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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Oct 15. 2023

내 눈도 못 쳐다보는 그와 여행을 가기로 했다.

3. 여행

돌아오는데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데 그가 자꾸 생각났다. 사람들과 소고기를 구워 먹는데도 그가 맴돌았다. 밥은 먹고 있을까, 겨우 50킬로를 넘는다는데, 잠도 못 잔다는데, 먹지도 못한다는데, 그러다 죽으면 어떡하지 싶었다.  돌아온 날부터 사흘 동안 내내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4기 암환자인 주제에, 산송장 같긴 하지만 지병도 없는 사람을 걱정하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내 인내심은 이틀, 나는 그가 사는 곳을 향해 무작정 차를 몰았다. 40분 여를 달려 동네 카페에 들어섰다. 밥을 먹자고 했는데 거절하면 어쩌나, 지금 집에 없으면 어쩌나, 날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면 어쩌나, 소심함이 고개를 쳐들었다.


‘밥 먹을까요?’

채팅을 보내자마자 폰화면을 껐다.

답이 안 오면 어때, 거절당하면 커피나 한잔 마시고 가는 거지. 내가 온 건 순전히 측은지심 때문이야. 애써 쿨하게, 아직 오지도 않은 답장에 답할 준비를 했다.

아뿔싸, 지갑이 없었다.

계좌이체로 어떻게 커피값은 지불했지만 밥값은 어찌하나, 내가 먼저 먹자고 했는데, 차라리 답이 없으면 좋겠다 싶은데 띠링, 알림이 울렸다.

‘그래요.’

‘10분 거리에 있어요. 모시러 갈게요.’


그는 예의 트레이닝 복장에 얼굴을 다 가릴 정도로 큰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비슷해요.”

나보다 서너 살은 많을 줄 알았는데 동갑이었구나 싶었다. 그가 가자는 근처 밥집으로 갔다. 맛있는 것들이 한가득이었지만 정작 그는 말을 하느라 먹질 않았고 나 역시 듣느라 먹지를 못했다. 말을 마친 그는 생각보다 잘 먹었다. 계산을 어찌해야 하는 생각에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늘 이런 식이다. 진지한 이런 순간에도 늘 혼자 개그를 한다. 기어이 밥값을 내겠다는 그가 참으로 고마웠다.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의 뒤에서 안도했다.(나중에 진실을 말한 후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되었다)


집에 돌아온 후 즉석밥과 즉석국, 미숫가루와 죽을 택배로 보냈다. 이름란에 닉네임을 쓰고 연락처란엔 내 번호를 적었다. 그 후 나는 부산으로 혼자 짧은 여행을 떠났다. 종종 그를 떠올렸고 종종 잊었다(나에게도 많은, 좋은, 즐거운 일들이. 일어났기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산에 잘 다녀왔느냐, 자기 이름은 P이고 번호는 어찌어찌 되니 앞으로 문의할 것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하라 했다. 읽자마자 번호를 입력하고 안부를 건넸다. 좋은 일만 가득했던 나와는 달리, 내가 없는 동안 많은 힘든 일들이 있었다고 했다. 당장 집에서는 쫓겨날 지경에 처했고, 고맙다는 말은커녕 온갖 욕설을 들었다며 하소연을 했다. 힘들다 했다.


다음  내가 사는 동네에서 P를 만났다. 추적추적 5월의 비가 내리는 오전, 편의점 천막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5월 초의 날씨는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근처 밥집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조금 더 걷고 싶었지만 내 컨디션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오들오들 떨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종종 통화했고 종종 만났다.


처음으로 트레이닝복이 아닌 멀끔한 티셔츠에 면바지, 벌이 그려진 기죽 운동화. 차림을 한 날이었다. 5년 넘게 일을 안 했다더니 그래도 '상그지'는 아니었구나.


여행을 떠날 거라고 했다.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던 곳 그곳으로 홀로 떠나겠다고 했다.

거긴 제 꿈이었어요.”

“같이….. 가실래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선뜻 그러겠노라고 답하고 말았다.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건 정말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거였다. 그러나 포기하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꿈. 뭔가에 홀리듯 오케이를 했지만 그날부터 고민은 시작되었다.


“영원 씨가 불편할 거에요. 내가 밖으로 나가든지 방을 두 개 잡을게요.”

그가 배려를 해주었다.

“그전에 가까운 곳이라도 갈까요? 좀 더 친해져야 덜 불편할 텐데.”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그는 꽤 많은 제안을 했다. 사실 그 제안은 내가 먼저 하고 싶던 거였다. 요즘 더욱더 힘들고 지쳐 보이니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혼자 가기 힘들면 동행할 수 있노라고 말해주고 싶던 차였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전에 한 달 살기 가신다고 강릉이나 속초…속초 갈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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