왔다

그 순간 쌓았던 벽은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비는 아래로

허욕을 무진장 쏟아부었다


그렇게 해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나뭇잎을 뚫고

바람을 요리조리 비켜서

땅 위에 닿을 수가 있었다

그러고는 땅속으로 땅속으로

누구에게 귀띔도 하지 않고

나무뿌리를 찾아 걸어 들어갔다

                   --<비>



  새벽 4시가 가까워져 온다. 핸들을 와룡 쪽으로 돌렸다.

  억이의 마중을 뒤로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차를 세우고 집으로 향하는데 뭔가 얼굴에 와서 걸리적거린다. 거미줄이었다. 데크와 정자 사이에 하필 내 얼굴 높이로 나갈 때 없던 거미줄이 길을 막는다. 좀처럼 치지 않던 곳에 거미가 올가미를 놓았다. 거미의 오판은 화를 불렀다.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거미를 찾아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세상사라지만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거미의 운명이다. 코로나 정국을 가로지르는 지구의 운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해법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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