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오후 4시 한국 무용 공연이 있는데 함께 관람 가능하냐는 내용이었다.
시험을 한주 앞둔 아이들은 엄마를 찾을 일 없이 없을 것이고 때마침 남편도 골프 모임에 나간지라 온전히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휴일이었다. 공연 시간까지는 그리 여유롭지 않았지만 후배도 만나고 오랜만에
무용공연도 보고 싶은 욕심에 급하게 준비를 마치고 공연장으로 나섰다. 오래전 무용단에서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간간히 연락하고 만나도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내가 참 좋아하는 후배이다. 현역에서 떠난 지 오래전이고 근근이 무용 웹진에 책 소개하는 역할로 무용계와 가늘게 인연을 이어가는 나와 달리 후배는 무용 평론이나 공연 기획자로 무용계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엄마 역할도 잘 해내는 능력자이자 내가 유일하게 현재의 무용계 소식까지 생생히 전해 들을 수 있는 고마운 소식통이다. 주 2회 이상 공연을 관람하고 평론 방향을 잡고 늘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토대로 글을 쓰는 후배의 평론을 보면 이제 첫발을 내딛는 신생 무용단이나 신인 안무가에 폭넓은 이해와 배려가 묻어난다.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선배로서 충분한 위로와 격려가 늘 가득하다. 후배의 선한 평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립 시립 이외의 개인 무용단들은 후원이나 지원의 기회가 인색할 수밖에 없어 공연장 섭외하기도 쉽지 않다. 공연 수익금이 모아져도 무용수의 몫은 미비하고 다음 공연을 위해 비축해 놓아야 할 자금인 셈이다.
무용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예술인 아니면 쉽지 않을 고단한 예술인의 다음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창작 의도와 무용수의 표현능력에는 섬세한 의견을 내고 아쉬운 부분은 신랄한 비판보다는 늘 가능성을 열어두는
희망적인 평론을 지양하는 모나지 않은 평론가이다.
어느 이들은 이런 평론가를 안목이 무디고 무책임한 평론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부분이니 그들의 비난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후배의 평론 스타일을 늘 지지해주고 응원해줄 것이다.
예술이 주는 감동 영역은 개인차가 크고 수준 여부를 자로 잰 듯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국립이나 시립의 테두리 안에 없어도 충분히 기량이 뛰어나고 열정이 가득한 무용수나 안무가들이 존재하기에 무명 무용수나 안무가의 작품이라고 충분히 가치 있고 무한대의 감동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런 소규모 무용단에게 미약하게나마 다음 기회를 열어주고 적은 수의 관객이라도 눈길을 끌게 힘을 보태고 미래의 후원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무명 안무가의 작품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는 후배를 보면서 진정한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무용계의 선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재능 넘치거나 성공한 이들만 신경 쓰는데 익숙해진 현실에서 반대로 첫발을 내딛거나 모자라지만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선배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많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일정 수준 경험을 쌓고 자리 잡은 선배들이 착한 연대를 이어가며 누군가에게 기회와 용기를 줄 수 있는
관대함을 발휘할 수 있기를 평론가 후배를 보면서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